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와 삶을 연결짓는 독서 토론 시간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봄 내음이 짙어져 가는 요즘입니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봄이 한 걸음씩 다가오는 동안, IC Lab에서는 북클럽을 진행하며 각자가 현재 진행 중인 연구와 더 나아가 스스로의 삶에 대해 성찰하고 사유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북클럽은 연구와 관련된 도서를 읽고, 그에 대한 생각을 나누며 토론하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 시작된 활동입니다. 연구실 멤버 중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매달 한 명씩 돌아가며 호스트 역할을 맡아 책을 선정하고 토론을 이끌어갑니다. 저번 달에는 제가 호스트가 되어 북클럽을 운영했습니다.
북클럽에 참여하며 알게 된 책들에서 배운 점이 너무나 많았고, 연구실 동료들과 책에 대한 서로의 견해를 나누며 이루어진 대화들이 굉장히 값진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 짧게나마 북클럽에서 다룬 책들과 저희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북클럽에서 다룬 책은 『긍정 컴퓨팅 (Positive Computing)』으로, 기술과 웰빙의 교차점을 탐구하는 도서입니다. 여기서 '긍정 컴퓨팅'이란, 인간의 정서적, 정신적 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해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를 연구하는 분야를 말합니다. 이 책은 컴퓨터 기술이 우리의 정신 건강과 행복에 미치는 영향을 깊이 있게 다루며, 기술을 단순히 효율성을 추구하는 도구로만 보는 기존의 관점을 넘어서는 접근을 제시합니다. 특히 이 책은 ‘웰빙’과 ‘마음 챙김’이라는 중요한 개념을 소개합니다. 웰빙은 단순히 신체적인 건강을 넘어 정서적, 사회적, 정신적인 건강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으로, 우리가 얼마나 만족스럽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측정하는 중요한 지표가 됩니다. 마음 챙김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그것에 반응하기 전에 잠시 멈추어 관찰하는 연습입니다. 이는 스트레스와 불안을 줄이고, 현재의 순간에 집중하게 만들어 정신적 안정과 감정 조절 능력을 증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 책은 방대한 연구와 심리학적 개념을 토대로, 마음 챙김을 포함하여 우리의 웰빙 증진을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과 접근 방식을 소개합니다.
정서 컴퓨팅과 디지털 웰빙이 주요 연구 분야인 만큼, 긍정 컴퓨팅은 저희의 연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저를 포함한 연구실 동료들은 이 책에서 제시된 다양한 연구적 근거를 통해 긍정 컴퓨팅의 중요성을 깊이 이해하고, 이를 각자의 연구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연구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의 태도를 성찰하고 웰빙을 어떻게 증진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AI 지도책 (Atlas of AI)』는 인공지능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책으로, 인공지능이 의존하는 물리적 자원과 인간 노동, 그리고 개발 과정에서의 윤리적 문제를 다룹니다. 인공지능 연구와 개발에서 진실성과 윤리적 책임을 강조하며, AI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심각한 영향에 대해 경고합니다. AI 발전에는 많은 물리적⋅인간적⋅데이터 자원과 상당한 희생이 필요하다고 설명하며, 이는 식민주의적 태도를 다시 불러일으킬 수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인공지능을 ‘추출산업’으로 규정하여, AI의 실체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AI가 직업을 대체할 가능성과 그에 따른 사회적 변화를 다룹니다. 수많은 기업과 국가들이 데이터를 끊임없이 수집하고, 자율적 결정을 내리며, 충분한 검토 없이 인공지능 모델을 구현하는 방식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AI의 발전에는 숨겨진 물리적 도전과 윤리적 책임이 있음을 되돌아보게 하며, AI 기술의 확장에 대한 조심스러운 접근을 제시하는 책입니다.
