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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혜성 Nov 10. 2023

[ott] 《박하경 여행기》 5~8화

또 보자, 나의 진솔

사라져 버리고 싶을 때 떠라는 딱 하루의 여행. 걷고 먹고 멍 때릴 수 있다면

벌써 반이나 봤다니. 4부밖에 남지 않았다니!! 공백이 있지만 잔잔하게 힐링되는 드라마가 너무 오랜만이라 한 회 한 회 감상하며 남은 회차가 줄어드는 게 아쉬울 뿐이다. 4부까지 본 이 시점에서 정리해 보면, 이 드라마의 매력은 각 캐릭터를 이 살아 숨 쉰다는 것이다. 감독 겸 배우인 인물들이 등장하는 것도 재밌고, 선우정아 님의 묵언수행 연기도 피식 웃음이 나온다. 밀면집 사장님이나, 책방 주인은 진짜 그 자리에 계셨던 사람인 것 같다.(실제 사장님일지도?) 그리고 무엇보다 하경이 너무 좋은 사람이다. 제자에게 응원도 아끼지 않고, 자신의 언행에 사과할 줄 알며, 어딘가에 있을 것 같지만 생각보다 찾기 쉽지 않은 사랑스러운 캐릭터!  이 드라마를 끝까지 보고 나면 하경을 더 '귀여워'할 것 같다! '0' (이하 스포가 있으니 아직 못 보신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누르세요)




5부 스텝이 꼬여도 춤은 계속된다 - 대전


2일 전 토요일 밤 11:00

드디어 찾았다. '춤추는 캥거루' 부산 헌 책방에서도 찾지 못했던 하경의 어린 시절 만화책. '춤추는 캥거루'가 어디서 왔는지 시간을 거꾸로 돌려보자.


토요일 오후 06:30

하경은 천체체험관에 누워 하늘을 보고 있다. 별들이 보인다. 카시오페이아자리, 안드로메다, 광년 250만 년, 빛의 속도로 250만 년 전의 모습을 보고 있다. 하경에겐 동행자 영숙이 있다. 영숙은 요새 수학을 공부한다. 천체에 관심이 생겨 천문학 책을 읽는데, 수학이 등장할 때마다 무슨 말인지 당최 알지 못해 수학을 공부한다. 나랑 상관없는 것에 관심이 생길 때, 놓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멋지다. 하경에겐 춤이 그렇다. 춤까지 아니더라도 몸을 제대로 움직여 본 적이 없다. 뭐 배울 정도의 열정도 없었던 것 같다. 체험관을 나왔는데, 공원에서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다. 원 투 쓰리 포 파이브 식스 세븐 에잇. 영숙은 대열에 합류한다. 아! 영숙은 누굴까? 조금 더 리와인드.


토요일 오후 03:00

식당 앞사람들이 줄 서 있다. 맛집인 게 분명하다. 미리 주문을 받는 직원에게 "만두전골이요"라 말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만두전골은 2인부터 주문 가능합니다"이다. 에?.. 그때 혼자 온 영숙이 합석을 제안한다. 2인으로 당당하게 만두전골을 먹고 볶음밥까지 클리어. 하경은 "맛있네요"라고 말하는 영숙을 응시하다 "으헉!!" 하고 놀란다. "구영숙 작가님 아니세요?" 당일치기로 여행 온 대전에서 그것도 만둣집에서 줄 서있다가 하경의 10대를 지배했던 작품의 작가님을 만나다니!  사실 하경의 계획엔 대전이 없었다. 기차를 놓쳤고, 바로 출발하는 기차를  탔을 뿐이고, 대전역에서 고양이 울음소리에 깨 내렸던 것이다. "처음으로 우연성에 자신을 맡겨보기로 한 거죠"라는 영숙의 구상 중인 작품의 캐릭터처럼. 그 덕에 영숙의 작업실에 초대받고 '춤추는 캥거루'까지 선물 받은 것이다.


다시 공원으로 빨리 감기. 하경은 춤추는 사람들 사이에 대열을 잡고 몸을 움직인다. 나와 상관없는 것이라 생각했던 춤을. 춤추는 캥거루, 아니 춤추는 하경!


