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살아남기
니클라스가 라면을 끓여 먹겠다며 당당하게 전기포트와 그릇을 가지고 와 한데 붓기 시작했다. 나는 충격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라면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열변을 토했다. 그런데 익지 않을 것 같았던 면은 잘만 익었고 맛도 나쁘지 않았다. 사실 전에도 어떤 프랑스 여성분이 밥을 하는 방법을 보고 경악했던 적이 있다. 그 여성분은 쌀을 물에 끓인 후 물을 체에 걸러 드셨었다. 아무리 쌀이 주식이 아닌 문화라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참 신기했다. 나라면 처음 보는 식재료의 조리방법 정도는 찾아볼 텐데 말이다. 물론 그 여성분을 비난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냥 문화차이라는 게 참 신기했을 뿐. 나는 그 뒤로 외국인 친구들에게 너 밥 어떻게 짓는지 알아? 하고 물어보곤 했다. 아무튼 세상에는 참 여러 가지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이 틀린 것도 내가 틀린 것도 아니다. 그냥 다른 것일 뿐. 예를 들어 내가 가위로 음식을 자르는 게 백인들에게는 무례한 행동처럼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은 멜버른 컵이 있는 날이다. 호주 사람들에게 꽤 큰 이벤트로 시드니 시티가 눈에 띄게 한적했다. 매니저는 이대로라면 오늘은 하프 데이 퇴근을 해도 될 것 같다고 했다. 원래 정해진 근무시간이 있는데 일찍 퇴근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고용해 놓고 상황 봐서 인건비를 줄이려는 심산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 날은 유독 날씨도 좋아 일찍 끝난다면 오후에는 놀러 갈 수도 있으니 오히려 좋겠다고 생각했다. 함께 일하는 숀이 만약 일찍 끝내준다면 맥주 한 잔 하러 가자고 했다. 바람대로 우리는 일찍 퇴근할 수 있었고 시티에 새로 생긴 한국 프랜차이즈 치킨집에 갔다. 치킨 윙 조각과 핫도그를 시켰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알고 보니 숀은 간에 질병이 있었다. 정확한 병명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만성적인 질병이라고 했다. 영국에 있는 부모님에게서부터 약 배송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십 개국이 넘는 나라를 여행하고, 새로운 문화를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숀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숀은 쌍둥이었는데, 서양쌍둥이는 또 처음이라 사진을 보여달라고 했다. 쌍둥이도 쌍둥이 나름이라 그런대로 구분이 가능한 쌍둥이가 있고 정말 똑 닮은 쌍둥이가 있기 마련인데, 숀과 숀의 쌍둥이 형제는 정말 똑같이 생겼었다. 실제로 본다면 정말 기절할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숀에게 쌍둥이 형제도 같은 질병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없다고 했다. 불공평하게 생각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자긴 오히려 자기 형제가 이런 병이 없어서 정말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자기 혼자 앓으면 되니까. 굉장한 마인드셋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만약 불치병을 앓고 있었더라도 저렇게 긍정적으로 살 수 있었을까. 아마 몇 달을 자책하거나 우울해하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사실 숀이랑 함께 일하면서 속으로 화가 났던 적이 많았다. 뺀질거리고 나르시시즘에 미쳐있는 애가 왔다며 친구들에게 욕을 한바탕 늘어놓기도 했었다. 그런데 역시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마침내 두 달 동안의 호스텔 생활을 청산하고 집을 구할 수 있었다. 그동안 인스펙션을 다니면서 정말 말 못 할 경험을 많이 했다. 어디 구석진 허름한 곳에 '숨어 산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의 집을 본 적도 있고, 주방이 야외에 있는 경우도, 원룸을 판자 하나로 갈라놓은 방을 내놓은 곳도 있었다.
하루는 정말 멋진 시티뷰에 하이드 파크 바로 앞 아파트를 보기도 했는데, 집주인이 변태였었다. 어떻게 알았느냐면, 일단 인스펙션을 하고 싶다고 연락을 했다. 며칠이 지나도 연락이 안 오자 포기하려던 찰나에 전화가 왔다. 어떻게 지내느냐, 무슨 일을 하고 있냐 등의 질문이 오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집주인으로서 세입자가 집값을 감당할 정도의 경제적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려는 절차라고 생각했다. 꽤나 늦은 밤이었고 지금 인스펙션을 하러 올 수 있냐는 물음에 나는 무조건 오케이라고 했다. 그만큼 집이 간절했으니까.
그런데 뜬금없이 남자친구가 있냐고 물었다. 조금 의문스러웠지만 그냥 이 늦은 밤에 같이 시간을 보낼 사람 없냐는 가벼운 농담으로 여겨 웃어넘기고 인스펙션을 갔다. 만나자마자 집주인이 허그에 볼뽀뽀를 했다. 단순히 소리만 내는 비쥬와는 달랐다. 약간 거부스러운 느낌이 들었지만 일부 문화권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볼 방을 쓰고 있는 세입자가 무려 한국인이었다. 한국인과 말레이시안 여성분이 셰어룸을 쓰고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한국인 여성분이 한국말로 절대 이 집을 계약하지 말라고 했다. 집주인이 변태라고. 바보 같은 집주인은 단순히 우리 둘이 같은 나라 사람이라 반가워하는 줄 알았는지 이야기 나누라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제야 본격적으로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있었다. 늘 술을 권하며 수작을 부리고 같은 집 마스터룸을 쓰는 집주인은 늘 새로운 여성들을 데려온다고 했다. 특히 지금 살고 있는 말레이시안 여성분은 집주인이 요구하는 스킨십에 거부의사를 내비쳤다가 집에서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당장 다음 주 중으로 나가야 한다고 했다.
이야기가 한창일 찰나 집주인이 아파트 내부 수영장을 보여주겠다며 같이 나가자고 했다. 갑자기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이상 집주인과 단 둘이 있는 것만큼 위험한 상황은 없겠다는 판단이 들어 그냥 부랴부랴 나왔다. 이 근사한 뷰와 접근성이 다 아무것도 모르는 여성들을 낚아챌 수단이었다고 생각하면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꼼짝없이 호스텔에 갇혀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찰나 알고 지내던 언니가 세컨드비자를 따러 지역이동을 한다고 했고 나는 괜찮으면 그 방을 내가 테이크오버 해도 되냐고 물었다. 그렇게 얼떨결에 집이 구해졌다.
주거지가 해결되어 한시름 던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즈음, 매니저인 나딘이 나를 따로 부르더니 내가 일을 시작한 지 6개월이 다 되어 간다고, 내가 원하면 쉬프트를 조금 조정해서 새 직장이 구해질 동안 면접이나 트라이얼에 필요한 시간을 할애해 주겠다고 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 조건 중 하나, 한 직장에서 6개월 이상 일 할 수 없다. 숀과 티보가 새로 들어온 이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나 빨리 다가올 줄이야. 코로나 이후에 국경을 개방하면서 부족한 인력을 구하기 위해 6개월 근무조건을 임시로 철회했다고 설명했지만 워낙 이민성의 변덕이 심한 터라 리스크를 감당하기 싫어하는 눈치였다. 나는 새 직장을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니 다른 새 문제가 생겼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매일매일 내 삶을 뒤쫓아 오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