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되는 의식과 동전 던지기
*게임의 스토리, 반전, 결말 등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처음부터 가져오는 게임이 공포게임이라니. 사람들과 SF이야기하고 싶은 게 맞아?
맞다. 여러분들과 SF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 글을 읽으러 온 사람들이 <SOMA>를 꼭 해봐야 하는 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게임이 스토리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에 나의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다. 혹여나 무서운 이야기를 할까 봐 겁먹은 분들이 있다면... 전혀 아닙니다. 안심하세요.
사실 <SOMA>는 공포게임을 좋아한다는 사람들에겐 유명한 명작 게임이라 뒤늦게 별 거 없는 후기를 들고 와도 되는 건가 싶었다. 이미 많은 리뷰와 해석이 조금만 검색해도 주르륵 나온다. 그럼에도 후기로 가져온 이유는 직접 플레이해 본 모든 게임 중 가장 충격적인 결말을 보여주었고 여운도 오래 남았던 게임이라서.
스토리를 여기에 전부 쓰는 건 무리라고 생각, 정리를 잘해둔 유튜브 주소를 첨부한다.
https://youtu.be/wMm2U4ZLnRY?si=QBl-CgLG2qm21W-U
SOMA(σωμα) : (정신과 육체를 모두 포함한 총체적인 의미로서) 몸
<SOMA>가 던지는 본질적인 물음. 인간을 정의할 때 정신을 가리키는가 육체를 가리키는가? 이건 또 무슨 밸런스 게임인가 둘 다를 가리키지!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하지만 굳이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무엇을 골라야 할까.
<SOMA>에서는 SOMA의 뜻과는 반대로 정신, 의식에 초점을 두고 있다. 2015년 뇌 스캔을 받은 사이먼. 2105년 2015년에 스캔했던 데이터가 사이먼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몸으로 복제된 사이먼 2. 심해로 가기 전까지의 데이터를 파워 슈트로 복제한 사이먼 3. ARK로 복제된 사이먼 4. 이때 사이먼 4를 제외한 셋은 육체가 전부 다르다. 때문에 각각 다른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2015년 뇌 스캔을 받은 기억까지는 셋 모두 가지고 있다.
제삼자가 보기에는 정신으로 구분해도 각각 다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2015년의 사이먼은 뇌 스캔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고, 사이먼 2는 뇌 스캔을 마치고 전혀 다른 공간으로 "이동"했다고 생각하며, 사이먼 3 역시 파워 슈트로 복제된 후 심해로 들어가기 때문에 스캔 데이터가 복제된 순간부터는 모두 다른 경험을 한 다른 사이먼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전글에서도 썼듯이, 플레이어는 주인공에게 이입을 하기 마련이다. 게임의 흐름은 사이먼 3의 의식을 따라간다. 그리고 우리는 사이먼-사이먼 2-사이먼 3의 의식은 그대로 이어진다고 느끼게 된다. 파워 슈트 복제 씬에서 플레이어는 사이먼 2에서 사이먼 3으로 "사이먼 2와 함께 이동"한다. 하지만 플레이어와 사이먼 3은 파워 슈트로 의식을 복제할 때 사이먼 2가 그대로 존재할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고, 이때부터 문제가 생긴다.
사이먼 2와 사이먼 3, 두 명의 사이먼이 생긴다. 누구를 진짜 사이먼으로 볼 수 있을까? 물론 둘 다거나 둘 다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굳이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누가 진짜 사이먼인가? 먼저 복제가 된 사이먼 2? 보다 나중에 복제된 사이먼 3?
사이먼 3로 이동한 사이먼과 플레이어는 뒤에서 들리는 사이먼 2의 목소리에 놀란다. 어째서 그게 아직도 말을 하는 거냐는 사이먼 3의 물음에 캐서린 2는 복제라는 것은 이런 거라고 답한다. 이후 사이먼 3는 사이먼 2의 생명을 끊거나 그대로 두고 심해로 가게 된다.
의식을 복제했다면 이전의 육체에서는 의식이 없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이동"을 한 것이니까!
아쉽게도 복제는 잘라내기가 아니라 복사 붙여 넣기다. 이전의 육체에 남아있는 의식도 이후의 육체로 복제된 의식도 전부 살아있다. 원본 데이터를 가지고 수많은 사이먼을 복제할 수도 있다.
파워 슈트 복제 씬은 복제가 잘라내기 형식일 거라고 생각했던 사이먼 3과 플레이어에겐 충격적인 장면. 왜냐면 사이먼은 한 명만 있어야 하니까.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생각한다. 많은 플레이어들이 이것에 대해서 미리 알려주지 않은 캐서린 2를 괜히 원망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이먼 3는 자신이 올바른 몸에 들어간 게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동전 던지기 게임에서 이겼다고나 할까.
