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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고양이 Mar 13. 2024

내 세상이 흔들렸다.

베개 집착 고양이

어떤 사람은 이런 날을 여우가 시집간다고 하고 어떤 이는 호랑이 장가간다고 했다. 뭐 같은 뜻이지만 그날 맑은데 비가 내리고 있었다. 다행히도 부지런히 챙겨 나온 우산이 있었기에 당황하진 않았다. 양손에 짐이 가득했지만 우산 하나 못 들겠나 하며 우산을 피려고 올리는 순간

몸이 휘청하며 그렇게 내 세상이 흔들렸다. 


멋 내려고 신고 온 통굽 샌들이 아스팔트의 물기를 만나 미끌렸겠지 그리 간단히 생각했는데  조금씩 한쪽으로 밀리는 느낌이 들더니 구토증세가 나타났다. 몇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아찔한 감정에 사로잡힐 정도로 그 충격은 선명하게 뇌에 새겨진 느낌이다. 눈에 초가 낀다고 하나 위기에 냉정 함이라곤 손톱만큼도 없는 나는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그곳은 내가 몇 년째 강의하고 있는 직장이자 모교였기에 정신줄을 꼭 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조금씩 천천히 중앙로에서 벽으로 이동하자 어지러운 증상은 있다 없다를 반복하다 일순 줄었다. 벽을 부여잡고 채 펴지도 않은 우산은 다시 접어들고 그 비를 다 맞으며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래도 위기에는 남편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사느니 마느니 싸워대도 남편뿐이구나 하는 찰나, 전화는 좀체 연결되지 않았다. 한숨이 땅끝까지 꽂히는 느낌이었다.


엄마에게 한다면 보통 놀라지 않으실 텐데 나는 여동생에게 전화를 돌렸다. 여동생의 목소리를 듣자 몰려오는 안도감. "내가 너무 어지러워서 무사히 집에 갈 수 있을지 몰라서  쓰러질 수도 있어서 누군가에게 알려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말을 하면서 거의 속으로는 울고 있었다. 애들 얼굴이 하나 둘 스치고 덜컥 겁이 났는데 택시를 타라는 여동생의 말에 손을 들어 택시를 잡고 앉자 메슥한 속에서 약간의 신물이 올라왔지만 어지러움은 이내 잦아들었다. 그렇게 여동생은 저혈압인가 저혈당 쇼크인가 다양한 추리를 늘어놓으며 차분히 대응했고,

집 도착까지 함께 해 주었다. 


우리는 네 남매다. 딸 셋에 아들 하나 그중 나는 둘째다. 어릴 적 여섯 식구가 같이 외식을 하면 언성을 높이며 애를 왜 그렇게 많이 낳았냐며 화내는 어른부터 아들 낳으려고 들러리를 세웠다며 존재를 무시하는 사람까지 상처를 받는 일이 많아 창피했었는데, 다 크고 보니 서로 의지도 되고 피를 나누어서 그런지 이 험난한 세상이라는 전쟁터에 웬만한 전우보다 나은 존재들이 되었다. 두 살 아래 여동생은 또래의 애들이 있어서인지 특히 그랬다.


모든 구구절절 사연을 들은 엄마가 이비인후과에 진료를 받아보라고 했다. 괜히 생기는 어지럼증은 없다고 하셨다. 그 의견에 떠밀려 동네 이비인후과에 갔다. 의사가 청력 검사부터 다양한 검사를 진행하더니 병명이 이석증이라고 했다. 반고리관에 있는 돌이 자리에서 빠져나와 생기는 병.  물리치료로 간단히 고치는 법을 알려주었는데 마치 침대에 몸을 내동댕이 치는 듯한 자세였다. 진료를 마치고 나가는데 의사는 아주 낮은 목소리로 증상이 지속돼도 절대 놀라지 말라고 했다. 어지럼증은 시간이 지나면 멈추고 절대로 쓰러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라고 증상이 계속되면 정신적 문제를 겪는 경우가 가끔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뒤로하고 나오는데 마음이 몹시도 무거워졌다. 이게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구나 하는 자각이 그제야 들었다.


내가 지금 내 딸처럼 중학생일 때 엄마는 이 병에 걸리신 적이 있었다.


그 무렵 나는 하교 후 곳곳에 쓰러져 누워있는 엄마를 발견하고는 했다. 아빠는 덤덤하게 곧 나을 거라고 정신적인 문제라고 말하곤 했었다. (지금 보니 그때는 병명을 모르셨던 것이 아닐까) 어떤 날은 마룻바닥에 어떤 날은 화장실 앞에 어떤 날은 곰탕 냄비가 끓고 있는 부엌에서 엄마를 발견했다. 30킬로 조금 넘는 작은 아이였던 나는 나보다 10킬로 더 나가는 엄마를 이불에 올려 질질 끌어 안방이나 거실 소파에 데려다 놓고는 했다. 어지러운 것 이외에 딱히 딴 증세가 없어 보여서 인지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한참 사춘기였던 나는 아빠의 정신적인 문제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었다. 그 무렵 아픈 아내들은 소박을 맞기도 했기에 (애가 넷인데 설마 쫓겨나기야 했겠냐마는) 이대로 엄마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두려웠었다.  누워있는 엄마에게 "엄마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엄마가 아프니까 집에 오기 싫다고"라고 짜증에 가까운 모진 말을 했었다. 물론 난 이 기억을 애써 지웠지만, 작년 수술로 입원한 엄마의 간병을 갔을 때 애들에게 아픈 티를 내지 말라며 애들이 불안해한다며, 오래된 서랍에서 쪽지를 찾아 꺼내듯 툭하고 그 이야기를 털어내셨지만, 오래 덧나는 상처였던 모양이었다. 

 그때 그 절박했던 내 심정을 엄마에게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마치 변명같이 들릴 것 같아서 또 이제 와서 그게 뭐 그리 중한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살면서 많은 미스터리들이 시간이 지나 답을 찾아가는 느낌이었다. 이석증 이거 유전인가.


사진이야기: 제리는 하고 많은 장소 중에 유독 내 베개에서 잔다. 고양이는 거의 16시간을 잔다고 하는데 각방에서 다양한 장소를 정해 잠드는데 보통 푹신한 의자나 침대에서 잔다. 그래서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각 방에 침대를 훔쳐 낮잠을 즐기는데 가장 빈번하게 자는 곳이 유독 내 베개다. 옆으로 자는 나는 꽤 비싼 베개에 집착하는데 얘도 비싼 건 아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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