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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재 Jun 25. 2024

나의 소중한 부분 부분들

「인사이드 아웃 2」 감상과 리뷰




  언제나 픽사의 최대 장점은 신선한 소재이다. 특히나 추상적인 것을 표현해내는 능력이 굉장하다. 그런 면에서 전작인 「인사이드 아웃1」은 ‘의인화된 감정들’이라는, 굉장히 픽사적인 무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였고 관객들에게 어필하는데 대성공했다. 「인사이드 아웃 2」는 그런 작품의 후속작인만큼 큰 기대도 되었고 기대만큼 염려가 되기도 했다. 극장에서 보고 온 바로는 전작만큼 대단하진 않았지만 좋은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역시 픽사는 웬만하면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아래 내용은 영화에 대한 감상과 해석을 담고 있다. 중대한 스포일러들이 있으므로, 영화를 관람할 생각이라면 감상 후에 읽는 것이 좋겠다.





1. 사춘기라는 난장판


  누구에게나 사춘기는 흑역사로 통한다. 사춘기는 아이도 어른도 아닌 정체성이 모호한 시기이다. 몸담은 세계가 점점 확장되면서 혼란스럽고 앞으로 하는 활동들이 미래를 결정짓는다는 부담감이 짓누르지만, 여전히 다방면에 미숙하며 유치한 것들이 그립고 마음에 위안을 준다. 하키 캠프에 온 라일리는 친구들을 대하는 것과 선배가 될 ‘파이어 호크’ 팀원들을 대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 기본적이고 다소 단순한 다섯 감정인 기쁨, 슬픔, 버럭, 소심, 까칠들로썬 더 복잡한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 버겁다. 더 섬세한 감정 다섯 감정 불안, 부럽, 따분, 당황, 추억의 등장은 필요에 의한 것이다.


  구 감정들의 중심이 기쁨이라면, 새로운 감정들의 중심은 불안이다. 기쁨과 감정이 각각 라일리의 유년기와 사춘기의 중심 감정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하키 캠프는 라일리에게 있어 가치들이 대립하는 공간을 구성한다. 라일리는 아끼는 사람들이지만 곧 다른 학교로 진학할 친구들과 앞으로 학교생활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선배들, 둘 중 한 쪽을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에 지속적으로 놓인다. 어린 라일리라면 매우 쉽게 선택을 내릴 것이다. 그동안 기쁨을 함께해온 친구들을 따라가면 된다. 또한 그것은 라일리가 키워온 자아인 '나는 좋은 사람이다' 와도 맞아 떨어진다. 기쁨의 입장은 라일리의 과거를 대변한다.

  하지만 라일리의 고교 생활과 하키선수로서의 장래를 생각하면 가장 뛰어난 ‘파이어호크’ 팀의 선배들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히 합리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라일리는 외톨이로 학교를 다니거나 원하는 직업을 가지지 못할지도 모른다. 불안의 입장은 라일리의 미래를 대변한다. 친구들과 선배들 사이에서의 양자택일, 기쁨과 불안의 대립은 과거와 미래, 감성과 이성, 이상과 현실의 대립인 것이다.


  불안은 사춘기의 라일리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와 맞지 않는 기존의 자아를 뽑아 기억의 저편으로 버리고, 의견이 맞지 않는 기쁨과 기존 감정들을 마음의 빔밀들을 가두는 곳으로 보낸다. 그 결과 단순하고 원초적인 감정들이 결여된, 섬세하지만 예민한 감정들만 남은 라일리는 신경질적이고 지나친 모습들을 보인다. 친구들을 매몰차게 떨치고 자신을 선배들에게 맞추려고 애쓴다. 불안의 지시로 나쁜 상황에 대한 상상이 계속 만들어지는 탓에  밤에 잠을 청하지 못하며 사무실에 무단 침입해 코치의 개인적인 노트를 훔쳐보기까지 한다. 연습경기를 앞두고 불안이는 억지로 자아를 키워내지만, 그 결과는 ‘난 부족해’라는 부정적인 자아였다. 라일리는 부정적인 자아와 감정 제어판을 쥔 불안의 영향으로 연습경기에서 득점하는 것에 과도하게 집착해 선배의 공을 뺏고 친구를 다치게 만든다. 그 결과 2분간 퇴장을 당하고, 불안감이 억누른 나머지 공황에 빠진다.





