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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퀸 Jun 27. 2024

17 비행기에서 받은 플러팅

전세계의 플러팅은 비슷한 걸로



"번호 묻는 사람 없어?"


승무원 생활 하며 주위에서 다들 이것이 궁금한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묻는다.

이 말을 들으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바로 손님이 아닌 같이 일하는 '남자 크루'의 플러팅.






방콕 비행이었다. 유난히 이코노미 크루들의 합이 좋았다. 우리 회사의 대부분 크루들은 마음씨가 예쁘다. 본인 할 것만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돕는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유난히 즐겁고 신나는 비행이 있다.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같이 일하는 크루가 정말 재밌거나 유머감각이 넘친다거나 흥이 많다거나 그러면 일 할 때도 그 에너지를 고스란히 받아 재밌게 일을 할 수 있다. 이 비행이 딱 그랬다.



방콕은 관광의 도시였던가. 그럴수록 비행은 힘들다. 왜냐면 그만큼 많이들 가기 때문에 그 많은 좌석은 승객으로 가득 찬다. 풀 플라잇. 이날 방콕 비행의 승객은 다채로웠다. 어느 인종할 것 없이 유럽, 아시아 등 여러 인종이 골고루 섞여 있었다. 그리고 단 한번도 앉지 못할 만큼 바쁘고 바빴다.



이때 한 남자 크루가 있었는데 나를 잘 챙겨줬다. 이때만 해도 모두가 서로 잘 도우니 처음엔 그러려니 했다. 남자 크루 둘, 여자 크루 나 포함해서 둘. 4명이서 원년멤버인 듯 쿵짝이 참 잘 맞았다. 말하지 않아도 척척. 다들 또 하나같이 유쾌해서 장난치면 주거니 받거니 했다. 비행하면서 재밌다고 느낀 적이 거의 없었는데 이 비행이 손에 꼽을 만큼 재밌었다. 덕분에 그 바쁜 비행에 모두 으쌰으쌰해서 무사히 랜딩.



나는 보통 비행을 갈 때 처음 가는 나라면 하고 싶었던 리스트를 쭉- 적어 꼭 하고 돌아온다. 이날은 방콕 첫 비행이었어서 레이오버 시간이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다 하고 오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크루들 모두 짧은 레이오버 시간에 근처로 나갔다가 잠을 청할거라 했다. 날 보며 같이 가자고 했지만 나는 정해놓은 스케쥴이 있다며 거절했다. 딱 이 4인조가 멤버인 듯 똘똘 뭉쳐 일을 했어서인지 내가 가지 않겠다고 하니 모두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그날 도착해서 그날 출발하는 말도 안되는 짧은 레이오버 시간에 맞춰 후닥닥 일정을 해내고 돌아왔다. 그리고 도하로 다시 돌아가는 길, 다시 만난 4인조 멤버들. 출발할 때 부터 힘들었지만 이 친구들 얼굴만 봐도 재밌고 힘이 났다. 이 멤버로 계속 일하면 얼마나 좋을까? 정말 많이 아쉬웠다. 돌아갈 때는 나만 멀리 떨어진 포지션을 받아 떨어져서 가게 됐다. 아직 갤리(기내 주방)가 익숙하지 않았던 내가 갤리 포지션을 받아 심히 뚝딱거리고 있었다.



