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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퀸 Jun 16. 2024

16-2 인도에서 택시기사가 다른 곳으로 간다면?

모든 것이 필름처럼 지나간다.


호텔에서 택시를 불러줬다. 병원으로 출발.

그런데 이 젊은 남자 기사.

병원을 그냥 지나쳐간다. 폰으로 몇번이고 확인해본다. 분명히 지나갔다.


심장이 뛴다.

나 이제 어떡하냐.






뜻하지 않은 인도에서의 강제 레이오버 시작.


눈이 떠졌다. 아침이다.

"(순간) 여기 어디지?"



정장을 그대로 입고 덜덜 떨다가 언제 잠이 들었는지 꽤나 오래 잤다. 역시 잠이 보약. 자다 깨니 몸이 좀 좋아진 것 같았다. 넓디 넓은 침대에 내 체온으로 따뜻해진 한 부분에서만 요리조리 몸을 뒤척여본다.



걱정하고 계실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엄마께서는 억지로라도 뭘 먹으라고 걱정하셨다. 그래. 살고 봐야지. 검정색 정장에 구두를 신고 엉거주춤 천천히 걸어서 레스토랑으로 갔다. 한발짝 한발짝 떼는 것도 너무 힘이 들었다.



내가 좀 안되보였는지 하나같이 친절한 호텔 직원들. 마음이 조금은 녹는 것 같았다. 그치만 레스토랑에 들어가자마자 인도 특유의 향에 속이 좋지 않았다. 확실히 컨디션 꽝. 먹을 수 있는 무난한 것만 가져왔다. 빵, 오믈렛, 과일, 요거트가 다였다. 한국.. 이때만큼은 한국이 그 어느때보다 생각이 더 많이 났다. 당장에 가고 싶었다.



외국 생활을 하며 힘든 점이 있다면,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 지 모른다는 것. 항상 매번 그렇다. 특히나 나는 자유롭게 세계를 다니며 여행을 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여행 아닌 비행. 엄연히 일하러 회사에 입사를 한 것이기에 자유롭게 뭘 할 수가 없다. 이렇게 아플 때도 회사 절차를 따라야만 했고, 아프지만 내가 해야할 게 있었다. 게임 퀘스트 깨듯 하나씩 해결해나가야 한다. 혼자 힘으로. 그래서 이 날의 할일은 우선 회사 전화를 받아야 하기에 충전기 구입, 그리고 현지 닥터를 만나 진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 + 또 회사가 요구하는 게 있다면 그 절차를 따르는 것 까지.



그렇게 나는 거의 느림보 거북이 마냥 기다시피 아침을 해결하고 충전기를 사러 나섰다. 여분의 옷이 없었기 때문에 이대로 자고 이대로 먹고 이대로 나가야했다. 인도.. 밖에 나가는 순간 땀이 삐질삐질 날 만큼 더웠다. 하지만 썬크림이고 뭐고 다 귀찮아서 그냥 나갔다. 버스에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타서 어디론가 간다. 그런데 모두들 하나같이 나만 본다.



그래. 참 특이하지? 이 더운날 긴 정장이라니.. 옷차림도 눈에 띄는데 검정머리와 검정눈을 가진 동양인 여자가 이상해 보였을거다. 더군다나 기력이 없어서 구부정하게 천천히 걷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저 여자 정체는 뭘까 싶었을 것이다. 그 시선이 낯설고 너무 무서웠다. 그리고 인도는 여자 혼자 다기니 무서운 나라. 그 생각으로 가득차서 나가자마자 돌아오고 싶었다.



길을 나서니 호텔과 연결된 상가의 한 가게에서 일하는 말끔한 직원이 바로 보였다. 정장을 입고 인사를 먼저 건네길래 충전기 살 수 있는 곳을 바로 물었다. 근처에 있다며 따라오랜다. 친절하긴 했지만 혹시 모르니 계속 경계를 했다. 드디어 보이는 전자기기들. 내가 좀 불쌍해보였는지 이 친구가 보호자 마냥 옆에서 대신 말해준다. 그리고 직원은 충전기를 몇개 꺼내 보여준다. 나는 이것저것 따질 필요없이 바로 사겠다하고 카드를 내밀었다.