캐서린 2와 사이먼 3는 복제를 하고 난 뒤 자신이 어느 육체에 있는지를 동전 던지기에 비유한다. 원하는 육체로 복제된 의식의 나는 동전 던지기에서 이긴 것이며 그게 아닌 의식의 나는 동전 던지기에서 진 것이다.
이 동전 던지기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제삼자의 시선보다는 플레이어가 사이먼 3의 의식을 따라간 것과 같은 시선이 필요하다. 이것은 사이먼 입장에서 진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것이다. 게임의 흐름이 사이먼 2의 의식을 따라갔다면 플레이어 역시 "나"를 사이먼 2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어째서 복제가 되지 않았는지 모르는 상태로 잠들며 게임이 끝났을 것이다.
바로 방금까지의 기억을 똑같이 가지고 있는 사이먼 2와 사이먼 3 중 누가 정말 "나" 인지 알 수 있는 것은 육체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사이먼 2는 자신이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게 맞는지, 웁실론 기지에서 물에 빠진 뒤 본인의 몸을 내려다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었다. 자신이 잠수복을 입고 있는 다른 사람의 몸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전까지 사이먼 2와 플레이어는 당연히 이 육체와 정신은 사이먼의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복제를 할 때 눈을 감고 있으면 사이먼 2와 사이먼 3는 각자 누가 사이먼 2이고 사이먼 3인지 알 수 없으며 눈을 떠서 결과를 확인하는 것은 마치 동전 던지기와 같다.
마지막 인류의 뇌를 스캔해 가상공간에 넣어놓은 장치. 우주로 날려 보내기로 한 ARK가 왜 아직 깊은 바닷속에 있는 걸까. Pathos-II 연구진이 프로젝트 막바지에 의견 충돌이 일어났던 것을 살펴보면 대기권을 돌파하지 못하거나, 우주에서 무언가와 충돌하게 될까 봐.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자신들이 아닌 자신들의 뇌를 스캔하기만 한 데이터가 가상공간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못마땅했던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뇌를 스캔한 직후 자살하면 ARK로 이동하는 의식을 온전하게 따라갈 수 있다는 연속성을 주장한 캐릭터가 있다.
캐서린 2가 버튼 하나에 ARK발사, 캐서린 2와 사이먼 3의 복제 데이터를 ARK에 업로드하는 것을 동시에 하게 한 이유도 사이먼 3가 복제 후 사이먼 4가 되지 못한 것을 받아들이지 못할 거라고 미리 예상해 둔 건 아닐까. 나 역시 ARK로 업로드되는 건 잘라내기 이동일 거라고 믿었다. 게임의 결말은 당연히 해피엔딩일 거라고 생각했고 흐름도 사이먼 4로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완전 오산이었다. 사이먼 3와 플레이어는 결국 사이먼 2와 같은 결말을 맞이한 것이다. 좀 더 나중이었을 뿐.
결말을 보고 난 직후엔 사이먼 3와 같이 캐서린 2에게 배신감도 느끼고 홀로 남게 된 사이먼 3를 보며 절망감도 느꼈지만 마지막에 느낀 건 공허함. 지구에 인류는 멸망했다. 사이먼 2와 사이먼 3는 갖은 고생을 다 하고도 결국 ARK에 탑승하지 못했다. 게다가 ARK속에 남은 캐서린과 사이먼은 결국 데이터일 뿐이라는 사실이 갑자기 허무하게 느껴졌다. 캐서린은 인류의 역사를 우주에 수천 년 동안 남길 수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했지만 아주 긴 시간 동안 가상공간의 데이터로만 남게 된 인류는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 이것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아닐까. 인간은 말 그대로 멸종했으며 우주는 너무 넓다. 어딘가에서 어떤 존재에게 발견될지 알 수 없다. 아마 영영 떠다니기만 할 것이다. 지구의 중력이 미치는 곳에서 궤도를 따라 돈다면 모를까 계속해서 우주를 떠돌아다니기만 하는 ARK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
드라마 블랙미러 3 <샌 주니페로>
영화 <뷰티인사이드>
<샌 주니페로>와 <뷰티인사이드>도 <SOMA>와 비슷한 소재로 같은 물음을 던진다.
진정한 나는 의식으로서 존재하는 것인가, 육체로 정의되는가?
퀴어 콘텐츠가 고프다면 특히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