6부 비 오는 토요일 - 서울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 빗소리를 뚫는 핸드폰 진동소리. "선인은 앉은자리에서도 만 리를 떠돌 수 있다 했다" 하경은 자세를 고쳐 앉아 심호흡을 하고 만 리를 떠돌... 는 걸 뚫고 울리는 핸드폰 진동.

살고 있는 동네에서의 여행도 가능하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광화문. 비가 내리는 궐은 아름답고 고즈넉하다. 단청과 처마, 그 아래 앉아 내리는 비를 바라본다. 촉촉하고 평화로... 움을 깨는 핸드폰 진동소리. 부장 선생님에 이어 학부모님들의 항의 문자와 전화가 쇄도한다. 학생회의 주도로 반 대항 e-스포츠 대회를 개최한 게 문제였다. 학교와 학부와 학생들 간의 좁힐 수 없는 입장 사이에 낀 하경. 나 원 참 카드도 없어졌다.

하경은 비가 그치길 기다리며 근처 박물관에 들어갔다. '국립기상박물관' 입장료가 무료다. 전시장 한편에 앉아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아이들과 함께 온 미술 샘. 미술샘은 주말에 관심 있는 애들을 모아 전시 관람도 하고 열의가 대단하다. 월요병이란 걸 모르는 것 같다. 비는 그치고 하경은 학생 윤철이에게 만 원을 빌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또 진동이 울린다. 학생회장 예준이다. 이 녀석도 하루동일 시달렸을 테지. 우승 상품이 뭐냐 묻는 하경에게 예준이는 "그런 거 없는데요 끝나고 다 같이 피자 먹으려고요" 피식. 미술 쌤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다 큰 애들이 귀여운 이유는 지들이 다 큰 줄 알기 때문이라는 말.  


7부 빵의 섬 - 제주도


하경은 미술 샘과 조금 친해진 것 같다. 같이 밤을 까먹다 딸기 케이크에 대한 질문을 하는 미술샘에 질문에도 거부감이 없다. 그러다 빵에 대한 집착을 고백한다. "그거 알아요? 조선시대에도 빵이 있었다는 사실" 하멜 표류기의 하멜이 비상식량으로 챙겨간 빵이 조선시대 기록에 남아있다는 이야기를 말하는 하경의 눈은 반짝인다.


목표가 확실한 여행. 서쪽으로 가며 서귀포시까지 여섯 곳, 동쪽으로 제주시까지 여섯 곳, 총 12곳의 빵집 도장 깨기. 스테이지를 하나씩 깨나 갈 때마다 실제 사장님이 인터뷰에 등장한다. 그중 돈 많은 할아버지가 외상으로 빵을 잡수시고 며칠 후 돌아가셨는데, 죽기 전 할머니에게 빵집에 외상 달아놨다고 이야기하셨다는 에피소드는 인상적이다. 하경은 8번째 빵집에서 '달팽이 빵'을 찾는 꼬마를 만난다. 달팽이 빵이 뭘까? 시나몬롤? 페이스트리? 크루아상? 소라빵? 꼬마(율아) 뒤를 밟는 할머니가 있다. 할머니는 꼬마가 뒤를 돌아볼 때마다 숨어버리고 그 뒤를 따라가던 하경도 이유는 모르지만 숨는다. 다음 빵집에 들어간 꼬마는 그림까지 그려보지만 달팽이 빵을 찾지 못한다. 다음 빵집에선 달팽이 빵이랑 비슷한 빵(롤케이크)을 찾았지만 약간 다른 것 같다. 꼬마는 눈을 감고 이 집의 시식용 단팥빵을 먹어보곤 이 집이 아니라고 하고 사장님은 삼복당을 알려준다. "이 맛이에요!" 삼복당에서 시식용 단팥빵을 먹은 꼬마는 마침내 달팽이 빵, 롤케이크를 찾았다!


제주는 제사상에 빵을 올린다. 예로부터 쌀이 귀해 떡 대신 빵을 올리는 풍습은 오늘날엔 카스테라, 롤케이크 등 다양해졌다. 이런 풍습을 몰랐겠지만 꼬까 손으로 엄마를 위해, 엄마가 생전에 좋아하던 달팽이 빵을 사 온 율이의 마음이 어여쁘다.