2. 불안에 대하여


  불안은 과연 빌런일까? 물론 영화 내에서 기능적으로 불안이는 빌런으로써 활동한다. 그러나 의미상으로는 절대 그렇지 않다. 전작의 주제는 ‘불필요한 감정은 없다’ 였고, 이는 사춘기의 감정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불안은 사춘기를 이끌어가는 핵심 감정이다. 물론 기쁨이가 계속 감정 제어판을 잡아 기쁨만 추구하며 살면 정말 좋겠지만 그게 궁극적으로 라일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까? ‘행복’과 ‘기쁨’은 엄연히 다르다. 기쁨은 지금 현재의 감정이지만 행복은 계속 추구해 나가야 하는 궁극적인 목표이다. 앞으로의 행복을 위해서 눈앞의 기쁨을 내려놓아야 하는 때도 있다. 불안은 언제나 계획을 세운다. 우리는 불안이 있기에 미래를 그릴 수 있다. 영화 초반에 코치로부터 집중력과 진지함의 부재를 지적받는 것처럼, 기쁨이가 라일리를 계속 주도했다면 일찌감치 코치에게 찍히고 캠프 친구들로부터 험담을 들었을 것이다.

  사춘기는 자주 기쁨을 내려놓게 되는 시기이다. 서로 자아가 발달하며 친구들과 의견이 불일치하는 경우가 잦아진다. 나의 행복과 타인의 행복은 같은 방향을 가리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몸소 경험한다. 스스로의 내면에서 당장의 기쁨과 앞으로의 행복이 서로 갈라져 싸우는 순간들도 있다. (우리는 지금도 그렇다. 야식을 먹을까 말까?) 불안은 그런 위기들을 감지하도록 도와준다. 지금은 괜찮을지 몰라도 앞으로 나의 행복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을지도 모르는 순간을, 불안은 알아채고 적절하게 행동하도록 도와준다. 불안과 함께 도착한 다른 감정들도 마찬가지이다. 부럽은 불안과 행동을 자주 같이하며 라일리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따분은 영화 에필로그의 장면처럼 굳이 크게 반응할 필요가 없는 상황을 넘기도록 도와준다. 당황은 행동은 적지만 필요할 때 가장 큰 힘을 발휘하며, 불안이가 상황을 몰고갈 때 슬픔이를 도와주는 등 일종의 양심처럼 활동한다. 무언가 닥쳤을 때 먼저 행동하는 건 당황이다.



  물론 영화에서 불안이의 행동은 지나쳤으며 상황을 극한으로 몰고갔다. 아무리 라일리의 미래를 위한다고 하더라도 라일리라는 주체가 바라는 것이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미숙한 것이 당연하다. 라일리가 사춘기가 처음인 것처럼 불안이 감정을 주도해본 것도 처음이다. 사실 불안이 영화에서 밟는 절차는 기쁨이 전작에서 경험한 것과 동일하다. ‘이사’라는 중대사로 인해 라일리의 행복했던 과거 순간들이 위협을 받을 때 기쁨이는 독단적으로 행동했고 큰 위험을 초래했다. 불안이는 하키 캠프라는, 라일리의 미래를 행복하게 할 가능성이 서린 기회를 두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며 위험을 초래했다. 교우관계와 앞으로의 장래가 모두 달린 연습경기 동안 불안은 폭주한다. 다른 감정들이 나서보지만 라일리를 지배하는 것은 극도의 불안감이다. 치닫는 감정 속에 통제할 수 없게 되었음을 스스로도 알지만, 불안은 그것마저 잃어버릴까봐 제어판을 놓을 수가 없다. 그런 불안을 막을 수 있는 똑같은 실수를 통해 성장한 바 있는 기쁨이다. 기쁨은 불안을 가장 잘 이해한다. 지나친 불안감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긍정, 즉 기쁨이다. 반대로 대책 없는 기쁨을 잘 이끌 수 있는 것은 계획을 세울 줄 아는 불안이다. 진정 라일리를 위하는 건 결국 누가 의사결정을 하느냐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라일리가 어떤 사람이 될 지는 너가 정하는 게 아냐. 불안아... 이제 라일리를 놔줘."

