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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대로 Mar 09. 2024

아버지의 팔순 잔치

팔순 잔치에 나타난 강씨 부부가 이상하다. 깨끗한 염색머리와 달리 묵은 된장찌개 냄새가 나는 잠바를 걸치고 눈곱이 잔뜩 끼어 있는 강씨와 때 이른 내복을 입어 강씨 부인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나타났다. 막내아들을 따라서 운동화를 질질 끌고 오는 강씨마누라는 주변을 살피지만 기대를 하지 않은 채 막내아들이 앉으라는 자리에 앉았다. 강씨는 막내아들이 예약한 최고급 호텔 뷔페지만, 한 발짝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자리가 어색하거나 못마땅하면 늘 저런 모습이다. 안 먹는다고 우기다가 마누라가 챙겨주면 마지못해 먹지만 표정은 어색하다. 강씨 마누라는 남편을 챙기다 손주를 챙기며, 막내아들의 눈치를 본다. 이때 천안에서 온 딸네가 늦게 나타났다.

   “아버지 여기 대기 비싼 부페에요. 저랑 같이 가서 신기한 것도 좀 골라봐요.”

   “어어 싫다.”

   “그럼 이서방이랑 같이 저쪽 회코너라도 가요.”

    “어어어어 됐다. 필요 없다.”

  

  혼자 있는 강씨에게 유일하게 다가간 딸도 강씨를 움직이게 하지는 못했다. 그런 강씨가 신경이 쓰여 딸은 접시 가득 음식을 담아 강씨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마지못해 강씨는 이것저것 끄적거렸다. 팔순 잔치라고 케이크와 꽃다발을 막내아들이 자기 딸을 앞세워 아버지 강씨 앞에 나타나자,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엷은 미소를 띠었다. 하지만 찍은 사진에도 호텔 직원이 촬영해 준 영상에서도 그 미소는 확인할 수 없었다. 강씨는 오지 않은 큰아들 강희종과 사촌 조카를 찾고 있었다. 잔치가 있기 일주일 전에도 강씨는 막내아들에게 그들 연락은 제대로 한 것이냐고 짜증을 냈었다.

​​

  팔순 잔치가 있기 삼 일 전에 강씨는 큰아들이 보고 싶어 선친의 묘를 찾았다. 학교 문턱에 가지 못해도 자신의 힘으로 땅사고 집사서, 형님과 형수가 아버지 모시고 살도록 해줬었다고 강씨는 자랑했었다. 그러나 이제 고향에 남아있는 것은 이 묘소가 있는 산 뿐이라 안타까웠다. 예전처럼 간단하게 오를 거라고 물 한 병도 챙겨 오지 않았다.  공사판에서 갈고닦은 체력이라도 나이는 못 속인다. 헛도는 신발이 거추장스러워서 내려다보니 신발 밑창이 다 삭았다. 돌부리에 차인 채 흙먼지를 뒤집어쓴 신발은 더 이상 신발이 아니었다. 물속에 있을 때 물고기 이빨은 무기였지만, 물밖에 나온 지금은 생선장수가 생선을 들어 올리는 도구인 죽은 생선의 이빨처럼 구실을 못하고 있다. 빌라공사판에서 젊은것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산 안전화가 오 년 전까지는 멀쩡했었다. 그 안전화의 앞코가 벗겨져, 요즘따라 수시로 처량해지는 강씨의 처지처럼 녹슨 쇠가 보인다. 신발이 구실을 못하니, 침침한 눈을 비비며 엉킨 나뭇가지를 붙잡고 기어코 올랐다.

 기억 속의 번듯했던 모습과 달리 할퀴고 벗겨진 후 어설프게 덮여있는 봉분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강씨는 봉분 주위에 흩어진 막걸리병을 살폈다.

  ‘소.성.주. 이게 뭐꼬?

   인천 것들이 왔다 갔네’

혼자소리를 주어 담다가, 침침하게 낀 눈곱을 떼며, 몇 명 없는 연락처를 살폈다.

