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처음 시댁에 인사드리러 갔던 때가 생각난다. 막내아들이 결혼할 사람을 데려온다는 사실이 기쁘셨는지 예비시어머님은 정말 한상 가득 맛난 음식들을 내어오셨다. 차려주신 정성에 감사하며 맛있게 식사를 끝마쳤다. 자꾸 음식을 권하시는 탓에 평소 먹던 양보다 더 먹어서 배가 빵빵해졌지만 어른이 권하시는데 자꾸 물리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 감사하다고 인사드리면서 더 먹었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어 오시는 음식이 그게 끝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식후 과일에 식혜에 주전부리까지 접시에 가득 담아내시는데 더 먹어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환대를 받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감사하면서도 부담 가득한 마음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소화기가 약했던 나는 과식은 피하고 소화가 잘 되지 않을 거 같은 음식은 잘 먹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기름진 음식들을 멀리하게 되었고 외식도 잘하지 않았다. 그렇게 조심해도 수시로 체해서 고생을 하는지라 절대 과식은 하지 않았다. 그랬는데 그날 먹은 음식은 평소 식사량을 훨씬 넘었었다. 결국 저녁 늦게까지 소화가 되지 않아 더부룩한 속을 붙잡고 낑낑대다 한밤중에야 잠들 수 있었다.
직장에 다닐 때 회식을 해도 먹는 양이 정해져 있어 어느 정도 먹고 나면 더 먹지 않는데 꼭 더 먹으라고, 먹는 게 그렇게 부실하면 안 된다고 권하시는 분들이 있었다. 한국인은 밥에 진심이라던가.... 매번 소화가 안되어서 많이 못 먹는다는 이야기를 할 수도 없고, 이야기를 한들 먹다 보면 뱃골(식사량)이 는다고 더 권하는 사람도 있는지라 느리게 조금씩 먹는 방식으로 대응했었다. 어쨌든 젓가락을 계속 움직이고 있으면 먹는 걸로 보일 테니까.
이렇게 음식을 권해오는 것에 불편감이 있어서인지 나는 남에게 음식을 잘 권하지 않는다. 물론 드셔보시라고 한번 이야기하지만 상대가 거절을 표현하면 더 이상 권하지 않는다. 내 입장에서는 그것이 상대에 대한 존중이자 배려였다. 결혼 초 이런 내 태도에 대해 남편은 "매정하게 한번 안 먹는다고 했다고 그냥 두냐. 두 번은 권해봐야지."라고 했다. 뭔가 살짝 억울했는데 관점의 차이가 분명히 보였는지라 그냥 웃고 말았다.
그랬다. 안 먹는다고 해도 (그냥 예의상 하는 말이라고 여기니까) 맛이라도 보도록 계속 권하는 것이 인정스러운 행동이었고 한번 거절했다고 더 이상 권하지 않은 것은 뭔가 바람직하지 않는 태도였다. 남편의 입장에서는 말이다. 반면 불편함이 있으니 안 먹는다고 하는 것일 텐데 자꾸 권하는 것은 부담을 주는 일이니 상대의 의사를 무시하는 것이고 예의가 아니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의 입장이었다. 상대를 생각하는 관계를 생각하는 마음임은 같으나 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은 시댁에 가면 찾아오시는 이웃분들께 드실 때까지 음식을 권한다. 아예 묻지도 않고 음식을 내어가기도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시댁이 있는 마을의 예의고 인정스러움이니까. 반면에 나의 지인들을 만날 때는 각자의 의사에 따른다. 더 이상 권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렇게 중립지대를 찾았고 요령도 생겼다.
지금도 상대가 거절하는데 꼭 권해야 하는 가에 대한 내 생각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속해있는 공동체가 어디냐에 따라 공유되는 가치가 다르니 그에 따르는 것이 존중일 거라 생각한다.
나와는 다른 경험 속에서 살아온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이렇게 낯설고 어색하고 당황스러움의 연속일 수 있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에 대해 느낄 수 있는 부분이기에 '넌 왜 그래?' 보다는 '내방식과는 다르네 그럴 수도 있구나.'로 대응해 본다면 다툼이 절반 이상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물론 상호성에 따라 서로가 서로에게 말이다.
인식을 바꾼다는 것, 입장의 차이를 좁힌다는 것이 만만하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