어라? 안된다고? 왜?




현금만 된단다. 하.. 현금을 지금 어디서 뽑냐고.. 계좌이체는 더 말이 안된다. 거의 울다시피 울상을 하고 뒤돌아섰다. 이 인도 친구는 날보고 도로 건너서 가면, 여기보다 더 가게도 많고 카드로 살 수 있을거라 했다. 솔직히 엄두가 안났다. 햇빛은 내리쬐서 얼굴은 따갑고, 덥고, 횡단보도도 없고, 도로 건너 가게가 있다는데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는 않고, 허리는 못펴겠고.


죽을 맛이었다.



혼자 보내려다 또 내가 불쌍해보였는지 같이 가주겠다고 했다. 도로를 건너는데 인도사람들 모두가 나를 쳐다본다. 달달달 소리가 나는 거의 허물어진 작은 버스에 인도 사람들 몇명이 탔는지 휘청휘청 넘어질 것 같은 버스는 잘도 달린다. 버스에 탄 사람이 다들 나를 본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지금 여기 이러고 있는게 황당할 뿐이었다.



그렇게 따라가니 삼성이라고 적힌 허름한 간판도 보인다. 허름하지만 무언가 빛나 보였다. 여기서 삼성이라.. 뭔가 마음이 놓였다. 아까보다 훨씬 최신 버전같은 가게로 보였다. 충전기도 여러 종류가 있었다. 가자마자 물었다.


"카드 돼?"


된단다! 오케이. 바로 사겠어. 여러가지를 보여줬다. 한 충전기에 usb 두개가 꽂히는 것도 있었고, 색상도 블랙과 화이트가 있었다. 그 와중에 나도 모르게 따져보고 고르고 있었다. 이때는 좀 덜 아팠나보다. 인도 친구는 옆에서 가만히 지켜본다.



그렇게 하나는 해결했다며 득템하듯 사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 마음이 너무너무 든든했다. 이 친구에게 너무나 고마웠다. 본인 근무 시간에 이렇게 여기 저기 데려다니며 날 도와줬는데 그냥 가자니 마음이 무거웠다. 그리고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 친구는 한국인이 처음일텐데 그 처음이 나라니..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싶었다.



사실 지금 두 발로 서있는 것도 힘든데 고민을 좀 했다. 어떻게 해야하지? 너무 힘든데 그냥 갈까..? 내가 뭘 해 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시원한 커피를 사주겠다 했더니, 아까 그 호텔 건물 상가에 있는 카페로 나를 안내했다. 그런데 카페로 들어서자마자 바로 나오고 싶었다. 내가 생각한 카페가 아니였다. 그냥 우리가 생각하는 '카페'가 아니었다. 아니. 카페는 맞지만 카페로 보이지 않았다. 파리가 막 날아다니고 냄새도 나고 또 한번 올라올 것 같았다. 나는 그냥 커피 계산만 하고 바로 호텔로 가려는데, 이 친구는 나도 같이 마시는 줄 알았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그 공간에 익숙한 듯 앉아있다.


"이봐. 인도 친구야. 정말 미안한데 너도 보다시피 내가 몸이 너무 안좋아. 지금 바로 가야해. 회사 전화도 받아야 하고. 혹시 너 이름이 뭐니?"


그렇게 난 호텔로 가서 아이스 커피 한잔을 사 그 친구네 일터로 느릿느릿 구부정한 채로 가서 커피를 전해줬다. 정말 고맙다는 말과 함께. 그 친구는 호텔 커피는 처음이었는지 좋아하는 눈치였다. 오케이. 마음의 짐도 덜어냈고 충전기도 해결.



