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미 많은 SF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었다.
SF? 요즘 국내소설 쪽에서 흥하는 장르 아닌가? SF라는 단어를 보면 드는 생각이다. SNS와 주변 독서광들에게서 SF소설의 재미에 대해 듣기는 했지만 별 관심을 두지 않다가 22년, 23년 서울국제도서전을 다녀오면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정말 흥하고 있구나...
이실직고하자면 나는 SF소설을 읽어본 적이 거의 없다. 정확히는 독서량 자체가 적다. 편식도 하는데 ADHD까지 있으니, 이건 뭐. 게다가 문학을 꽤 어려워한다. 등장인물의 이름을 제대로 외우지 못하거나 그들의 외모를 표현한 부분을 이름과 매칭시키는 것도 역시나 못하며 새로운 등장인물이 나오면 이미 나왔던 인물과 착각하고 머릿속에서 섞어버리기 일쑤다. 핑계처럼 들리겠지만 실제로 나는 스토리에 관련된 것들 중 웬만한 건 잊는다. 그게 영화나 만화여도 마찬가지니 문학소설이 문제가 아니다. 영상이나 그림이 있으면 등장인물을 얼굴로 기억하면 되니 조금 편할 뿐이다. 아무튼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내 질환에 대해서 말하고자 그런 것이 아니라, 방금 말한 이유와 더불어 스토리 개연성을 위해 과학적 사실이나 지식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 SF를 조금 무서워했다는 것을 말하려고 했다. SF는 크게 소프트와 하드로 나뉜다. 과학적 사실을 기반에 두고 쓴다는 점은 같지만 이 부분을 얼마나 중점적으로 다루느냐, 순수과학 지식을 확장해 나가는 것이냐 사회과학 문제를 다루느냐에 따라 나뉜다. 나는 SF라고 하면 하드 SF를 생각하고 미리 멀리 했다. 아마 나와 같은 사람들은 비슷한 생각을 했을 텐데, 다루고 있는 과학적 사실이나 가설 등을 어느 정도 이해해야 돌아가는 판을 알 텐데 이 자체가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렇다고 소프트 SF가 마냥 쉽냐고 하면 그렇지도 않다. 여기서는 사회 문제에 관한 이해가 따라와야 하기 때문에 더 복잡할 수 있다. (누군가는 우주나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공허하고, 현실 회피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던데 오히려 난 머리깨나 아프게 하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SF를 찾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 역시 천문학이나 물리학 이론을 나열하는 과학 서적을 읽을 거라면 책장에 꽂혀있는 <멀티 유니버스>나 꺼내 읽었을 테지 SF를 따로 찾아보진 않았을 것이다. SF에는 다른 무언가가 분명히 있다.
이전에는 SF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지금보다 과학기술이 훨씬 발전한 지구나 우주를 배경으로 한 어떤 것. 딱 이 정도의 생각. 이 말도 틀린 건 아니겠지만 SF는 스토리라는 게 있다. 이런 배경이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스토리. 더해서 인간이기 때문에 일어난 일을 이해할 수 있거나, 해결할 수 있는 스토리. 또는 완전 반대의 스토리. SF는 곧 인간의 본질과 존재 의미에 대해 탐구하는 장르다. SF는 광활한 우주에서 티끌만 한 인간의 존재는 어떤 의미인지 묻는다. 로봇과 AI기술 발전에 따라 지구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지 묻는다. 미래에는 없을 거라 믿었던 차별이 그대로 존재하는 세상에서 인간됨에 대해 묻는다. 수많은 평행세계를 넘나들며 현재 자신의 선택에 어떤 가치가 있는지 묻는다. 이 외에도 시간여행, 행성 전쟁, 초월 존재, 외계인, 로봇의 인간화, 지구 환경 변화 등 다양한 소재를 통해 인문학적 물음을 던진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SF를 판타지에서 세분화된 장르라고 생각했다. 이것저것 검색해 보고 나서야 SF와 판타지는 교집합이 있을 수는 있어도 SF가 판타지에 속하는 장르가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옆에 있던 룸메이트한테 대뜸 물어봤다. "그러고 보니 디지몬도 SF 아니에요?" 룸메이트는 열심히 게임하면서 대답해 줬다. "맞죠." 문제는 디지몬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다른 사람들과 SF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뭐라도 본 게 있어야 할 텐데. 내가 영화는 뭘 봤더라? <인셉션>, <그래비티>, <인터스텔라>, <마션>... 유명한 거 몇 편 정도. 그 외에는 봤어도 기억을 못 하는 것 같고, 소설은 읽지 않았고, 드라마도 전혀 보질 않으니 남은 건 역시 게임뿐이었다.
나는 게임의 장르를 가리지 않고 플레이한다. 시뮬레이션, 전략, 퍼즐, 공포, FPS, 액션, 디펜스, RPG 등등... 장르마다 선호하는 정도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편식하진 않는다. 재화를 쓰는 데에 우선순위가 있다면 게임은 꽤 높은 순위이고 플레이하다 과몰입에 들어가면 밥과 잠을 거르는 정도. 말하고 보니 딱 게임 중독자다. 그래서 나는 왜 다른 매체가 아닌 게임에 중독되었을까. 게임과 다른 매체의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역시 내가 주인공을 플레이한다는 점이 아닐까. 게임 속 플레이 가능한 캐릭터가 곧 플레이어냐고 한다면 그건 아니지만, 플레이어는 무의식적으로 그 캐릭터에 자신을 이입하기 마련이다. 캐릭터의 행동이나 NPC와의 대화에서 어떤 말을 할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도까지 주어지면 몰입도는 크게 올라간다. 그곳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그곳을 탈출하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이런저런 것을 겪으면 기억 못 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지금까지 직접 플레이 한 게임 중에 SF장르는 몇 개나 되는지 세어보니 여섯 개 정도 된다. 스토리를 이미 알고 있는 게임은 세 개 정도. 이 외의 플레이해보지 못한 SF게임도 꽤 많다. 더 이상 쓸 게임이 없으면 하나씩 구매해 플레이해보려는 생각. 이 게임들의 스토리를 포함한 플레이 리뷰를 하나씩 차근차근 써보려고 한다. 예전에 한 게임은 기억이 흐려서 다시 플레이해 보거나 스토리를 찾아봐야겠지만 그 과정은 재밌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