그때 그 남자 크루가 나에게 오더니 걱정말라며 '내가 자주 여기로 올게.' 하더니 그 뒤로 정말 틈틈이 와서 도와주는 것이었다. 이 남자 크루는 인도출신이었다. 이 정도면 인도 사람과 나와의 인연은 참 특별하다 싶다. 내가 경험한 인도 사람은 모두 스윗한 사람. 이때만 해도 저 친구는 참 착하구나. 나의 지금 고단한 마음을 잘 헤아려주는구나 했다. 나는 바빠서 정신이 없었지만 뒤늦게 생각해보면 정말 틈틈이 도와줬다. 보딩하는 그 바쁜 시간에 굳이 내가 있는 갤리까지 와서 나를 도와준 걸 보면 마음에 있었던 것이다. 그때만 해도 익숙하지 않은 갤리 포지션을 해내느라 삐질삐질 땀 흘리며 긴장이 되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왜냐면 스페셜밀이 없다거나 밀 갯수가 다르다거나 등등 갤리에서 실수를 하게 되면 곤란한 일이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서비스가 끝나고 모두가 잠든 평화로운 꿀 같은 시간. 이 친구는 내가 있는 갤리로 또 왔다. 손에는 달달한 사탕과 초콜릿을 들고 나에게 건넸다. 무언가 마음이 짠했다. 그 뒤로도 굳이 내가 있는 갤리로 몇번씩 들렀다. 그때부터 좀 자주오네? 싶었다. 그리고 나는 다른 멤버들의 근황이 궁금해 그 친구들이 있는 갤리로 찾아갔다. 같이 크루밀(승무원 기내식)을 먹고, 방콕에서 뭘 했는지 얘기를 나눴다. 내가 눈이 건조해서 인공눈물을 눈에 넣고 있는 걸 보더니, 그 남자 크루도 어느새 내가 있는 갤리로 쪼르르 와서는 본인도 필요하다며 달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 멤버들?은 영상과 사진을 서로 찍으며 몰래 추억을 남겼다. 내가 포즈를 요렇게 하면, 그 친구도 요렇게 하고, 저렇게 하면 저렇게 하고, 윙크를 하면 따라서 윙크도 했다. 나는 이때만 해도 몰랐다. 이 정도면 내 눈치는 0인가..?



그리고 이 친구는 랜딩할 때까지 내가 있는 갤리에 틈틈이 와서 말동무도 되어주고 힘내라고 얘기도 해주고 내 일을 자기 일처럼 도왔다. 그때서야 나는 '얘가 나한테 관심이 있나?' 그런 느낌이 살짝 들었지만, 뚝딱거릴 때마다 정말로 잘 챙겨주는 스윗한 크루들이 많기도 했고, 직접 듣기 전까지 사람 감정을 넘겨짚는 혼자만의 착각을 하는 건 더더욱 no. 설사 그렇다 해도 내 눈엔 그저 귀여웠다. (나는 너보다 훨씬 누나란다. 얘야. 누나 감당 가눙???? ^^) 그냥 진심으로 고마웠다.



비행이 끝나고 이 멤버들 모두 서로 번호를 교환해 사진을 공유했다. 나는 비행을 하면서 남자든 여자든 번호교환을 거의 하지 않는다. 정말로 마음이 있어야 했다. 나는 이 친구들 마음이 너무 예뻤고, 하는 짓도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이 친구들을 기억하고 싶어서, 그만큼 합이 잘맞아 사진을 남기고 싶었다. 이렇게 사진을 찍은 적도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사진을 제일 친한 친구에게 자랑했다. 내 일하는 모습을 처음 보여준 것이었고, 거기에 대한 말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친구가 하는 말이 기가 막혔다.



"저기 저 남자애 너 좋아하는 거 같아."

"어???????????? (매우 놀람) 왜??????????"

"아니.. 그냥 사진보니까 느낌이 그런데..?"



나는 너무 놀랬다. 그저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사진을 보여준 것 뿐이었는데 보자마자 저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내 느낌이 맞았다. 나는 그 뒤로 알게 됐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에게 유독 친절했던 것 같았다. 그리고 더 확신했던 건 비행 후로 다른 멤버들에겐 연락이 없는데, 이 친구만 나에게 계속 연락을 해왔던 것이었다.



'언제 오프야? 내가 너 있는 곳으로 갈게.'



이 나라, 저 나라 비행하는 동안 잊을만 하면 오는 연락. 국적불문 전 세계적으로 하는 플러팅은 다 비슷한가보다. 나는 그럴 때마다 거절했고 그렇게 점점 잊혀져갔다. 그 뒤로 한 친구는 우연히 본 적이 있는데, 이 친구는 다행히? 마주치지 않았다.



비행 하다보면 참 별의 별 일이 다 있다. 언제 또 국적 다른 친구에게 플러팅 받아보는.. 이런 색다른 경험을 해보나 싶었다. 다른 크루들에게 들은 플러팅은 정말이지 천차만별이다. 내가 받은 플러팅은 참 순수하고 예뻤던 것 같다.



얼굴도 가물가물한 친구야. 잘지내니..? 그 때 참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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