그 다음 퀘스트. 내가 해야할 일은 현지 닥터 진료를 받는 것. 크루들이 해외 나가서 병가를 내면 현지 닥터가 찾아온다. 또는 내가 가야한다. 나는 이때가 처음이었는데 정말 본인 거동도 힘들어보이는 할아버지가 간호사와 같이 와서는 나를 이리저리 체크하고 진찰하기 시작했다. 이 닥터의 승인이 있어야 나는 비행기를 타고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니까 비행기 타기에 몸 상태가 괜찮은지 무리가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였다. 나는 무조건 좋아졌다고 괜찮다고 했다. 이것저것 체크하더니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아.. 드디어 가는구나. 마음 편하게 충전을 시켜놓고 잠을 청했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무슨 절차가 많은지 잠에 좀 들려고 하면 계속해서 전화가 왔다. 자다가 전화를 못받으면 호텔로까지 전화가 와서 그 시끄러운 호텔 전화 벨소리에 깜짝 깜짝 놀래 잠을 편하게 잘 수가 없었다. 하.. 아파도 편하게 마음놓고 아프지도 못하구나. 이때 나는 느꼈다. 나 진짜 일하러 온 사람이구나. 자유로운 몸이 아니구나.   



그렇게 나는 계속 해서 잠을 잤다. 약도 먹을 것도 변변치 않아 자야만 나아질거라 생각했다. 저녁이 되고 회사에서 또 전화가 왔다. 잠결에 받은 전화였지만 내용을 듣고는 바로 정신이 들었다. 이유는.


코로나 음성 결과지가 있어야 탈 수 있다며, 그러니 바로 검사하고 보고하라는 것.


??????????????


바로 시간을 확인했다. 밤 8시에서 9시로 넘어가는 시간. 밖은 이미 캄캄했다. 새벽비행이라 몇시간 뒤 드디어 가나 싶었는데 뜬금없이 이 시간에 검사를 하라니. 아까 그렇게 전화할 때 그때 좀 일찍 말을 해줄 순 없었을까? 너무 너무 미웠다. 우리끼리 말하는 '카타르가 또 카타르 했다' 싶었다. 한번씩 이렇게 일처리 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 혼자 속이 터지는 것 같았다. 여기 하루 더 있을 순 없었다. 먹을 것도 마땅치 않고 옷도 불편했고 여기 있다가 더 병이 날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이 시간에 혼자 또 병원에 갈 생각을 하니 무서웠다. 인도..



부랴부랴 호텔측에 말을 했다. 코로나 검사 할 수 있는 곳으로 가야한다고. 마침 딱 한군데 있다며 택시를 불러준다고 했다. 겁이 많은 나는 그 택시 안전한 거 맞냐 몇번이고 묻고 물어 출발.



캄캄해진 인도의 풍경이 보인다. 우리나라와는 참 많이도 달랐다.

'아유. 참 돌아가기 힘들다.. 마음 편하게 좀 자고 싶다..'



휴대폰으로 구글 지도를 펼쳐 제대로 가는지 보고 있었다. 하.. 내가 여기서 혼자 이걸 타고 인도 병원을 가다니.. 그 조마조마한 불안함.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어쨌든 길을 잘 가고 있었다. 병원의 표지판과 간판도 서서히 보였다. 어!! 저기다! 다왔다.


했지만,

이 기사가 그냥 지나치는 것이었다.

?????????????????



이때부터 심장이 뛰었다. 안그래도 혹시.. 정말 혹시..하며 계속 불안했는데! 너무 다급해지면서 화가 났다. 다짜고짜 저기라고!! 화를 내고 싶었지만 순간 이 기사가 내 목숨줄을 쥐고 있다 생각하니 아무렇지 않게 말해야겠다 싶었다. 폰을 보여주며 차분하게 말했다. 저기 맞다며. 이름이랑 사진 보라고. 그랬더니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인 줄 알았다며 실수했다며 이 길로 가면 다시 이 병원이 나올거라 했다. 정말 헷갈려서 지나친 건지, 일부러 그러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는 길이 아닌 새로워 보이는 길로 가는데 나는 믿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 친구에게 영통을 걸었다. 부모님께 전화를 하면 너무나 걱정하실게 뻔했고 한국 시간도 늦은 시간이었다. 친구에게 상황을 설명했고, 친구는 영통을 하며 내가 비쳐주는 인도의 모든 풍경을 캡쳐하기 시작했다. 혹시나 해서.


아니나다를까 돌아가는 길인건지 뭔지 사람도 점점 보이지 않고, 가로등도 점점 없는 곳으로 가는 것이었다. 불안했지만 믿었다. 설마 나한테 그런 일이 있을까. 하늘이 나를 살려줄거라. 나는 절대 그런 일이 없을거라 믿었다.