하경은 빈 캐리어를 빵으로 가득 채워 돌아왔다. 비록 달팽이 빵은 품절이라 못 사 왔지만 대신 단팥빵을 담아왔다. "이 맛이다!"



8부 맞물린 경주 - 경주


밀레니엄 이전의 수학여행은 죄다 경주였다. 역사의 도시. 적당히 교육적이고 적당히 자연이 있고, 적당히 상징적인 도시. 그 시절 하경이의 옆엔 진솔이가 있었다. 어디 가도 들떠있고 자주 웃었던 친구 진솔이. 어린 하경은 지금과 달리 여행이 귀찮았다. 내내 이동하는 게 다인 여행을 사람들은 왜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데, 진솔이는 쿨하게 '뭐 좋은 게 있겠지'라 말한다.


영업이 종료된 불국사 역에 앉아 생각해 본다. 20대 진솔이와 왔던 경주 여행을. 그때 진솔이는 수학여행 때 하경의 어머니가 싸 주신 오이 말고 시금치 들어간 김밥이 먹고 싶다고, 하경이에게 배워서 만들어 달라고 했다. 그리고 첨성대 앞에서 사진도 찍었더랬지. 마지막 에밀레종의 타종을 듣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 하경은 진솔과 싸웠다. 2003년 그게 진짜 마지막 타종이었다니.


봉긋 솟은 능 옆 벤치에 앉아 김밥을 먹는다. 어린 진솔이 나타나 하경이의 옆에 앉아 김밥을 집어먹는다. 오이 말고 시금치 들어간 김밥을. 능 사이를 걸어 2003년 싸워서 못 갔던 동궁과 월지(안압지)에 도착해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하경과 어린 진솔. "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땠어 기분이?" 어린 진솔이 묻는다. "울었지, 그러다 웃었지" 하경은 진솔이 죽었단 소식을 들었을 때 진솔과 있었던 순간들이 떠올라 웃었다. 박하경 할머니가 보고 싶다는 어린 진솔. 하경이도 박하경 할머니가 보고 싶은데... 나에게도 진솔 같은 친구가 있다. 나에게 웃는 모습만 남기고 떠난 친구. 기억이라는 게 신기해서 시간이 지금은 연락하지 않는 친구들처럼 너도 어딘가에 살고 있지 않을까 생각 들기도 한다. 경주는 그런 도시다. 죽은 사람이 누워있는 능을 거닐다 보면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맞물려 공존할 것만 같은 기운이 감돈다. 그러니 오늘도 인사말은 이걸로 정했다.


또 보자 나의 진솔




이건 사람 이야기인 거 같아요. 사람 이야기여서 그런지 자꾸 눈물이 나는 거예요


이나영은 지난 5월 ‘슈취타’에 출연해 <박하경 여행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8개의 도시 이야기는 8가지의 사람 이야기다. 템플스테이에서 처음 만난 사람, 오랜만에 만난 제자 그리고 옛 친구까지. <박하경 여행기>는 ‘여행’ 드라마의 법칙에서 벗어나있다. 여행의 범위가 남다르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터미널이 주배경이 되기도 하고 군산 편에선 제자의 전시장만 주야창천 보여준다. 제주편은 또 어떤가. 제주 하면 빠질 수 없는 고기국수, 갈치, 귤은 코빼기도 안 비친다. 25분을 끌고 가는 건 빵이다. 빵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제주의 제사풍습으로 이어지고, 엄마의 제사상에 달팽이 빵을 올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이의 모습에 도시를 잊게 된다. 경주에선 이젠 세상에 없는 진솔을 만나 과거로 여행하기도 한다.


1화, ‘마음 내다 버리기’에서 시작해 8화 ‘맞물린 경주’까지, 내면의 힐링에서 시작해 점차 확장되는 평안은 엔딩에서 극대화된다. '여행' 드라마의 클리셰에서 벗어난 <박하경 여행기>는 짧지만 단단한 사람이야기다.


나는 여전히 여행이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대단히 재밌지도 의미 있지도 않다. 특별한 목적도 없이 떠돌아다니다가 간혹 어떤 순간에 실 감하는 게 다다. 그래서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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