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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종하 May 22. 2024

한국을 떠난다는 건

올해는 처음으로 5월에 한국을 방문했다. 주로 아이들 방학에 맞추다 보니 6월 중순쯤에 방문을 했었는데 이젠 애들도 대학을 가서 날씨 좋은 5월에 방문하게 되었다. 연로하신 부모님과 주로 시간을 보내고 대학서클 Homecoming Day도 27년 만에 처음으로 가보았다. 내가 미국간지 벌써 27년이나 되었다. 나를 알아보는 후배는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대선배님이라고 환영해 주는 모습이 귀여웠다. 내가 5월에 한국에 오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최근 Dating App에서 만난 여자 때문이기도 하다. 호기심에 가입해서 채팅 몇 번 하다가 호감이 가서 만나보려고 들어왔다. 시간 되는 데로 열심히 데이트를 했고 같이 좋은 시간을 많이 보냈다. 30대 초반 선을 보기 위해 한국에 들어왔던 때라 거의 비슷했다. 한 가지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 내 나이 50대 중반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마치 인생이 반복되는 느낌도 들고 내 삶도 얼마 남지 않은 느낌도 들었다. 다행히 서로 예의를 갖추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만나고 기회 되면 미국에서 다시 보자고 말하고 헤어졌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장족의 발전이었다.


Goodbye to parents


미국행 대한항공을 타기 위해선 부모님 집에서 12시쯤 택시를 타면 된다. 평소에는 공항까지 마중을 나오셨는데 이제는 너무 연로하셔서 작년부터 나 혼자 택시를 타고 떠났다. 공항에서 Goodbye를 할 때 보다 오히려 마음이 더 무거웠다. 공항에서 늘 우시던 어머니도 이제는 기력이 떨어지셨는지 덤덤하게 미국으로 돌아가는 아들을 배웅하셨다. 내가 첨으로 미국을 가던 해부터 어머니는 줄곳 공항에서 우셨다. 결혼하고 아이들과 같이 왔을 때도 우시다가 아이들이 고등학교 정도 되니까 아들이 덜 불쌍하게 느끼셨는지 그때부터 울지 않으셨던 것 같다. 하지만 정작 울고 싶은 건 나였다. 이렇게 오랜 시간 한국을 왔다 갔다 했어도 마음속으론 언제나 눈물이 흘렀다. 최근 화창했던 5월의 날씨도 있었지만 내가 떠나던 날은 비가 왔다. 비속을 달리던 택시 안에서 나는 내내 울었다. 아이들도 옆에 없다 보니 굳이 눈물을 참을 필요가 없었다. 평소에는 멘탈 강한 아버지였지만 요즘 나는 눈물이 많아졌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말리는 사람도 없고 틈만 나면 무슨 이유인지 눈물이 쏟아진다. 아마 그동안 너무 참아와서 그런가 보다.


이별의 Trauma


그런데 난 왜 한국을 떠날 때마다 눈물이 나는 걸까? 부모님과 헤어지는 게 슬퍼서? 아니면 이혼하고 혼자 살게 된 게 pathetic 해서? 미국에선 혼자 너무 재밌게 잘 사는데 왜 공항 갈 때면 눈물이 나는 걸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29살 때 한국을 떠난 건 나 스스로는 잘 인식하고 지내지 못했지만 trauma 같은 큰 충격이었던 것 같다. 사귀던 여자랑 미국으로 도망가기 위해 계획했던 유학준비가 그 시작이었다. 어렵게 유학 admission을 받고 미국행을 결정했을 때 그녀는 같이 가는 걸 포기했다. 당시 나는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계획했던 데로 커다란 이민가방을 들고 생전 상상해보지도 못했던 Philadelphia라는 도시로 내 삶을 옮겼다. 그땐 온 가족이 다 공항에 나왔었다. 부모님이랑 누나들이랑 매형까지. Security Check을 지나고 나면 온전히 혼자가 된다.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기다리는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은 내가 철저히 혼자가 되었음을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때 나는 울지 않았다. I could not afford to cry. 내 앞에 놓여 있는 알 수 없는 미래를 살아남기 위해선 독하게 마음을 다져야만 했다. 그리고 미국유학생활 줄곳 나는 울지 않았다. 하나 있는 아들을 멀고도 먼 미국으로 보내시고 돌아서시는 어머니는 그때부터 공항에 오실 때마다 눈물을 보이셨다. 내가 공항에 갈 때면 왠지 과거의 이 모든 기억들이 한꺼번에 같이 살아나는듯 하다. 사랑하던 여자와 헤어지던 일. 사랑하던 가족들을 떠나야 했던 일. 낯선 땅 미국으로 가던 두려움. 당시는 이 모든 감정의 고통을 다 이겨낸 듯했는데 지나고 보니 나에겐 큰 상처가 되었다.


누구나 위로가 필요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산울림 음악을 들으면서 자랐다. 누나가 듣던 테이프를 가져다 들었던 것 같다. 아마 초등학교 때부터 인 것 같다. 상당히 심오한 가사들이 있던 노래를 좋아했던 조숙한 아이였던 것 같다. 공항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왠지 이 음악이 떠올랐다. 평소에 듣지 않던 노래가 왜 갑자기 내 깊은 기억의 서랍 속에서 꺼내어졌을까? 그동안 묻고 지냈던 내 상처처럼 이 음악도 내 무의식의 깊은 어딘가에 있다가 내 기억 위로 떠올랐다. 나는 왜 이 음악을 나 스스로 만들어 보고 싶었을까? 보통사람 같았으면 음악을 들으며 잠시 감상에 잠겼다 깨어나곤 하는데 나는 굳이 나의 버전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들을 때마다 다시 울고 싶었다. 내 상처의 감정이 다 씯겨내려가서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을 때까지 듣고 싶었다. 미국에 사는 동안 아마도 나는 이 떠남의 슬픔을 다 잊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이젠 억지로 눈물을 참을 필요가 없다. 울고 싶으면 혼자 맘껏 울고 다시 나의 일상을 살아가면 된다. 나는 미국에서 내가 꿈꾸던 삶을 이루었고 많은 자유와 여유를 누리며 살고 있다. 단지 그동안 고생한 나 스스로를 격려할 필요가 있다. 이 음악은 나를 위한 위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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