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에서의 일주일(1)
건축 그리고 기억의 기록
모스크바에 대한 첫 기억은 셰레메티예브 공항에서 모스크바로 들어가는 길가에 작은 산처럼 수박을 쌓아놓고 파는 광경이다.
수박과 모스크바. 모스크바는 비현실적인 이미지로 시작됐다.
90년대 후반의 어느 여름이었다.
# 현상공모설계
모스크바 주재 대한민국 대사관 현상공모 설계에 참가하기로 했다.
경험 삼아 참가한다고 말할 정도로 경험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재미 삼아 참가할 만큼 심심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단 1%의 당선 가능성이라도 기대하는 사람은 사무실에 없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회사의 대표와 내가 왜 그 현상경기에 참가하기로 했는지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나를 비롯해 대부분 삼십 대의 나이였었지만, 이만한 규모의 현상경기가 공정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믿을 만큼 순진하지는 않았었다.
그보다 더 순진한 목적이 있었던 것 같다.
왜냐면 당선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석 달의 기간 동안 모두가 최선을 다했고 심지어 즐거워하기도 했으니까.
# 모스크바에는 술집이 없어요.
당시에 모스크바 사람들은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다.
서울에서 모스크바의 설계회사와 접촉을 할 때부터 언어의 벽은 높았다.
나중에 모스크바 회사에 방문했을 때, 직원이 천 명인 회사 대표의 비서가 전화번호 숫자를 영어로 말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당연히 지금은 다들 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모스크바에는 영어를 말하는 사람이 없었고 서울에는 러시아어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서울에서의 국제통화는 사할린 출신 교포 유학생이 도와주었고
모스크바에서의 일정은 모스크바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한국 유학생이 도와주었다.
문학이 전공이라고 했다.
첫날 일정을 마치고 나니 저녁인데도 해가 길었다.
통역하던 그에게 술집에 가보자고 했다.
가 본 술집이 없다고 했다.
술을 안 마시냐고 물었더니 그렇진 않다고 한다.
그런데 왜냐고 물으니
모스크바에는 밤에 하는 술집이 없다고 했다.(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 청어와 보드카
러시아에서는 밖에서 술 마시면 집에 못 가고 얼어 죽는 수가 있어서 주로 집에서 마시고 술집은 없다고 했다.
그리고 굳이 술집을 가려면 큰 호텔의 바에 가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갔다. 통역도 처음 와 본 곳이라 했다.
그에게 술은 보드카, 식사는 러시아식 요리를 시켜달라고 했다.
그가 또 말했다.
"러시아식 요리가 뭐죠?"
"소장님은 혹시 아시는 게 있나요?"
무슨 이런 가이드가....... 하다가 생각해 보니
러시아 영화는 본 기억이 없고
솔제니친이나 오스트롭스키 몇 권 겨우 읽은 기억으로는 감자요리 밖에 생각나는 게 없었다.
지배인을 불러 보드카에 맞는 요리를 달라고 했다.
전혀 주저함 없이 돌아간 그가 보드카와 함께 가져온 것은 청어 절임 요리였다.
내 눈에는 위스키와 과메기의 조합으로 보였다.
그런데 세상에
이전에 보드카를 몇 번 마셔봤지만
청어 절임과 먹는 보드카는 전혀 다른 멋진 술이었다.
내 생각에 여태 과일이나 치즈 따위와 먹은 보드카는 막걸리를 피자와 함께 먹는 것과 같은 무식한 짓이었다.
그리고 그날의 경험은 한국에 돌아와서도 보드카를 잘 즐기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 모스크바에서 6년 산 사람과 일주일 산 사람.
차를 타고 모스크바에서 이곳저곳 다니면서 보게 되는 모스크바의 풍경은 내가 가본 유럽의 풍경과 많이 달랐다.
궁금한 것도 있고 택시 안의 침묵이 어색하기도 해서 가이드하던 한국 유학생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제대로 알고 있는 게 별로 없었다. 문학 공부만 열심히 하는 모양이었다.
그와 다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상한 현상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모스크바에 대해서 그가 질문을 하고 내가 설명을 하는 것이다.
크렘린 궁의 돔 지붕이 왜 아라비안나이트 동화책의 궁전과 닮았는지.
러시아정교회라는 게 무엇인지.
모스크바의 별명이 왜 타깃(Target) 인지. 그런 도시계획은 어떻게 시작됐는지.
드물게 보이지만 타틀린이나 말레비치가 설계했을 법한 구조물을 지나갈 때는
요즘 서구에서 유행하는 해체주의 건축이 어떻게 혁명시기의 러시아 구성주의와 연결이 되는지.
왜 지금은 그런 건물보다 스탈린스타일의 건물만 많이 보이게 됐는지.
등등의 얘기를 하면서 돌아다녔다.
마지막 떠나는 날.
유홍준의 답사기를 읽었을 리 없는 그가 이렇게 말했다.
"소장님과 일주일을 함께하고 나니 지난 6년간 살았던 모스크바가 전혀 다른 도시가 됐어요."
물론 예의 갖추느라 한 말이겠지만, " 소장님과 마신 보드카 너무 좋았어요." 보다는 듣기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