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링컨의 자서전을 쓴 칼 샌드버그 (사진 1)의 시간에 관한 유명한 말이 있다. "Time is the coin of your life. It is the only coin you have, and only you can determine how it will be spent. Be careful lest you let other people spend it for you." (시간은 당신의 인생의 화폐이다. 그것은 당신이 가진 유일한 화폐이며, 그것이 어떻게 쓰일지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당신뿐이다.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대신 쓰도록 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바빴던 시절, 시간에 대한 나의 생각은 매우 실용적이었다. 시간이 곧 나의 인생이고 한번 지나가면 다시 잡을 수 없다는 생각에 대부분의 시간을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보내려고 노력했다. "시간은 돈이다(Time is Money)"라고 믿는 현대 서양식 방식이나, 시간의 어떤 순간도 다시 일어나지 않으므로 각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현재에 감사하여야 한다는 일본의 이치고 이치에(一期一会)에서 시간에 적용한 개념을 염두에 두면서 살아왔다. 디지털 시대에 들어서면서 시간이 더 빨라진 것 같고, 즉시 그리고 계속해서 일을 처리하고 사람들과 소통해야 한다는 강박감까지 있었다. 아마 지금도 가정과 직장을 병행하며 시간과 다투면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실용적인 방식으로 시간을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시간의 개념은 확실히 시간과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 은퇴한 나에게 있어서 시간은, 각 순간마다 소중히 여겨야 하는 실용적인 개념이지만 동시에 그 효율성을 측정할 수 없는 질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순간이 포함되는 개념이다. 이제는 시간이 일정한 속도로 선형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어떨 때는 천천히, 어떨 때는 빠르고 급하게, 어떨 때는 무심하게, 어떨 때는 흥분되게 흐른다. 시간은 이제 과거이기도 하고, 현재이면서 동시에 꿈꾸는 미래가 되기도 한다. 젊은 시절의 전형적인 시간 개념이 달라져서, 이제는 마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사진 2)처럼 나의 시간의 속도와 그 중요성이 다르게 움직인다.
세월에 따라, 상황이나 문화에 따라 달라지는 시간. 그것이 어떻게 보이든, 시간은 인간 경험의 근본적인 측면이고 우리의 존재와 삶의 핵심이다. 오늘은 내가 사는 거제의 삶에서 시간의 흐름이 보이는 현장, 거제 5일장을 찾아 소개하려고 한다. 은퇴자의 삶에서 시간은 무엇이며, 어떻게 보내게 될까에 대한 궁금증이 있다면, 저의 후속 이야기를 기다려 주시기 바란다.
거제 5일장 (사진 3)은 거제도에서 가장 큰 장날로, 거제면에서 선다. 거제면은 15세기 초 이후 관청이 있던 곳으로 조선 시대 거제도의 행정 및 군사 중심지였으며 (은퇴이야기 6 링크), 당시 공립학교였던 거제 향교와 사립학교였던 반곡서원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남겨진 과거의 역사적 유산들이다.
거제면에서 열리는 거제 5일장, 일명 거제장은 매월 4일, 9일, 14일, 19일, 24일, 29일에 열린다. 매번 장날이 다가오면, 거제면이라는 과거가 보이는 장터는 현재의 활기와 흥분으로 가득 찬다. 거제면과 이웃 지역의 농부들이 야채, 과일, 쌀, 곡물 등의 농산물을 가지고 나오고 (사진 4), 어부들은 생물이나 냉동, 혹은 마른 생선, 기타 다른 해산물들을 준비한다 (사진 5). 다른 상인들은 옷, 수제 가방과 액세서리, 장화, 지역 주민들이 선호하는 상품들을 판매한다 (사진 6). 손님들은 대부분 거제면이나 거제의 다른 지역에 사는 분들이다. 오늘 담을 김칫거리, 저녁 반찬으로 생각하는 생선, 싱싱한 과일, 집에서 담은 된장 등을 사려는 사람들. 파려고 하는 상인들과 사려고 하는 손님들 사이의 긴장과 기대가 느껴진다. 이 역동적인 거제 5일장 풍경을 보고 있자면,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면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특별한 순간이 되는 것 같다. 이 비디오를 보시면 장날의 역동적인 순간들이 느껴질 것이다.
