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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퀸 Jan 11. 2024

08 낙타가 바늘구멍에 통과하려면 말이지.

욕심은 나는데 욕심을 버리기가 어려웠다.


면접이 끝났다.

호텔(면접장)에서 나왔다. 손목시계를 봤다.


"새벽 1시"



하... 승무원...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1차전 시작.


금발머리 면접관이 나와 눈이 마주쳤다. 손짓한다.

"심장아 나대지마."

"에라이 모르겠다!"



그동안 수십번은 다듬고 다듬었던 이력서 한장을 들고 간다. 어깨펴고 눈빛쏘며 당당히 걷는다. 심장이 쿵쿵거린다. 몸은 떨고 있다. 나의 필살기가 있잖아? 나도 모르게 내 입은 '입이 째져라' 웃고 있었다.


"그래 이거지! 내가 이러려고 그동안 미소연습 한거지!"

그녀 앞에 선다. 그녀의 이름은 '리아'. 금발에 포니테일, 안경, 깔끔한 정장의 리아는 굉장히 지적여보였다.



난 면접을 볼때면 이 자리에 오기까지 준비했던 과정들이 생각난다. 그래서 이 자리가 너무 귀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앞에 있는 기회를 꼭 잡고 싶어진다.


다시는.

더이상.

원점으로 돌아가기 싫어서.


이때의 나는 마치 모래를 꽉 움켜쥔 모습이었다. 그럴수록 모래는 손가락 사이로 스르륵~ 다 빠져나갔다. 정확히 그랬다. 나는 합격해야한다는 압박감이 심했다. 모래를 꽉 움켜쥔 내가 짓고 있던 표정은 어땠을까?



나는 이제 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까지 다 떨어졌는 걸? 여기서 나가면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은 지나가는 금발머리 외국인에 불과했다. 최대한 집중했다. 마음은 무겁지만 한편으론 가벼웠다. 정말이지 무겁고도 가벼운 이상한 마음이었다. 그 짧은 시간 리아와 나는 대화를 이어나갔다. 리아는 나의 어떤 모습을 봤을까?



리아의 손이 바빠진다. A4용지 반만한 종이에 무언가 적는다. 그리고 나에게 건넨다. "너 다음엔 화장 좀 진하게 해서 와. 그리고 반팔 입고 와."



???



1차 합격이다!!!!

그 종이는 합격하면 준다는! 그 종이였다. 다음 면접날짜와 시간이 적혀져 있었다.



처음이었다. 높디 높은 벽처럼 느껴졌던! 중동항공사 1차 합격. 처음 도전했을 때 이건 내 능력 밖이다. 생각했던! 그 벽이 무너진 순간이었다.



얼떨떨했다. 나오자마자 울었다. 줄 선 지원자들이 나를 부러워하는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나도 그들처럼 그랬다. 그렇지만 난 최종합격이 아니다. 겨우 1차 합격이다. 이번 면접의 목표는 1차 합격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됐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2차 면접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막막했다. 다다음날이 2차 면접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2차 면접을 준비했다. 영어 필기test와 뭘 물어볼지 감 조차 오지 않는 면접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어려웠다.


'욕심은 나는데 욕심을 버려야 하는 내 마음'

이 마음을 다스리는게 제일 어려웠다.





2차전 시작.


"화장 진하게. 반팔로." 조언해 준 그대로 다 바꿨다. 긴팔은 아니지만 반팔보다는 길었던 면접복을 반팔로 잘라버렸다. 화장도 머리도 내가 다 하고 출발했다.

난 오후 면접이었다. 호텔 로비에 지원자들이 보인다. 1차에서 붙은 친구들이라 그런지 다들 출중해보인다. 오전 면접에서 합격한 지원자들이 나온다. 최종면접만을 앞둔 그들의 표정. 오후 면접조 지원자들이 부러운 눈으로 본다.


"나는 어떻게 될까?"



