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와 삶 - 양수진 장례지도사
나의 직업이 장례지도사인 것을 아는 사람들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죽음을 자주 가까이서 보면 아무래도 익숙하겠어요?” 하지만 죽음이란 언제나 익숙할 수 없다. 장례의 절차가 몸에 익었을 뿐, 살아있던 존재가 소멸한다는 사실은 억 겹의 시간을 겪어내더라도 익숙해질 수 없을 것이다.
우주 만물은 시시각각으로 변하여 한 모양으로 머물러 있지 못한다. 사람 또한 만물 중의 하나이니 변화하고 사라져 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무상이란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멸하며 시간의 영속성이 없음을 말한다. 즉 현실 세계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매 순간마다 생겨나고 변화하고 사라져 가는 것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생로병사를 겪는다. 이는 사람은 생이 있으면 사가 필연적으로 따라온다는 뜻이다. 생명이 있는 것은 다 그렇다. 어쩌면 무생물까지도. 큰 바위가 오랜 시간을 거치는 동안 풍화 작용으로 자갈이 되고 알갱이가 되어 먼지로 흩어지듯이 말이다. 우리 인간의 몸도 끊임없이 세포가 생성하고 죽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세포의 생멸 과정이란 피상적이고 현실감이 없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키워보니 아이가 성장하여 꽃봉오리가 피어날수록 나의 노화도 눈에 띄게 진행되었음을 느끼며 조금은 이해가 된다.
우리는 흐르는 시간 위에 떠 있는 유한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나와 나의 가족의 이별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피하고 싶은 주제이기도 하다. 그러다 어느 날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왔을 때 너무나 황망해 지기 마련이다. 적어도 나에게 만은 오지 말아야 할 대상이 온 것처럼 화가 나고 받아들일 수 없다. 죽음의 예식을 돌보는 나에게조차도 가족의 죽음이란 그런 것이었다.
나는 젖먹이 때 외할머니께 맡겨졌다. 나를 낳아준 생모보다도 나를 더 품어주신 분이다. 할머니의 노환이 깊어질수록 언젠가 떠나시게 될 것이란 것을 생각했지만 떠올리기 싫었다. 일을 하면서 “죽음은 삶의 다른 모습입니다. 그러니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받아들이셔야 합니다.”라고 유가족들에게 건넨 위로는 정작 나에게 와닿지 못했다. 심한 관절통으로 아픈 무릎을 매만지시며 이제 다 살았으니 어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할머니도 실은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계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남에게는 쉽게 했던 죽음에 관한 담론이 정작 나 자신에게는 솔직하지 못했다. 할머니의 상태는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는데 내 고민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먼저 돌아가신 어머니와 남편을 그리워하는 할머니에게 그들을 만나게 된다거나 천국에 갈 것이라는 말도 희망이라 칭할 순 없었다. 누구보다 자손들을 사랑하시고 나의 입에 들어가는 밥에 대한 욕망이 강했던 할머니도 손의 힘이 점차 희미해져 가는 것을 느끼시는 것 같았다. 나는 수술하여 잘 걷지 못하는 할머니의 맨질한 무릎을 매만졌다. 천 년 해풍을 감내한 자갈처럼 닳고 닳았다. 두렵다. 죽음보다 무서운 것은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새벽에 전화가 걸려왔다. 중환자가 있는 집안에서 가족의 연락처로 새벽에 오는 전화란 참 심장 떨리는 일이다. 할머니는 아픔도 슬픔도 모두 떨치고 평화로움 속에 눈을 감으셨다. 아침에 아이가 잠에서 깨자마자 서둘러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다섯 살 내 아이는 죽음을 모를뿐더러 장례식장도 처음 가본다. 제단 위 할머니의 낡은 영정 사진을 마주하는 순간 온몸에 힘이 풀리면서 철쭉 같은 눈물이 나왔다. 그때 일렁이는 촛불을 발견한 아이가 밝은 미소로 노래를 불렀다.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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