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여 회사의 컴퓨터를 켜니, 저격 메신저 쪽지가 와 있다. 그동안 나를 배려해 주기 위해 노력했단다. 내가 그 기회를 다 놓쳤단다. 어제 회의 전에 내 이야기를 자기들끼리 했었나 보다. 회의 초반에 한 가지가 걸려들면 쭉 돌아가며 계획서의 문제점만 콕콕 집는 회의가 불편했다. 뒤로 가면 시간에 쫓겨 흐지부지되는 모습도. 그래서 미리 계획서를 읽고 개인적 취향 차이를 드러내기보다 문제가 예상될 경우만 지적하자고 했다. 그 지적도 상대의 인격을 존중하는 표현을 쓰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대안 위주로 이야기하자고 했다. 말은 감정이 실릴 수밖에 없으니, 자기의 능력을 자랑하기보다 최선을 다한 동료의 성과물을 존중하자고 했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도 듣고 있는 것만으로 얼굴이 화끈거렸다. 항상 그랬듯이 회의는 또 그랬다. 나는 견디기 힘들었다.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꼼꼼하게 검토해 주는 선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옹졸한 사람이었다. 그들은 나이 많은 나를 챙겨주려고, 지난 회의에서 내가 한 것을 지적한 동료에게 미리 당부했단다. 내 것에 대해서는 어떤 말도 하지 말라고. 나는 그런 부탁을 한 적도 없는데 말이다. 하지만 회의 분위기를 신경 썼다는 그녀의 말과 달리, 회의 초반에 동료의 실수를 또 돌아가면서 지적하고 있었다. 말에 말을 더하면 자신의 능력이 과시되는 것처럼 찧고 까불고 있었다. 실수를 붙잡힌 동료는 최대한 의연한 척, 신경 쓰지 않는 척했다. 그러니 지적의 정도는 더 세졌고, 나는 같은 내용의 지적은 반복하지 말자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러다 동료를 비웃는 웃음을 공유하는 그들이 보였다. 모욕을 느꼈다. 회의에 참여할 의미가 없어 조용히 나왔다.
우리 팀 회의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소문을 회사 전체에 내가 퍼트렸단다. 다른 팀보다 회의 시간이 매번 길었지만, 그때도 소문이 퍼졌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다. 누가 말하면 소문이 되는지, 몇 명에게 말하면 소문을 퍼트리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오히려 관련 없는 사람이 말하는 소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사자가 겪는 괴로움이다. 대화가 안 되는 그들과 대화를 해보려 애썼다. 그러다 어제 회의 자리를 나오면서, 대화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이젠 모두 버렸다.
그녀가 화가 나서 쪽지를 보낸 결정적 이유는 그녀가 말한 이유와 다르다. 그녀는 내가 우리 팀원들의 허심탄회한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무시했다고 했지만, 사실은 본인이 보내준 서식에 대한 그 어떠한 도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나는 연결되는 내용이 뒤로 넘어가지 않도록 장평 100에서 95로, 자간 160%에서 130%로 줄였다.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다른 동료에게 물었다. 그 동료도 “의미 전달이 중요하지, 자간이 중요할까요?”했었다. 그런데 우리 팀의 표준 서식을 만든 그녀는 서식이 파괴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는 서식보다 의미 전달이 중요하다고 응수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 계획서가 서식을 지키지 않아, 가독성이 떨어져 읽지 못했다고 회의 시작부터 투덜거렸다. 그 말을 듣고 화가 났지만, 그 순간은 화를 참았다. 대화를 하려 했으니까.
그동안 회의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는 대화를 나눈 상대는 그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무리도 아니었으니까. 자기 계획서에 다른 동료가 지적하면 본인의 의도가 사라진다고 본인도 투덜거렸다. 그러니 자기 계획서만 아니면 그녀는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본인의 의견과 취향이 무시당하니, 화를 낸 것이었다. 납득할 수 없는 의견에 내가 말로 그치지 않고, 개인적 취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나가버리니 그녀는 더 화가 나서 참지 못한 것이다.
그녀는 대등하게 일하기보다, 나이와 경력을 앞세워 위계적 질서를 세우고 싶어 한 것이다. 그 걸림돌이 나였기에, 내 비위를 적당히 맞추며 제외한 후 자신의 질서를 단단히 세우고 싶었을 것이다. 그녀가 세우는 질서를 따르는 팀원들은 나를 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으로 몰아세웠다. 그 싸움에 걸려들지 않으려 노력했다. 분명히 그들이 나를 몰아세웠는데, 싸우는 순간 둘 다 문제가 있는 것으로 정리되면 억울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