영어 test 곧 시작. 아무도 맨 앞자리에 앉지 않는다. 왜? 면접관이랑 딱 마주보고 얼굴 도장찍기 좋은 위치네. 오케이. 제일 앞, 제일 가운데 자리에 앉는다. 면접관과 제일 가까운 자리였다. 솔직히 나도 앉기 싫었다. 그런데 그냥 그렇게 해야할 것 같았다. 용기를 냈다. 사실 그 자리로 가는 것 마저 심장이 떨렸다.


"어차피 또 떨어질건데 모 아니면 도다. 에라이 모르겠다."

착석완료.



그렇게 영어 test 합격! 그리고 대망의 2차면접이 바로 시작됐다.

나는 한참을 기다려야했다. 지원자들이 걱정 한가득 얼굴에 머금고 한명씩 들어갔다 나온다. 이때 지원자들은 모두가 한마음이었다. 서로 어떤 질문을 받았는지 공유했다. 대충 들어보니 겹치는 질문이 어째 단 한개도 없었다.



역시 듣던 대로였다. 한국 지원자들이 워낙 준비를 잘해서 까다로운 질문이 많았다. 기출문제에 없는 새로운 질문들이었다. 시사, 세계이슈, 평소에 전혀 생각하지도 않은 질문들이 연이어 나왔다. 한국어로도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도 많았다.



심장이 요동쳤다.

"하... "

"나 그동안 진짜 열심히 준비했는데... "



지원자들이랑 이야기 할수록 분위기에 휩쓸리는 것 같았다. 혼자 뚝 떨어져서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질문에 대한 집착을 버렸다. 여기서 중요한 게 뭘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러는 사이 호텔 밖은 어둑어둑해졌다. 저녁 8시. 높은 힐을 신고 몇시간 째 죽치고 있는지 체력이 달렸다. 면접 자체가 체력 테스트를 하는 느낌이었다.



“와 이거 두번은 못하겠다…”



나는 안되겠다 싶었다. 1차 면접때 처럼 다시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쳐지는 텐션을 다시 끌어올려야만 했다. 춤까지 췄다. 발악이었다. 내가 지금 이 면접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최종면접을 가느냐 못가느냐. 떨어지면 또 다시 원점이었다. 욕심이 났다. 그럴수록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너무 어려웠다. 이 마음을 누르는 게. 그럴수록 내 자신에게 타이르듯이 얘기했다.



"야. 너 이게 뭐라고 떠냐? 우주의 먼지같은 존재야. 지나면 그만이야. 어차피 떨어질거 마음대로 해." (최대한 우주를 생각하며..)



돌이켜보면 이 한마디가 나에게 큰 힘이 됐다. 나 자신에게 거는 마법같은 말이었다. 그만큼 나는 제발 좀 편하게 임하고 싶었다. 면접 답변 중얼거려봐야 소용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많이 지쳐있을 면접관을 즐겁게 해줘야겠다. 이 생각뿐이었다.


"Forty(40)"

내 번호가 불린다.

"에라이 모르겠다."



비트가 있는 신나는 싸이 음악을 듣다가 들어갔다. 둠칫 두둠칫. 그 느낌 그 텐션 그대로 들어갔다. 밝은 에너지를 마구마구 뿜어내며 "Hello~~~~~"


역시나 면접관 2명이 지루함을 뿜어내며 앉아있다. 들어가자마자 암리치를 쟀다. 구두를 벗고 체크 표시한 곳까지 손을 뻗어 닿아야 한다. 난 키가 작은 편이 아니다. 그런데 암리치가 생각보다 높았다. 살짝 긴장이 됐다. 암리치가 닿지 않으면 면접도 못보고 집으로 가야한다. 최대한으로 뻗었다. 그 와중에 나는 뒤에도 눈이 달린 듯 입이 째져라 웃고 있었다.


닿았다. 오케이 싸인이 떨어졌다.