인공지능 모델 개발과 활용에만 집중해온 저희에게 이 책은 그동안 심도있게 고려하지 못했던 사회적, 윤리적 측면들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토론이 이어질수록 모두가 ByteDance와 같은 강력한 행위자들이 원하는 대로 AI가 움직이는 모습을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AI가 의존하고 착취하는 다양한 자원에 대해 성찰하고, 인공지능 관련 연구를 할 때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AI의 어두운 면에 대해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점은 많지 않지만, 최소한 AI의 어두운 면을 인식하고 연구의 진실성과 책임감을 지켜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인공지능이 직업을 어떻게 대체해 왔고, 앞으로 어떻게 대체할 수 있을지 그 가능성과 그로 인한 사회적 변화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AI의 발전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 확장의 방향성을 올바르게 설정하고 인간을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겠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Why Fish Don’t Exist)』는 분류 시스템의 복잡성에 대해 다루는 책으로, 저자인 룰루 밀러 자신의 이야기와 어류 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서술됩니다. 인생의 크고 작은 일들로 혼돈에 빠진 삶을 살던 저자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알게 되고, 그의 일생을 반추하며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어류 분류에 집착하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자신이 평생을 바친 연구 결과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었다는 진실 (물고기라는 분류는 존재하지 않는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결국 우생학자가 됩니다. 그의 삶을 통해 저자는 ‘완벽한 분류’에 도전하며, 과학적 사고의 본질과 인간의 분류 방식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분류 시스템이 인간의 사고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며, 분류가 반드시 옳거나 완전하지 않음을 강조합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인간 본성의 여러 측면과 분류 시스템이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과학, 사회, 사물이나 개념을 분류하는 방식 등)을 어떻게 형성하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지나친 분류는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하고 문제를 초래한다는 점에 대해 깊이 토론했습니다. 예를 들어, 감성 컴퓨팅에서 감정 분류 AI를 구축할 때 감정의 표출 방식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음을 고려하지 않고 감정을 제한적으로 모델링한다면 해당 감정 분류 모델은 인간의 복잡한 감정 표현을 포착할 수 없어 현재 감정 상태에 적합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습니다. 또한, ‘감정에도 우생학이 있을까?’라는 주제로 토론하며 감정을 외적인 표출만을 기준으로 분류하는 것의 문제점을 고민했습니다. 감정 분류 AI가 주로 감정 표현이 풍부한 사람의 얼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하기 때문에, 이러한 AI 기반의 감정 평가가 감정을 잘 표현하는 사람들을 우대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계층 구조를 형성할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추가로, 이 책에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강제 불임 수술을 시행한 것처럼, 우울증이나 다른 감정적 차이를 가진 사람들을 처벌하는 것은 현대적인 형태의 감정 우생학이 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분류가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분류는 의사소통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분류라는 사회적 약속이 있기에 간단한 언어적⋅비언어적 표현만으로도 무리없이 대화가 되고, 서로의 의견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분류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며, 분류 자체는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 없는 개념이지만 경직된 분류에 맹목적으로 의존하는 것에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인생에서 모든 것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또 완벽해 보이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잘못된 믿음을 가질 수 있고 실수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완벽함, 인간의 결점, 그리고 인생에서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 준 고마운 책입니다.
감정은 우리의 뇌, 몸, 외부 환경 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에서 발생합니다. 감정은 위협, 기회, 사회적 상호작용에 반응하는 적응 메커니즘으로, 진화 및 유전자와 같은 생물학적 요인과 문화 등의 사회적 경험에 의해 형성됩니다.『감정의 뇌과학 (Emotional)』은 이러한 감정이 의사결정과 인간 행동에 미치는 중요한 역할을 다룬 책입니다. 이 책은 감정을 의사결정의 방해물로 간주하는 전통적인 사고에 도전하며, 감정이 우리의 판단과 인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신경과학과 심리학을 바탕으로, 감정이 우리의 결정과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며 감정이 어떻게 인간의 사고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과학적 연구를 통해 설명합니다. 