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지갤러리 2017.03.09 ~ 2017.05.13
집에서 서초동 페리지 갤러리까지는 대략 40분 남짓 소요된다. 한가한(?) 화요일 오후 유유자적하게 전시를 보고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고자 페이스북과 여러 매체에서 본 슬기와민의 전시를 다녀왔다. 작은 갤러리 전시가 대부분 그렇듯이 실제로 전시를 보는 시간은 대략 10~20분 정도일 것이다. 이미 매체를 통해 본 사진과 이야기를 통해 접한 전시이기에 마치 이미 다 알고 있는 모나리자 회화를 제 눈으로 직접 보기 위해 루브르 박물관을 가는 것과 같은 심정으로 다녀왔다.
역시 보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본다고 표현하는 것이 과연 맞을지 모르겠다) 걸려있는 작품들은 실제로 보았을 때와 매체에서 사진으로 보았을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그대로였다. 실제로 본다고 작품에서 시각적으로 다른 점을 찾을 수 없었고, 굳이 찾을 필요도 없었다. 내가 그 갤러리에 실제로 갔고, 실제로 그 전시를 경험했다는 것이 그나마 다른 점일 것이다.
슬기와민은 영리한 작가다. 디자이너로 전시를 준비할 때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어떻게 하면 적은 시간에 많은 것 (많이 한 것 같아 보이는 것) 을 드러내는가의 문제일 것이다. 의도했던 안 했던 슬기와민의 전시는 실제 제작하는 시간은 적고 그에 비해 무언가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 있어 보인다.
즉, One Source Multi Use다. 슬기와민의 전시에서 작가는 기존 자신의 작업의 이미지를 사용하면서 그 사실이 티 나지 않게 했다. 숨김으로써가 아닌 그것을 오히려 더 드러냄으로써 그것을 새롭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들이 개요에 적은 것처럼 마르셀 뒤샹의 작업과 같이 그들의 결과물은 기존의 것들을 쉽게 가공해서 전시를 한 것과 같다. 실제로 그렇게 보인다. 물론 개념을 생각해내는 과정이나 시간은 별개로 물리적인 제작의 시간의 관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의 분명한 콘셉트를 생각해내었고 (재미있게도 그들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비명료함과는 대비적이지만) 결과물을 완성하는데 사용한 매커니즘은 매우 간단하고 명료했다.
이제 그들의 작업은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뒤샹의 작업이 약 백 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작업도 질문을 던진다. 그 작품 자신에 대해, 그 전시 자체에 대해 자기성찰적 질문을 던진다. '이것도 전시인가?'
슬기와민의 전시는 자기성찰적이다. 뒤상이 현대미술에 질문을 던진 것처럼 슬기와민의 전시도 질문을 던진다. 작품을 작품이게 만드는 요소는 무엇인가? 전시를 전시이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들은 이 전시에서 관객이 아무것도 얻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 전시가 존재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이 전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칸트가 이야기 한 대로, 이 작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필요 없이, 무관심적으로 대상을 바라보면서 인식능력들 간의 자유로운 유희를 경험하면 되지 않을까?
전시는 서초동 페리지갤러리에서 5/13일까지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