  “으흐음, 희종이… 아니 오종이냐? 니 이게 뭔 지꺼리고? 누가… 니 멋대로…. 여를 …. 와서 굿하라 했노. 이카면 되나. 니 지금 어디고?”

  “그 묘가 삼촌묘예요?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묘잖아요? 노름에 중풍 든 할아버지를 모신 것은 우리 엄마라고요. 엄마 모시고, 고향 친구 만나서 한 바퀴 돌다가 왔네요.”

  “니 지금 어디고? 일은 잘 되고 있나? 시간이 걸려도 제대로 해라. 시간이 얼마 없다 아이가. 내가 을매나 살겠노. ”

  급한 마음에 여기저기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아 답답하고 짜증이 나서, 뛰다시피 내려오려던 산길에서 미끄러졌다. 신발이 제구실을 못하니 엉덩이로 끌다시피 내려왔다. 그 덕에 옷은 진흙으로 엉키고 찢겨 너덜너덜하다. 요즘따라 손발을 제대로 못쓰는 마누라에게 맡길 수 없어, 다시 산밑 하우스로 왔다. 강씨의 공사판 솜씨로 지은 비닐하우스는 겉과 달리 속은 하루쯤 버틸 수 있었다. 작년에 자꾸 지난 일을 들추는 마누라와 싸우고 홧김에 죽는다고 딸에게 전화했더니, 더 이상 밥해달라고 하지 말고 밥도 좀 해 먹으라고 전기밥통을 사서 보냈다. 그 전기밥통을 열려고 단추를 찾았지만 못 찾았다. 딸에게 보내려 했지만 우체국에 들고 가기에 무거워, 구석에 쌓아놓아 싹이 난 고구마를 씻어서 끼니를 때우고 전기장판의 온기로 불안한 마음을 달랬다.

   퇴근하며 부산집에 들른 막내는 강씨 부인에게 “대체 아버지는 어딜 갔기에, 구해달라던 노인일자리를 빼먹냐”라고 큰소리쳤다. 대신 봐달라고 사정사정했다고 투덜거리며 외투도 벗지 않고 현관에 들어섰다. 강씨 부인은 아무 말 없이 찌개의 불을 켰다. 팔팔 끓을 때 내놓기 위해 미리 불을 끄고 막내가 들어서기만을 기다렸었다.  막내가 집에 들른다는 연락을 받고, 급하게 시장에 갔었다. 막내가 좋아하는 생선을 손질하고 싶었지만 손가락이 아파서 포기하고, 싼 값의 오만둥이를 손에 들었다. 먹던 된장찌개는 식탁 구석에 몰아둔 채, 오만둥이를 넣어 끓인 새 된장찌개와 마흔 중반이 넘어서도 아이처럼 좋아하는 햄을 구워서 저녁으로 내놓으려 했다. 오랜만에 막내와 식탁을 마주하려고 밥도 나란히 담았다. 그러나 아들은 식탁은 못 본 듯이 외투도 벗지 않는다. 며느리 대신 어린이집에서 딸을 챙겨야 한다고. 강씨 부인은 섭섭했지만 아무 말도 못 했다. 일주일 전 목욕탕 사건이 맘에 걸려, 딸이 사 왔던 소고기 선물세트를 대신 내놓았다. 평소 부산집에서 볼 수 없는 물건이라, 막내는 누나가 왔었구나를 눈치챘으면서도 묻지 않았다. 부산집은 냄새가 나서 딸이 오기 싫어하니, 귀찮아도 환기 좀 시키라고 눈살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며느리가 챙겨준 뇌영양제는 꼬박꼬박 챙겨 먹냐며 묻다가 미덥지 않아, 약을 챙겨놓은 식탁 구석을 찾다가 그대로 남겨진 약통을 보고 지금까지 보다 더 큰 소리로 화를 냈다.

