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기억 속의 여름에, 더워서 힘들었다거나 여름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일들은 기억나지 않는다.
개울에서 친구들과 풍덩풍덩 놀던 일, 방학이면 사촌들을 모두 불러 모아 엄마가 대장처럼 아이들을 몰고 수영장에 갔던 일, 밤이면 할머니가 계시는 안방에 텐트 문 내리듯 네 모서리로 올려두었던 모기장을 내리면 촘촘하고 부드러운 모기장을 재빨리 올렸다 내리며 드나들던 일, 서울에 있는 친척집에서 여름밤이 이리도 덥다는 것을 처음 느꼈던 기억 등이 생각난다.
그러나 여름을 좋아한 적은 없었다. 늘 어릴 적 좋아하는 계절은 펑펑 눈이 오는 겨울이었다.
그리고 사춘기를 지나며 좋아하는 계절은 선선한 바람이 기분 좋은 가을이다.
그럼에도 여름에 큰 점수를 줄 수밖에 없는
여름의 백미를 뽑으라고 하면 단연코 구름이다!
어릴 적 기억 속의 고향 집 정겨운 우리 방은 부모님과 동생들이 모두 함께 자던 어린 내 눈에는 큰 방이었다. 한쪽 벽 위에 크게 나있던 창은 나무틀에 두꺼운 비닐이 덮여있었는데 왜인지 모르겠지만 여름에 그 창문을 떼어 놓았을 때가 있었다.
밖에서 놀다가 땀난 등을 방바닥에 대고 쩍쩍 붙는 방바닥에 시원하다고 누워 뻥 뚫린 창을 보고 있노라면 내 눈에는 온통 하늘이 들어왔다. 각이 부드럽게 만들어진 틀 안에 바람이 많이 불었는지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지나는 구름을 보았던 장면이 생각난다.
요즘은 디지털액자가 있어 액자 안에 여러 장의 사진이 돌아가며 나오기도 하지만 그때의 천연 액자는 늘 새로운 바탕의 하늘에 다양한 구름을 선사해 주었다.
지금에서야 내 안의 그 모습이 선한 것이지 그때는 그것이 좋다는 생각은 못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문득문득 하늘의 구름을 자주 보고 감탄하는 것은 어릴 적부터의 익숙한 습관인듯하다. 양떼구름을 보면 이상하게 수제비가 먹고 싶고, 큼지막하게 둥실둥실 떠 있는 구름을 보며 그 위에서 친구들과 방방 뛰고픈 마음과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거나 마치 기구처럼 저 위에 집을 지어 사는 동심 가득한 공상의 나래를 펴곤 했던 기억이 아련한 것을 보면 말이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기후일기를 같이 쓴 적이 있었다. 매일의 날씨를 기록하고 여름에 우리 주변을 둘러싼 소나기, 태풍, 햇살 등 여러 가지 기후를 좀 더 자세히 알아보며 변화무쌍한 구름도 더 눈여겨보고 종류와 이유도 찾아보았던 기억에 기록으로 남은 기후일기를 다시 찾아보니 별 걸 다했네 싶으면서도 아이들과의 추억이 손에 잡히듯 떠올라 잘했다며 스스로를 칭찬하기도 했다.
여름에 눈에 띄는 저 구름에는 적운이 많은데 흔히 부르는 뭉게구름이다.
차를 타고 가다 보면 광활히 펼쳐진 논 위로, 강 위로 둥실둥실 떠 있는 뭉게구름이 정말 장관이다.
아스팔트의 뜨거운 기운에도 하늘을 보면 미소가 지어지는 건
여름의 백미인 구름의 위로가 아닐까 싶다.
기후일기 중에 있는 아이와 나의 시: 여름날의 변화무쌍한 날씨를 보며 '변덕장이 친구'라는 같은 제목으로 썼던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