이 책은 감정이 단순히 이성적 사고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뇌 구조에 깊이 내재되어 있으며 의사결정과 행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저자는 사람들이 감정을 더 잘 이해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방향으로 의사결정과 웰빙을 개선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책을 읽고 감정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고, 감정이 비이성적인 장애물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이끄는 강력한 나침반임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현대 사회에서 성공하고 번영하기 위해 감정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는 주제로 다양한 의견을 공유했습니다. 첫째로, ‘건강한 몸에 건강한 마음이 깃든다’는 말처럼 감정을 적절히 활용하려면 우선 신체 건강을 유지해야 합니다. 또한, 감정을 억제하기보다는 그것을 인정하고 조절하여 더 나은 결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서 긍정 컴퓨팅에서 언급한 ‘마음 챙김’은 자신의 상태를 인식해 감정에 충동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감정을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좋은 훈련 방법입니다. 마지막으로, 리더십과 팀워크에서 공감과 사회적 인식은 협력과 의사결정에 큰 도움이 되기에, 이렇게 감정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면 동기 부여, 회복력 및 대인 관계를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AI 이후의 세계 (The Age of AI: And Our Human Future)』는 인공지능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그로 인한 윤리적, 존재론적 질문들을 다루는 책입니다. 세 명의 저자는 외교, 기술, 학문 분야에서의 독특한 관점을 결합해 인공지능이 인간의 미래를 어떻게 재구성하고 있는지 탐구합니다. 이들의 협력은 글로벌 정책, 혁신, 과학적 연구를 연결하며, AI의 변혁적인 잠재력에 대한 다차원적인 관점을 제공합니다. 특히, AI가 단순한 기술적 측면을 넘어서, 산업 혁명처럼 세계 정치와 인간의 삶을 재편성할 수 있음을 강조하며 AI 기술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공합니다. 또한, AI 기술의 발전이 인간 사회에 미치는 윤리적 책임을 다루고 있으며, AI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점이 왔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창의적 사고와 같은 기존에 인간만이 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일들을 AI가 수행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책입니다.
우리는 이 책의 저자들에 주목했습니다. 헨리 키신저는 전 국무장관이자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수십 년 간의 외교 경험과 철학적 통찰을 바탕으로 인공지능의 지정학적 영향을 탐구했습니다. 에릭 슈밋은 구글의 전 CEO이자 의사회 의장으로, 기술 산업에서 혁신과 AI 개발의 최전선에서 수년간 쌓아온 기술적 관점을 제공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대니얼 허튼로커는 MIT Schwarzman 컴퓨팅 대학 학장으로, 컴퓨터 과학 및 사회에서 AI의 진화하는 역할에 대한 깊은 학문적, 기술적 지식을 공유했습니다. 저자들의 전문 분야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AI가 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현실적이면서도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한 내용은 매우 통찰력 있었고, 이 책에서 제기한 AI 플랫폼의 책임성과 투명성 이슈, AI와 데이터의 통제권을 쥐고 있는 대기업들의 정치적 권력 행사, AI의 무기화 등의 문제들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는 AI가 인간 사회와 삶에 미칠 광범위한 영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헬스케어 분야에서는 정신 건강을 넘어서 퇴직 후 건강한 노후 생활이나 알츠하이머 병 등의 치료법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또한, 아이 돌봄 AI 로봇이 상용화되는 미래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아이 돌봄 AI 로봇이 아이들을 케어하는 동안 아이들이 사고를 당하거나, AI가 적절한 처벌을 제공하지 않고 무조건 친절하게 대하기만 해서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무례한 사람으로 자라게 된다면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와 같은 중요한 문제를 간과할 수 없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북클럽 호스트로서 특정 주제에 대해 토론을 이끌어가는 경험은 매우 소중하고 유익했습니다. 또한, 북클럽 멤버로서 연구실 동료들과 각기 다른 시각을 공유하고 함께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통해 제 연구와 삶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혼자 책을 읽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견해에 대해 풍부한 대화를 나누고 더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 매우 값지고 보람찬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와 같은 북클럽 활동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함께 성장하는 IC Lab이 되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북클럽을 창설하고 기틀을 다져준 은기님, 북클럽 활동에 열정적으로 임해 준 규나님, Mr. Panyu, 예진님, 그리고 저희가 북클럽을 운영할 수 있도록 여러모로 지지해주신 이의진 교수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김정현, Jeonghyun Kim
KAIST 전산학부 IC Lab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며,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HCI)과 소프트웨어 공학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사용자 중심 서비스를 설계하고 및 개발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현재는 웨어러블 센서 데이터를 포함한 다양한 일상 데이터를 활용해 self-reflection과 intervention을 지원하여 사용자의 self-awareness를 높이는 스트레스 관리 시스템을 연구하고 있다.
Contact: jeonghyun.kim@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