  “저 약은 치매를 예방해 주는 약이라고 지선이가 어렵게 구했다고 했잖아. 이젠 엄마까지 왜 그래. 나를 대체 어느 정도까지 괴롭히려고 그래.”

   막내는 신발에라도 화풀이를 하는지 신발을 꺾어 발을 넣었다. 강씨 부인의 엄지발가락 옆이 눈에 띄게 부어있는 모습은 보지 못하고 본인이 사준 구두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 한 구석에 처박혀 있는 것이 또 못마땅했다. 삼일 뒤 팔순 잔치에는 꼭 구두를 신고 오라고, 자기 말소리를 본인이 다시 듣는 것처럼 말에 신경을 쓰며 짜증 나는 마음을 조금은 가라앉히고 집을 나왔다.

  차 시동을 걸기 전의 습관처럼 형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신호음만 가고 받지 않는다. 전화를 끊고 형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살폈다. 모르는 여자와 환하게 웃으며 찍은 사진을 확인하고 화가 났다. 딴 사람처럼 웃고 있는 모습이 꼭 본인을 놀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자신과 연락은 안 되어도 누나와 함께 십만 원씩 다달이 부치던 계비는 꼬박꼬박 냈었는데, 그것도 끊긴 지 5년이 넘었다. 남들처럼 형이 자신을 도와주기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아들 노릇이 온전히 자기 몫으로만 되어버린 것이 불만이다. 아파트로 이사하기 위해 빌린 돈 때문에 처갓집에 큰소리 못 치는 것도 다 형 때문인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늙은 부모가 어찌 사는지 형은 걱정도 안 되는지, 어쩌다가 내가 장남이 된 것인지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부산집에서 도망치듯, 남편 따라 떠나온 딸은 천안의 구시가지에서 작은 옷가게를 하고 있다. 집안에서 유일하게 대학까지 나온 딸이 기껏 옷가게 하냐고 강 씨 부부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래서 강 씨 부부는 동네사람들에게 딸이 남편 따라 천안에 있는 대기업에 다닌다고 거짓말을 했다. 딸이 모를 것이라고 여겼지만, 부산집 동네에서 마주친 동네 아줌마가 자기 아들 취업자리도 알아봐 달라는 말 때문에 딸도 알게 되었다. 딸은 부모가 원하는 임용고시에서 계속 떨어졌었다. 시험 치는 것도 제대로 못하냐는 강씨 부인의 말에 딸은 미련 없이 부산집에서 나왔다. 가진 것 없이 시작한 결혼 생활이지만, 반듯한 아파트라도 장만하고 싶어, 동네 아줌마들의 비위를 맞춰가며 옷가게를 열었다. 옷가게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그네들이 놀 수 있는 사랑방 구실을 해줘야 했다. 때로는 끼니도 때울 수 있도록 간이 부엌도 마련해 두어야 했다. 말솜씨뿐 아니라 음식솜씨도 필요한 것이 동네장사다. 이 날도 돈은 있어도, 자식이 따라 주지 않거나 남편에게 무시당하는 아줌마를 골라서 비위를 맞추고, 옷은 나중에 그들이 슬쩍 쳐다볼 때 권할 요량으로 작은 가게에서도 제일 비싼 옷으로 갈아입고 고구마를 씻고 있었다. 음식 냄새가 많이 나거나 열량이 높은 음식은 꺼리는 그네들을 위해 간단하게 먹으면서도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것을 고른 후, 기호에 맞게 뿌려 먹을 수 있는 고급 치즈도 챙겨두었다. 물론 커피는 옆가게에서 시켜야 한다. 그래야 그 가게 앞에 주차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네에서도 꼭 차를 몰고 와서 자랑하고 싶은 아줌마들이 있기 마련이니까.