(하나도 초조하지 않은 척, 무섭지 않은 척) 차분하게 다시 물었다.


"잘 가고 있는거지?"


구글 지도를 직접 보여주며 말했다. 그리고 내가 계속 친구와 영통을 하고 구글 지도를 보고 있다는 것을 인지시켰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걱정말라며 이 길이 더 빠르다며 곧 도착할거라 말했다. 이때가 정말.. 시간이 가장 느리게 갔던 것 같다. 순간 내가 아픈 줄도 몰랐다.


그리고 아까 봤던 간판과 길이 보였다. 병원이다.

휴.. 살았다.


진짜 마음 같아선 마음에 있는 말을 다 쏟아내고 싶었다.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무섭고 마음 졸였는지 아냐고!!!!!!!!!! 내 심정을 지금 아냐고..!!!!!!!!!! 그리고 몇분이면 갈 병원을 돌아오는 바람에 30분이나 걸렸다고!!!!! 검사 결과 빨리 못받으면 또 하루 더 있다가 가야된다고!!!'


속으로만 말했다.. 내가 어쩌다 여기 와서 이러고 있나, 아파도 마음 편하게 아프질 못하니 무언가 북받치면서 서러웠다. 기사는 나에게 길을 잘 몰랐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그저 도착했음에, 아무일 없음에 감사했다. 그러고 그럴 시간도 없이 바로 검사.



인도 병원 냄새. 낯설다. 한국이든 인도든 세계 어디서든 코로나 검사는 똑같나보다. 면봉 같은 것을 콧구멍에 참 깊숙이도 쑤셔 넣는다. 콜록콜록- 기침이 나온다. 또 서러웠다.



결과는 몇시간 뒤에 나온다며 호텔로 돌아가라 했다. 이 한 문장으로 표현하기엔 인도 병원 절차는 누구 하나 급할 것 없이 참으로 여유로웠다. 나 혼자 팔짝 뛸 노릇이었다. 어쨌든 하나씩 퀘스트 깨듯 해결해왔다. 하지만 또 마음 졸여야 할 게 또 몇 가지가 남아있다.


다시 돌아갈 택시, 코로나 검사 결과, 비행기 타러 갔을 때 빈자리(내 자리)가 있는지 여부.

모든게 잘 풀리길 바랬다. 이 중 하나만 틀어져도 나는 도하로 갈 수 없었다. '도하로 가고 싶다.'는 마음은 처음이었다.



다행히 돌아갈 때는 헤매는 것 없이 잘 돌아갔고 호텔에서도 나를 반겨줬다. 그리고 나는 또 기어가듯 내 방으로 가서 짐을 싸며 결과를 기다렸다. 좀 일찍 말해줬으면 낮에 갔을텐데 하필 밤에 가서 심장 졸이는 일을 겪고 오니, 몸이 너덜너덜 말이 아니었다. 그리고 또 걱정이 됐다.


'혹시 코로나? 아니겠지..?'

그럼 정말 최악이다. 격리된 채로 일주일 넘게 여기에 혼자 있어야 된다. 정말 아니길 바라고 바랬다.



띠링띠링- 호텔 전화가 울린다.

결과는!! 음성!!


 

와 드디어 간다!! 코로나는 아니고 감기몸살인가보다. 마음만큼은 가벼웠다. 이제 공항에 가서 내가 탈 자리만 있으면 된다. 나는 승객으로 가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는 거의 풀플라잇이라 또 마음을 졸였다. 유니폼을 입고 비행기 입구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나 좀 제발 태워가라.. 자리 없으면 화장실에라도 묶어서 좀 가주면 안되겠니..



다행히 나는 도하로 돌아갈 수 있었다. 다시 정장으로 갈아입고 내 좌석에 앉았다. 크루들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항상 정장을 들고 다녀야 하는데, 나는 이걸 입고 먹고 자고 하루종일 입고 다녔던 샘이었다. 그래. 유니폼 입고 먹고 자고 충전기 사러 돌아다닐 순 없잖아.. 다시 한번 생각하니 정장이라도 있어 다행이다 싶었다.



그렇게 안전하게 도하로 돌아가나 싶었는데 이때부터가 또 다른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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