  영화 내내 불안의 행동에 다소 답답함을 느끼던 관객들도 슬픔이의 조언을 들은 불안의 눈물에 큰 감명을 받았을 것이다. 모든 감정들은 분명 주체를 위해 존재하고 주체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특정 감정을 앞세워 일을 망치거나 망신을 당한 경험을 모두가 갖고 있다. 스스로를 자책할 일이 아니다. 성장의 과정에 있는 진통일 뿐이다.

  1편의 성장 주체가 기쁨인 것처럼 2편의 성장 주체는 불안이고, 그들의 성장은 곧 라일리의 성장으로 이어진다. 기쁨의 말처럼, 라일리가 어떤 사람이 될지는 하나의 감정만 내세워 정할 수 없다는 것을 불안도 깨닫는다.





3. 스스로의 인사이드와 아웃을 긍정하는 법


  우리는 사춘기를 겪으며 얼마나 불안에 떨었는가? 사춘기가 그토록 불안정한 시기인 것은 자아가 위협받는 때이기 때문이다. 전에 겪어본 적 없는 상황 속에서 기존에 쌓아온 자아는 크게 흔들린다. 심지어 기존 자아는 새로운 환경에 아무런 쓸모가 없기도 하다. 단적으로 1편 시점부터 영화 시작까지 라일리는 ‘나는 좋은 사람이다’라는 자아만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하키 캠프라는 고작 3일의 기간 동안에는 두 번이나 자아가 바뀐다. 그럴 때마다 라일리는 큰 혼동을 겪는다. 


  사실 내가 ’인사이드 아웃 시리즈’를 보며 1편부터 했던 생각은, 감정들이 꼭 라일리라는 주체의 ‘가해자’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감정들이 뭔가 잘못된 판단을 내릴 때마다 라일리는 상황에 적절하지 못한 대응을 보이며, 그 탓에 1편에서는 엄마의 지갑을 훔치고 가출 직전까지 갔다. 실제로 우리는 순간 차오른 감정에 휘둘려 그릇된 결정을 내리거나, 원치 않게 고개를 쳐든 감정에 난처해 하곤 한다. 억울한 상황에 논리적으로 말하고 싶지만 자꾸 울음이 나와 부끄럽게도 말을 더듬은 경험처럼 말이다. 그리고 나의 감정들은 라일리처럼 마구 날뛰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게 보면 감정들이 감정의 주인에게 종종 가해를 하곤 한다는 표현은 꽤 적절해 보인다.

  그런 상황에서 라일리가 일관된 반응을 보이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자아이다. 자아는 주체가 판단을 내릴 때 기댈 수 있는 나무이며, 그 나무는 주체가 겪어온 기억과 감정들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것들을 통해 만들어진 신념이 자아를 구성한다. 기억의 샘에서 자아가 자라나는 것과 그것이 나무 형상을 취하는 것, 그리고 기존의 자아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마다 자아가 뽑혀 나가는 것은 탁월한 추상적 개념의 시각화라고 생각한다. 



  어떤 큰 사건이나 환경 변화 앞에 자아는 뽑혀 나간다. 어쩌면 기존 자아의 상실은 특별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세상엔 무엇 하나 새롭지 않은 것이 없다. 하나의 단단하고 불편한 지침으로서 자아를 세운다면 낯선 변화마다 자아는 버티지 못하고 뽑혀 나갈 것이다. 그때마다 새로운 자아를 세우더라도 임시방편일 뿐이며 주체를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오히려 자아는 상황에 따라 변하는 형상을 갖추어야 한다. 인간은 원래 입체적이고 복합적이며, 라일리에겐 그런 다양성에 대한 긍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기쁨은 깨닫는다. 사춘기를 보내는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선함이나 효율 등을 추구하는 등) 절대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딱딱한 자아가 아니라, 있는 스스로를 긍정해줄 수 있는 유동적인 자아이다. '나는 좋은 사람이다'라는 자아도 도움이 되지 않자, 기쁨은 기억 샘에 쏟아진 (한때 기억 저편으로 버렸던) 부끄러운 실수나 실패의 기억들도 자아 형성에 포함되도록 한다. 새롭게 형성된 자아는 라일리의 모든 기억을 토대로 형성된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자아는 라일리가 떠올리는 기억과 생각들을 더 이상 검열하거나 가치 판단하지 않는다. 후회와 반성도 주체에게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함께 깨달음을 얻은 감정들은 라일리의 자아가 스스로 긍정할 수 있도록 그것을 다 함께 껴안아준다.