  딸이 옷가게라도 차릴 수 있었던 것은 강씨 부인 덕분이다. 강씨 부인은 가끔 동네 옷가게에서 큰소리를 치던 손님이었다. 딸이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와 엄마가 없으면, 동네 옷가게를 가면 있었다. 거기에 있는 엄마를 찾아가, 용돈을 달라고 하면 꼭 성공했었다.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딸이 들어서면 동네 아줌마들이 말하는 딸의 학교 성적은 실제보다 늘 높았다. 지금도 부산집 동네에서는 딸이 살고 있는 아파트, 사위의 직장은 모두 거짓말이었다. 부모에게는 자랑할 수 없는 자식은 자식이 아니다. 자식 이야기가 나오면 자랑을 늘어놓거나 주눅 들어 시간만 보낸다. 그러다 집에 오면, 항상 그랬던 자식의 정돈되지 않은 방에 화풀이하거나 신세 한탄을 한다.

  강씨 집안도 마찬가지다. 강씨의 큰 아들은 자랑스러운 자식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큰아들의 성적은 나빴다. 큰아들은 학교에 맘을 붙이지 못했다. 시골에서 농사일도 하지 않고 학교만 다니는데, 무엇이 부족해서 다른 집 자식들처럼 자랑거리가 못 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다고 강씨는 화를 냈었다. 비 오는 날 우산을 챙겨서 큰 아들의 교실 앞에서 기다리다가도 아는 사람을 만날까 봐 걱정했고, 간신히 아들을 만나도 누구냐고 물어볼까 봐 거리를 두며 걸었다. 큰아들이 모를 것이라 여겼지만, 꿀 떨어지는 시선으로 챙겨보는 막내아들과는 대조적으로 거리를 두는 모습에서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었다.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자식이 세상에서 존중받을 수 있을까? 큰아들의 가출은 언제부터였는지, 그 시작도 분명하지 않을 만큼 강씨 집안의 일상이 되었다. 큰 아들의 언어는 가출이었다. 맘에 들지 않는다는 말을 가출로 했다. 오빠의 가출을 보며, 딸도 집에서 벗어나기를 소원했었다. 오빠의 가출은 본능적 선택이었다면, 딸의 선택은 이성적이라는 차이만 있었을 뿐,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같았다. 술 취해 귀가하면 “니 인생 니 살고, 내 인생 내 산다. 알았나?”를 외치다가 취하지 않을 때는 아무 말도 없는 아버지와 아버지가 늦을 땐 밥 하기 싫다고 아무것이나 알아서 먹으라는 엄마는 두통약을 달고 지냈었다.

  딸은 막내의 전화를 못 받았다. 옷가게에 동네 아줌마들이 몰려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부산에 있을 때는 오빠 없이 혼자 알아서 했던 본인과 달리 자꾸 연락하는 동생이 귀찮기도 했다. 막내는 다급한 마음에 매형에게 연락했다. 딸은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동네 아줌마들이 고구마를 먹고 있는 틈을 타서, 가게 앞 큰길에서 막내에게 전화를 했다. 강씨부인이 목욕탕에서 쓰러졌다는 말과 강씨는 인천에서 온 사촌을 만나러 나갔고, 본인은 처갓집에 일이 생겨서 장인어른을 챙겨야 한다는 말이었다. 소식을 듣고 어쩔 수 없이 퇴근한 남편과 함께 부산집으로 내려갔다. 피곤한 남편을 쉬게 하고 혼자 내려갈 수도 있지만, 남편을 방패막이로 삼아, 힘든 부탁이나 짐을 지지 않으려는 딸의 습관이었다.