거제 5일장은 보통 아침 일찍 (아마도 6-7시경) 시작하여 오전 11시쯤 대충 끝이 난다. 나는 보통 아침 8시에서 9시 사이에 시장에 가서 구경도 하면서 신선한 농산물이나 방금 쑤어 놓은 팥죽이나 따끈따끈한 인절미나 쑥떡을 주로 산다. 양으로 보았을 때 특별히 값이 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신선하고 맛이 있다. 특히 직접 장터 현장에서 만들어 파는 죽이나 그 자리에서 뻥! 하면서 튀겨주는 뻥튀기 (사진 7)에서는 어린 시절 추억의 냄새가 난다.
물론, 거제도에는 현대화된 슈퍼마켓들이 곳곳에 있으며, 가장 큰 상설 시장인 고현 시장이 있어 장을 보거나 다양한 물건을 사기에 매우 편리하다. 이마트나 쿠팡 등 온라인 시장도 자주 이용한다. 그러나 이 거제 5일장은 거제 시골 분위기와 과거의 전통적인 맛을 완전히 경험할 수 있는 현재의 살아있는 장소다. 거제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이다.
이제, 이런 전통적인 시장이 어떤 미래를 맞이할지 상상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기술 발전과 함께, 미래의 시장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스마트폰 앱으로 실시간 재고를 확인하고, 다른 소비자들의 리뷰를 보면서 주문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드론이 거의 모든 물건을 배달해 주는 시대 (사진 8)가 곧 올 것이다. 이미 실행되고 있는 온라인 플랫폼에서 전통 시장의 상품을 주문하는 서비스가 더 확대될 것이다.
거제 5일장의 미래는 어쩌면 이러한 기술들과 결합되어 더 편리하고 효율적인 장터로 변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욱 편리하게 온라인에서 모든 거래가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거제장터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의 한 부분으로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하지 않는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고 보면 왠지 미래의 모습을 자세히 그려보고 싶지 않은 심정이다.
나에게 거제 5일장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면서, 변화하는 미래를 떠 올리게 하는 특별한 장소다. 은퇴 후의 시간은 더 이상 생산성과 효율성만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즐기며, 과거와 현재의 사람들과 교류와 추억을 쌓는 시간이 되어 간다. 이러한 관점에서 거제 5일장은 단순히 시장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시간의 흐름을 느끼고 삶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장소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 여러분이 거제에 오신다면 거제 5일장이 열리는 날을 기억하시고 한번 방문해 보시기 바란다.
참조로, 5일장의 역사에 대해 알고 싶었다. 5일장 제도는 고려 시대(918 – 1392)에 시작되어 조선 시대(1392-1910)에 크게 확장되었다고 한다. 5일장 외에도 2일장, 3일장, 10일장, 1 5일장, 연중시장 등 다양한 유형의 시장이 있었으나, 5일장이 가장 일반적이고 지속적인 형태로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 이러한 시장의 역사를 통해 왠지 시간이 계속해서 이어져 내려오는 듯하다.
조선 중기에는 전국적으로 5일장이 번성했다. 지리적으로 이 시장들은 벌집 모양으로 전국에 퍼져 있었으며, 30에서 60리(약 12 – 24km)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 이는 하루 왕복이 가능한 거리로, 상인들이 계속해서 다른 가까운 시장으로 이동하여 물건을 팔 수 있게 했다. 이러한 장날에 맞춰 시장을 여는 전통은 현대에도 계속되고 있다. 시간은 여기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상인들은 시간에 맞춰 이동하며 물건을 팔고, 그 과정에서 시간의 흐름과 함께 시장은 계속 발전해 오고 있는 것이다.
5일장은 인근 지역의 농부와 어부뿐만 아니라, 여러 시장을 이동하며 물건을 파는 유랑 상인들을 끌어들인다. 19세기 초의 기록에 따르면 전국에 총 1,061개의 시장이 있었다고 한다. 유사한 시장 시스템은 다른 나라에서도 발견되며, 이는 영구적인 시장이 생기기 전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지나면서 5일장의 유행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일부 지역에서는 유지되고 있다. 전국의 5일장 총개수를 보여주는 통계는 없으나, 웹사이트에 수백 개의 정기적으로 열리는 시장 목록이 있으며, 5일장의 지속적인 전통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예로, 수도권에서 규모가 큰 모란 5일장 (사진 9)이 있다. 이 시장은 매월 4일과 9일에 열리며, 950개의 노점이 다양한 상품과 농산물을 제공한다고 한다. 근처에 사시면 한번 방문하셔서 서민들의 삶 속에서 시간의 흐름을 느껴 보시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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