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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가람 Jul 29. 2024

입장차이 1

버스를 기다리며

볼 일이 있어 집 앞 버스 정류장으로 나갔다.

정오의 햇살은 더위를 실감 나게 했다.

정류장에 도착해서 그늘에 들어서며 한숨 돌렸다.

두 분이 먼저 와 계셨다.


"버스가 와이리 안 오노."(버스가 왜 이렇게 안 오지?)

"한 대가 먼저 갔어예."

"아, 그래노이 이래 안 오네."(그래서 이렇게 안 오네.)

"걸어오는데 버스가 보이더라꼬예. 그래가 손을 흔들었는데 마 그냥 가삐데예."

(걸어오는데 버스가 보였어요. 그래서 손을 흔들었는데 그냥 갔어요.)

"아하, 그냥 좀 태아주지."(그냥 좀 태워주지.)

"어떤 거는 세아주는데 어떤 거는 그냥 싹 가삐리예."

(어떤 차는 세워주는데 어떤 차는 그냥 쓱 가요.)

"그러이 못땠어. 좀 세아주면 될낀데."

(그러게 못 됐어. 좀 세워줘도 될 텐데.)

"에고 덥다."


앞 차를 보내고 십여분을 더운 길가에 앉아 기다리셨는지 불만을 표현하고 계셨다.

눈앞에서 버스를 놓치면 실망스럽고 원망 비슷한  마음이 들 수 있는지라 '기다리느라 힘드셨나 보네'하고 생각하다가 예전 경험이 떠올랐다.


버스가 막 출발하려고 하는데 기사님이 차를 세우시고는 출입문을 여셨다. 곧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 한분이 헉헉거리며 차에 올라타셨고 고맙다는 말을 하시곤 자리에 앉으셨다. 기사님은 정류장이 아닌 곳에 차를 세우면 문제가 되니 다음에는 그렇게 쫓아오지 마시고 다음 버스를 타시라고 안내하셨다. 아마도 잠깐 사이 기사님은 고민하셨을 것이다. 쫓아오시는 할머님을 태울지 규정을 지킬지 말이다.


또 한 번은 어떤 승객이 정류장이 아닌 곳에  세워주시면 안 되겠느냐고 부탁하시는 걸 봤었다. 차가 밀리는 상황이었고 아마 그곳이 본인이 가고자 하는 곳과 더 가까운 모양이었다. 버스 기사님은 정류장이 아닌 곳에는 내려드릴 수 없다고 하셨는데 그분 표정은 별로 좋지 않았다. 버스는 정류장에서 정류장으로 움직이는 교통수단이고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이 정도 융통성은 있을 수 있잖아.'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만에 하나 문제가 되면 책임은 버스기사에게 돌아가는 것일 텐데....


반면 이런 경우도 있다. 도로가 너무 막히는 구간에서는 차선 변경을 해서 정류장 앞에 대기가 불가능하여 주행차선에서 승객을 내려주면서 연신 죄송하다고 조심히 가시라고 안내하는 상황도 벌어진다. 대도시에는 도로 중간에 정류장이 있어 이런 상황을 방지하고 있지만 내가 사는 곳은 이런 시스템이 아직은 없다. 차선 변경이 어려운 상황에서 승객을 어떻게 내려주어야 할 것인가. 융통성을 발휘해서 도로 중간에 승객들이 내리도록 했지만 만약 문제가 생긴다면 책임소재는 버스기사에게 돌아가게 되는 게 아닐까?


규정을 지키는 것과 적절히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 그 경계를 어디로 잡을 것인가? 그리고 그 융통성에 대해 우리는 동의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문제가 생기면 기꺼이 책임을 나눠질 용의가 있는가?

일상의 익숙한 모습에 속에서 우리 사는 모습을 돌아보게 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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