  그리고 변화가 일어난다. 다양한 신념과 경험과 기억과 감정들을 긍정하는 자아 아래, 라일리가 감정 제어판으로 기쁨을 부르고 기쁨은 이에 화답하여 라일리를 라일리가 바라는 대로 이끈다. 이로써 감정들은 일종의 가해자가 아니라 더 완전한 라일리의 조력자가 될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 감정들이 미숙하고 잘못된 판단을 내릴 때마다 라일리는 스스로 통제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아왔겠지만, 자아와 감정이 서로 화합하며 라일리는 성숙하게 감정을 이끌어내게 되고 사춘기를 지나 어른이 된다.


  라일리가 겪은 성장 단계들을 성인이 되어서도, 심지어 늙어 죽을 때까지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3일간 큰 혼란을 겪었지만, 분명 라일리는 사춘기를 무사히 넘기고 감정적으로 안정된 성숙한 어른이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실 라일리의 감정들은 엉망진창 사고뭉치들처럼 보이지만 엄청나게 유능한 게 아닐까…?





4. 세상의 크고 작은 라일리들을 위한 이야기


  결론적으로 「인사이드 아웃 2」는 크게 흠잡을 곳 없는 좋은 영화였다. 사춘기라는 테마를 잘 다루었고 교훈도 훌륭했다. 1편의 주제가 슬픔에 대한 긍정이라면, 2편의 주제는 스스로를 긍정하는 법에 대한 것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꼭 보여주어야 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어른들로부터 지나치게 많은 것을 요구 받는 우리 교육과 사회 환경에서, 한국의 학생들이야말로 전세계에서 스스로를 가장 미워하는 존재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K-불안이와 부럽이, 따분이들은 감정 제어판을 너무 오래 잡고 있다. 다른 감정들에게 차례를 넘길 필요가 있다. 우린 스스로를 긍정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물론 아쉬운 부분들도 있었다. 새 캐릭터들은 불안을 제외하곤 존재감이 옅었던 것 같고 수가 늘어난 것에 비해 전작의 ‘빙봉’처럼 엄청난 감명을 남기는 캐릭터는 없었다. (이름 듣자마자 ‘놀고 싶은 친구들 모여라 빙봉 빙봉’이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되는 사람들 분명히 있을 것이다…!) 플롯에서 어떤 문제 발생과 해결 방식들은 다소 작위적이었다. 예로 비아냥 협곡의 탄생은 매우 파괴적으로 묘사된다는 것에 비해 빌드업이 전혀 없어서 설득력이 떨어졌다. 파우치에서 꺼낸 다이너마이트들을 폭발시켜 쏟아져내리는 기억 구슬들을 타고 본부로 돌아오는 것은, 영화 전체에서 다섯 감정들이 본부로 돌아가기 위해 그토록 분투한 것을 생각해보면 작위적이고 편리한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스토리가 전체적으로 새로운 것은 없고 단순했으며, 내면 세계를 묘사하는 방식이 전작보다는 치밀함이 조금 떨어졌다. (사실 이건 전작이 너무 뛰어나서 비교되는 것이긴 하다.) 이야기가 바쁘게 진행되고 늘어난 인물과 정비례하여 대사량도 많다보니 호흡할 틈이 많지 않기도 하다.





  모아보니 단점이 꽤 많은 것 같지만…. 나는 영화마다 방식과 방법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인사이드 아웃 2」는 말하자면 기본을 벗어나지 않는 대신 의외성도 없는 이야기인데, 오히려 그것이 이 영화가 말하는 방식과 맞아떨어진다. 영화가 꼭 플롯을 배배 꼬고 반전을 심을 필요는 없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뛰어난 건 주제의식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이야기였다. 「인사이드 아웃 2」가 작품성을 취하는 대신 접근성과 친근함을 떨어뜨려야 하는 영화일까? 난 아니라고 본다. 


  조금 아쉬워도 결국 픽사는 픽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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