  며느리 대신 손녀를 목욕탕에 데리고 가 달라는 막내의 부탁으로 온 목욕탕에서 손녀를 쫓아다니다가 강씨 부인은 미끄러져 모서리에 부딪혀 넘어졌다. 목욕탕에서 자주 만났던 동네 사람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옷을 입고 탈의실 소파에 앉았다. 그 옆에서 다섯 살짜리 손녀는 겁나서 “아빠 아빠” 하며 “할머니 죽어?”하며 계속 울었다. 어떤 일로 쓰러졌는지를 막내아들에게 자세하게 말하지 않고, 막내아들의 차를 타고 집으로 왔다. 이젠 손녀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다는 생각이 드니,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괴로웠다. 강씨 부인이 설명하지 않은 목욕탕에서의 일을 막내아들은 치매의 전조증상으로 하체 근육이 손실되어 쓰러진 것으로 생각하고 누나를 시켜서 병원에서 검사를 받게 하고 싶어서 누나에게 전화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강씨 부인은 입술에 멍이 든 모습을 사위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았고, 사위가 친밀하게 다가오는 것이 싫었다.  사위가 강씨의 비위를 맞춰가며 너스레를 떨 때마다 좋아하는 강씨의 모습을 보면 그렇게 주책맞아 보일 수가 없었다. 큰아들과는 살갑게 한 마디도 이어가지 못하면서, 남의 집 자식과는 저렇게 아무 생각 없이 웃는 모습에 화가 났다. 큰아들에게 저렇게 웃어줬으면, 큰아들 희종이가 이렇게까지 밖으로 나돌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5년 전 막내의 결혼식이라고 큰아들은 바스러질 듯 말라붙은 가방 하나만 들고 부산집에 왔었다. 강씨 부인은 막내의 결혼식도 좋았지만, 기대하지 못했던 큰아들까지 와서 그야말로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음식을 했었다. 큰아들이 좋아하는 소갈비와 막내가 좋아하는 돔배기 산적까지 차릴 때는 있는 그릇 없는 그릇이 다 나왔었다. 결혼식은 내일인데 오히려 그날 저녁이 잔치였다. 강씨 부인은 혹시라도 빈 접시가 생길까 차려진 상위의 음식그릇만 살피기 바빴다. 그때 강씨도 흐뭇했는지 좀처럼 속의 말을 하지 않았는데, 그만 튀어 나오고 말았다. 진심이라고 다 소중한 것이 아니다. 진심이기에 더 고통스럽다. 그때 강씨의 말이 그랬다.

  

  “이제 그만 헤매고 정신 차려야지. 동생도 결혼하는데 니는 대체 언제 하노?”

  

  “아버지 제가 한 두 살도 아니고,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 신경 끄세요.”

  “니가 지금까지 제대로 한 거이 뭐있다고 큰소리고? 공부는 뭐 접었다 해도. 결혼은 해야 안 되나? 말이 그렇다 아이가?”

  “이제 제 일은 제가 챙길게요.”

  “아니 니 나이가 지금 맻이고? 니는 부모 생각도 안 하나? 결혼해서 손자라도 안겨줘야 할 거 아이가? 그게 사람 아이가?”

  딸이 엄마 눈치를 보며 나물을 무치겠다고 나서는데 참기름을 많이 쓰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강씨 부인은 당신이 하겠다고 우기느라, 이 말들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강씨 부인은 지금도 그것이 한으로 남아있다. 그러고는 그 사달이 났다.

  “아버지. 그러니까 아버지 말은 저는 사람도 아니란  말이네요.

    하. 참. 네.  이제 없는 사람입니다. 저는” 하고 큰아들 희종이는 숟가락을 던지고 나가버렸다.

  붙잡을 틈도 없이 나가는 큰아들은 영영 오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였고, 강씨 부인도 그렇게 느꼈다. 강씨는 원래 고집불통이라서 어쩔수 없다해도 말리지 않은 가족들이 원망스러웠다. 특히 사위는 그때 제일 힘도 좋고 가장 가까이 있었는데, 그걸 못 붙잡았다는 것에 화가 났다. 자기 가족을 원망할 수 없을 때는 거리가 먼 대상이 대신 목표가 된다. 그래서 강씨 부인은 이젠 딸도 싫다. 혼자 운전해 와서 강씨 부인의 수족같이 움직여주면 좋으련만. 꼭 저렇게 사위를 데리고 나타나 자신의 몰골을 보여줘야겠냐고. 이젠 그나마 옆에 있는 막내아들 빼고는 자신의 마음을 몰라줘서 싫다. 미리 전화라도 했으면 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부산역 근처를 지나면서 연락한 딸에게 이젠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계모임으로 서면시장에 왔다고 거짓말을 했다.