보기만 해도 부담스러운 커다란 조명 2개가 나를 비추고 있었다. 너무 떨렸다. 팔을 내밀어보라고 한다. 흉터가 있는지 문신이 있는지 체크한다. 이제 질문이다. 질문지를 뽑는 것 마저 즐겁게 뽑기로 마음먹었다. 게임하듯 둠칫 두둠칫 그 느낌 그대로 신나게 질문지를 뽑아들었다. 그 신남이 면접관에게도 전해졌는지 그제서야 면접관도 한국 간식 같은 것을 까먹으며 얘기하기 시작했다.


쨥쨥~ 거리며 자기들끼리 한국 간식에 대해 얘기한다. 당 충전을 하는 것 같았다. 난 그 둘이 너무 귀엽게 느껴졌다. 마치 미드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분위기는 또 처음이라 신선했고 신기했다.


"와~ 이만큼 자유롭다고? 내가 떨 필요가 없구나."


아침부터 지금까지 하루 종일 면접을 이끌고 있을 이들이 나보다 더 지쳤을 것이다. 내가 이 둘을 즐겁게 해줘야겠다 이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다 지켜보는 것이 이들이기에 끝까지 긴장했다. 역시나 내가 말할 때 피부상태를 다 보는 것 같았다. 그 예리한 눈으로. 체크체크. 척하면 척. 사람뽑는 기계처럼 속전속결이었다.



나는 내가 의도한 대로 면접을 봤다. 멘탈 잡은 게 8할이었다. 철저히 전략적으로 준비했다. 뭔가 느낌이 좋았다. 하지만 느낌이 좋았다고 생각했을 때 마저 떨어진게 한두번이 아니였기 때문에 절대 절대. 섣불리 판단하지 않았다.


"이렇게 빨리 끝날 면접을 몇시간을 기다려 들어간거야?"


오후 1시에 도착해서 밤 11시가 되서야 나왔다. 진이 다 빠졌다. 모든 지원자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한다. 그 자리에서 합격자를 호명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축 늘어져 지쳐있었다. 다음 지원자가 또 들어간다.


나는 그 사이 좀 친해졌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를 기다렸는데 친구의 모습이 심상치가 않았다. 묻기도 조심스러웠다. 암리치가 닿지 않아 면접도 못보고 집으로 간다고 했다. 울먹이는 그 친구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그 친구는 1차면접 때부터 호텔(면접장)에 숙박하는 중이었다. 5성급 호텔이라 가격이 꽤 비싸지만 어쩔수 없다고 했었다. 참 너무한다 싶었다.



승무원 면접이 이렇게나 어렵다. 어떤 사람은 한번에 합격하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주변 사람들 대부분은 여러번 두드리고 두드려 합격한다. 그래서 다들 이렇게 말한다.


승무원 고시.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 보다 어렵다고. 정말 공감한다.



그렇게 오후 1시에 갔던 면접이 밤 12시 가까이 되서야 모두 끝이 났다. 아예 엎드려 자고 있는 지원자도 있었다. 늘어짐 반, 긴장감 반이 섞인 대기장소에 면접관들이 왔다. 드디어 결과발표다! 모두가 집중해서 바로 앉아 귀를 쫑긋 세운다.



두근두근. 내 번호는 "40"



모두가 숨죽이고 기다린다. 면접관이 마이크를 든다. 번호를 호명한다. 그때부터 누군가는 짐을 싸기 시작하고 조용히 나간다. 누군가는 소리없는 환호를 내며 기뻐한다.


나는? 나는?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나? 쿵! 쿵! 심장이 나올 것 같았다.

번호가 불렸다!


???


"Fourteen?"

"Forty?"


순식간에 지나간다. 내 번호는 왜 또 40번일까? Forty냐 Fourteen이냐. 둘다 있으면 좋았을 것을. 둘중에 하나는 확실히 있었다. 확인이 필요했다.




한번 더 호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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