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졸업 후 5개월 정도 지났을 때쯤 학교 선배의 소개로 녹음하는 일을 소개받았다. 기독교 청소년 콘텐츠에 들어갈 노래를 부르는 일이었는데 꽤나 높은 고음들이 즐비한 멜로디가 있는 곡이었다. 콘텐츠 회사는 내 음역대 따윈 안중에 없었고 이미 mr도 나와 있었기에 꼼짝없이 불러야 했다. 못 한다고 양해를 구하고 스튜디오를 나와야 하나, 일을 소개해준 선배한텐 뭐라고 말하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녹음부스에서 마이크 세팅을 마치고 나온 프로듀서가 이 노래가 어떠냐고 물어왔다. 나름 트렌디한 ccm을 만든답시고 요새 유행 중인 비트를 접목시킨 기독교 음악이었는데 하필 장르가 락이어서 블랙음악이 주 전공인 나는 당황스럽기만 했다.
“아 제가 사실 이런 노래 스타일을 잘 안 불러봐서요, 일단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아직 사회 초년생이어서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요령이 한참 부족했다. 스타일이 어떠냐고 물어본 것은 실제로 노래가 어떠냐고 물어본 것이 아니었다. 노래는 너무 훌륭하고 본인이 부족할지 모르나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말하면 끝날일을 초장부터 프로듀서의 사기를 꺾어버렸다.
녹음을 시작할 때 먼저 원테이크로 녹음해 두는 것은 노래 전곡의 파트가 어딘지 한눈에 알아둘 수 있게 편리하게 트랙을 볼 목적으로 하는 엔지니어와 보컬 둘다에게 필요한 전초작업이다. 일종의 스코어를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원테이크로 처음 노래를 할 땐 프로듀서와 보컬 사이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내 목소리가 어느 정도까지 나오는지 체크하는 순간인데 실수가 많을수록 오늘의 녹음시간이 늘어날 거라는 암묵적 동의가 이루어진다.
처음 보는 악보인 데다가 음역대도 높아 어떻게 소리를 내야 할지 어물쩡거리다 박자를 놓쳤다. 다행히 교회 전도사님이셨던 프로듀서는 그의 성품만큼 너그러이 다시 한번 해보라고 기회를 주셨다. 두 번째 시도에서는 아까보다 안정된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이번엔 가사가 문제였다. ‘자랑스러운 그리스도의 용사’ 부분에서 발음이 꼬여버렸다. 그리스도 단어가 너무 영어처럼 들리지 않게 발음해 달라는 요청에 나는 다시 한번 혀 끝에 힘을 주어 발음했다. 그제야 프로듀서는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오케이’라고 했다.
기독교 콘텐츠 회사이다 보니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않아 스튜디오의 상태도 좋진 않았는데 녹음 부스가 따로 없어 일반 사무실에 차음막이 간이 설치된 작은 방에서 녹음이 진행되었다. (보통 생각하는 넓은 유리창 사이로 나를 모니터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방문을 열어 두고 바로 옆방에서 엔지니어링을 보고 계셨기에 그 어떤 때보다 프로듀서의 반응에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몇 번의 녹음을 반복하자 감을 되찾은 나는 청소년 대상의 노래 가사인 만큼 풋풋하면서도 홀리한 감정을 더욱 끌어올려 한층 더 은혜 충만하게 녹음에 임했다. 목에서 쇳소리가 나오기 바로 직전에 2시간가량의 녹음은 끝이 났다. 말이 2시간이지 2시간 내내 키(key)가 높은 노래를 내내 불렀더니 말을 할 때 약간 통증이 생긴 상태였다. 녹음 경험이 적어 요령 없이 노래를 부르다 보니 생긴 일이었다.
스튜디오를 나와 계단을 내려가며 프로듀서가 건넨 봉투를 조금 열어보니 3만 원이 들어있었다. 소개받을 때 정확한 금액을 알고 간 건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적은 액수에 긴장이 훅 가라앉았다. 거마비 안에는 녹음비는 포함되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녹음 시세를 몰랐던 것일까. 일을 소개받을 때 시급이나 일급에 대해 미리 알려준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시급부터 물어오는 어린 후배의 말에 ‘넌 아직 사회 생활할 준비가 안 됐구나. 돈이 중요한 게 아니야 경험이 중요한 거지’라고 말하는 뻔한 핀잔을 듣기 싫어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사회초년생으로서 일의 경험이 꼭 필요했던 입장에서는 페이 여부와 상관없이 일을 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얻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다 보니 일을 시키는 입장에서도 페이에 관해 미리 상의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거니와 상당히 적은 액수에도 거절 없이 받아들이는 게 이쪽계의 관례처럼 여겨졌다. 그러다 3만 원 5만 원에 그치던 일일 페이에서 10만 원까지 페이가 오르던 순간의 희열을 잊지 못한다. 내 가치가 두 배 세배로 높아졌다는 것은 프리랜서로서 자부심도 함께 올라가는 것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