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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아쏭 Sep 05. 2024

김광석 코드(chord)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다른 일을 시작하기 시작했다. 오롯이 음악의 길만 걷던 친구들조차 음악계를 떠나기 시작했다. 나보다 훨씬 재능이 뛰어났던 친구들마저 필드를 떠나는 모습을 보며 나 같은 사람이 굳이 버티고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음악계를 떠나는 행위는 마치 내 청춘에 대한 배신처럼 느껴졌다. 20대의 젊은 날을 음악을 위해 참고 또 견디며 보냈다. 수중에 몇만 원만 쥐어줘도 한 달은 기분 좋게 음악만 하며 살 수 있을 것 같던 시절이 지나갔고 그 사이 난 더 어른이 되어야 했다.


 친한 친구들이 결혼을 했다. 실력이 좋아 여러 곳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받고 유명한 작곡가들 밑에서 일도 많이 했던 그녀들이었다. 결혼을 하자마자 아이가 생겼고 아이를 키우느라 작곡할 시간이 없다고 했다. 가끔 소식을 물으며 이야기를 나누면 음악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어 보였지만 아이를 키우며 내조하는 삶이 더 좋다고 말했다. 음악을 할 때보다 더 행복해 보이는 건 사실이었다. 친구들의 뛰어났던 재능이 아까워 유튜브로라도 활동이어가면 어떠냐 권했지만 이제는 음악과 멀어진 지 오래라며 손을 내저었다.


 내가 지나치게 음악에 사명감을 가지고 있던 걸까. 누군가에게는 그저 대학교 전공일 뿐이고 좋아해서 선택했을 뿐인데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걸고 있었던 건 아닐까. 30대를 앞둔 나는 잠시 길을 잃었다. 돌아보니 많은 걸 쌓아왔지만 앞으로 갈 길을 생각하니 더 아득해져만 갔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작기만 한 내 기억 속엔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 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는 생각보다 단순한 코드로 구성되어 있다. 다이아토닉 코드 안에서 가장 기본적인 코드진행이었고 멜로디도 예외성 있는 음정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당연한 듯 물 흐르듯 써내려 간 듯한 그런 음과 코드들이었을 뿐. 그런데도 이렇게 깊이 있는 노래가 나올 수 있는 거구나. 김광석아저씨는 어떤 생각으로 이 노래를 써내려 갔을까. 어떤 삶을 살았기에 세월을 관통하는 가사를 쓸 수 있었을까. 가사를 음미하고 있자니 서른이란 나이가 마치 오래된 캔커피의 씁쓸한 맛처럼 느껴졌다. 어딘가 모양을 잃어가고 시작점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리기 쉽지 않아 졌다. 나는 지금 가슴속에 무얼 채우고 살고 있는 것일까. 점점 나와 멀어져 가는 음악 동지들을 배웅해주고 나니 빛바랜 악기들만 내 곁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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