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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규 Sep 12. 2021

지리 기술 제도

세계화의 시대들

'나는 미래에 대한 통찰을 얻기 위해 우리 시대의 세 가지 이슈를 생각해보려 한다. 첫째, 세계는 일곱 번째 세계화 시대를 맞이하여 공유된 번영, 사회적 포용, 환경적 지속 가능성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이것을 지속가능한 발전의 도전이라고 부른다. 둘째, 영국과 미국의 시대가 끝나고 이제 진정한 다극화 시대에 들어선 것처럼 보이는데, 우리의 글로벌 행정을 어떻게 조직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이것을 다원적 행정의 도전이라고 부른다. 셋째 글로벌 평화는 가능한가?'


이처럼 직관적이며 명료하게 세계화를 그려내는 책이 있을까. 하름 데 블레이와 유발 하라리, 재레드 다이아몬드와 니얼 퍼거슨의 저작들을 간추려서 재정렬한 듯한, 짧지만 강렬한 세계화 개념서가 아닐까 싶었다. 저자 제프리 삭스는 세계화를 일곱 가지로 구분한다. 구석기 시대, 호모 사피엔스의 대 분산에서 시작된 1. 호모 사피엔스의 세계화. 신석기 시대, 확산하는 농업에서 행운의 위도들 중심으로 발달한 문명에 대한 이야기, 2. 농업의 세계화. 인간이 말을 길들이기 시작하면서 비약적으로 세상이 좁아지고, 그 가운데 문명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시작된 3. 말이 주도한 세계화. 농업으로 형성된 문명 위로 건설된 왕국들이 재화의 교류를 통해 제국으로 발돋움하고, 그 가운데 출현한 제국들의 흥망성쇠가 담긴 4. 정치의 세계화. 해양으로 향했던 서구와 대륙에 머물렀던 중국의 역사를 교차하며 보여준 5. 제국주의의 세계화. 산업 시대의 시작과 함께 서구의 기술과 남미, 인도를 위시한 식민지들의 원료, 그리고 아프리카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굳건한 식민 경제를 만들어낸 서구 제국주의의 역사가 담긴 6. 기술과 전쟁의 세계화. 마지막으로, 디지털 시대에서 여전히 식민의 잔재에 의해 건설된 자본주의의 영향에 따라 지속되는 7. 불평등의 세계화까지. 삭스의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지리와 기술, 그리고 제도가 어떻게 각 세계화에서 영향을 미쳤고, 어떤 형태로 세상을 발전시켜 왔는지를 직시할 수 있다.


삭스의 지리 기술 제도는 하름 데 블레이가 언급했듯, 환경 결정론을 바탕으로 여러 문명이 타 문명보다 성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행운의 위도라는 개념으로 설명해낸다.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주장했던 총, 균, 그리고 쇠의 중요성은 총은 기술로서, 균은 지리로서, 쇠는 지리와 기술 그리고 제도로서 그의 책에 녹아들어 인류의 성장과 일곱 번의 세계화 그리고 제국의 출현과 패권국가의 전쟁, 더 나아가 불평등을 아우른다. 그는 하라리처럼 허구의 신화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지도 않고, 퍼거슨처럼 문명의 충돌을 묘사해내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그려냈던 세계를 더 쉬운 방법으로, 간단하고 직설적으로 주조해낸다. 인류는 어떻게 성장하고 교류하며 서로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서로를 착취해왔는지, 그와 동시에 경쟁하며 다투고 화합해왔는지 말이다. 그는 그 일련의 상호작용에서 지리와 기술, 그리고 제도라는 가장 기본적인 개념들이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를 역사적 사실에 따라 분석해낸다.


삭스의 책은 현재의 세계화 현재의 세계를 이뤄온 역사의 서사를 이해하는데 아주 좋은 지침서이자 기본 개념서이다. 그의 책은 난해한 구석 하나 없이 통계와 사료로 중무장한 채 새로운 주장 없이 담담히 인류가 건너온 세계화의 시대들을 그려낸다. 결국 우리가 지금 이 복잡다단한 사회 속에서 다수의 문화와 각자의 역사를 지니고 살아갈 수 있는 데엔, 지리와 기술, 제도의 역할이 컸다고 할 수 있겠다. 그가 이 간결한 세계화 개론서를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결국 일곱 계단을 건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불평등 또한, 지리와 기술, 그리고 제도로 해결할 수 있다는 그의 희망 섞인 바람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산업혁명은 지리, 기술, 제도가 상호작용한 결과로 생겨난 것이다. 그런 복잡한 상호작용이 있었기 때문에 산업혁명이 그러첨 놀라운 사건이 될 수 있었다. 여러 가지 요인들의 결합으로 놀라운 돌파구가 마련되어 상업적 성공을 거둔 증기기관이 탄생한 것이다. 이런 변화의 동역학을 이해하기 위해 지리, 기술, 제도의 세 영역을 상호작용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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