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살아남기
오랫동안 함께 동고동락했던 호스텔 친구들 중 하나인 니클라스가 이별을 알렸다. 비자를 위해 다른 도시로 이동한다며 마지막으로 보고 싶으면 오늘 저녁에 호스텔로 오라고 했다. 나는 호스텔을 떠나 집을 구한 이후에도 종종 호스텔에 들르곤 했다. 아직도 많은 친구들이 호스텔에 머물고 있으며 육체적으로 피곤하긴 했지만 정신적으로는 많이 의지했던 곳이기 때문에 나처럼 호스텔을 떠난 이후에도 많은 친구들이 오가곤 한다.
이곳에서 만큼은 서로가 서로의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호스텔 리셉셔니스트들도 반갑게 맞이해 줄 정도다. 그런데 이제 니클라스가 떠난다니. 호스텔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고 나가는 만큼 니클라스가 없다면 이제 나도 호스텔에 얼마나 자주 올진 모르겠다. 주축이었던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친구들도 모두 떠났으니 말이다.
아비게일이 오랜만에 연락을 주었다. 거의 일주일 만나고 헤어졌던 사이였는데, 잠시 시드니에 온다고 연락이 왔다. 시간 되면 만나자고. 나는 흔쾌히 좋다고 했고 시티에 있는 바에서 만났다. 아비는 시티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거처를 마련했는데, 거기서 현재 남자친구를 만났다고 했다. 빠르게 서로의 삶에 스며든 아비와 남자친구는 함께 살면서 미래를 그려나가고 있다고 했다. 영국인인 아비를 위해 영국에 갈 생각도 하고 있다는데, 보아하니 영국, 뉴질랜드, 호주와 같은 영연방 국가들의 국민들은 특별한 커넥션이 있는 듯했다. 인적 물적자원의 이동이 비교적 자유로운 듯했다.
새 입주자가 된 나를 위해 하우스 메이트들과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메뉴는 인도음식. 평소에 강한 향신료가 들어간 음식에 대한 불호가 강했던 터라 인도음식이 그리 달갑지 않았는데, 여기 온 이후 인도음식이 최애음식 중 하나가 되었다. 난에 찍어먹는 커리와 라씨는 정말 환상 궁합이었다. 마스터 학위 인턴을 위해 온 프랑스인 클레모와 그런 클레모를 따라나선 7년 연인 쟌, 그리고 전쟁을 피해 온 러시아인 친구와 인도인 아메이 이렇게 넷과 함께 쉐어하우스에 살게 됐다.
저녁식사 후에는 달링하버에 불꽃놀이를 보러 왔다. 나는 불꽃놀이보다 그들의 뒷모습을 추억으로 남겼다. 가끔씩 사람을 만나면 어느 정도 끝이 보이는 관계가 있을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쟌과 클레모의 경우 인턴십이 끝나면 다시 프랑스로 돌아갈 예정이다. 가끔 이런 끝이 보이는 관계에 쓸데없는 감정소모를 하고 싶지 않다는 이기적인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늘 실패하고 만다. 인간관계가 컴퓨터에 폴더 삭제하 듯 쉽거나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으면 모를까, 내게 쌓여가는 인간관계를 모른 체 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 이런 내 자신이 싫을 때도 있지만 그냥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해야 후회가 없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외면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과의 시간에 진심으로 임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야 앞으로 볼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해도 헤어짐에 미련이 없고, 다시 재회했을 때도 어색함 없이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