  딸은 부산집에 올 때마다 시장을 봤었다. 음식 준비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엄마의 눈치가 보여서, 최대한 비싼 소고기와 과일을 샀었다. 이번에도 미리 시장을 본 물건을 허름한 4층 빌라의 문 앞에 걸어놓고 내려왔다. 먼지가 쌓여있고, 선전 전단지가 너덜너덜 붙어있어, 아버지 강씨에게 전화를 할까 생각도 했지만, 운전하느라 고생한 남편을 챙겨서 좋아하는 저녁이라도 먹이고 출발해야 할 것 같아 서둘렀다. 그래도 내일이 휴일이라 다행이라고 여기면서.

  점심뷔페로 예약한 팔순 잔치는 누구를 위한 잔치였는지도 모르고 끝났다. 막내는 누나에게 강씨 부부를 부탁하고 장인어른을 챙겨야 한다고 먼저 떠났다. 딸은 늦게 도착했으니 할 말이 없다 싶어서 강씨 부부를 챙겼다. 침침한 눈으로 뒷자리 안전벨트를 제대로 찾지 못한 강씨는 짜증을 냈고, 발이 불편한 강씨 부인은 걸음이 느려 일행을 놓쳤다. 딸이 아버지를 챙긴 후 다시 식당으로 되걸어와서야 강씨 부인을 찾았다. 강씨 부인이 차를 타자마자 강씨는 화를 냈다. 막내가 예약한 식당이 겉으로는 화려해도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기 어렵고 자리도 불편했다고 불평을 하니 강씨 부인은 막내 결혼 때 제대로 챙겨준 것도 없는데, 저리 대견하게 사는 것만 해도 고마운데 뭘 그리 투덜거리냐고 면박을 줬다. 이 면박이 화근이 되었는지 강씨는 해서는 안될 말을 쏟아 버렸다.

  “아들이든 딸이든 하나는 더 낳으라고. 그러면 내 산 준다고 하는데 그것도 못하는 놈이 무슨 아들이고? 내 말이 안 그렇나? 사정도 모르고 지 엄마는 맨날 막내 막내 하잖아. 맨날 그렇게 막내를 싸고도니까 큰아들이 그렇게 되었지. 내 말이 안 그렇나?”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린 이 말을 쏟아놓고도 강씨는 분이 풀리지 않아 씩씩거렸다. 강씨 부인은 삼 일 전에 거짓말로 쫓아버린 딸네에게 미안한 마음은 있었지만, 강씨가 괘씸하여 어떤 말로 싸울지를 한참 고심한 끝에 한 마디를 쏘아붙여, 제대로 싸움이 되었다.

  “그렇게 잘난 사람이 인천 사촌 것들한테 사기당하요? 젊을 때는 마누라도 내팽개치고 자기 식구들만 챙기더니, 꼴좋네.”

  심상치 않은 언쟁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지만, 해결하지 않을 수도 없어서 딸은 달리는 차 안에서 뒤돌아서 무슨 일이냐고 강씨 부인에게 물었고, 인천의 사촌 오종이가 강씨의 하나밖에 없는 자산인 산을 용도 변경해 준다고 묘지 이장 동의서와 신분증을 모두 가져가서 묘지만 이장하고 팔아버려, 산은 노른자가 빠진 쭉쟁이 신세가 되었다는 설명을 강씨 부인은 덧붙였다. 묘도 산도 다 강씨 소유라고 어릴 때부터 들은 말과는 다른 말이라 딸은 어리둥절했다.

그래도 기회다 싶어, 강씨는 딸에게 부탁했다.

  “니가 인천 오종이 찾아서 빨리 용도 변경해 갖고 오라 해라. 돈을 쥐고 있으면 희종이는 온다. 그래야 희종이 결혼시킬 수 있다. 내 말 알아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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