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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가 만 것들의 역사

마의 4개월을 넘어서

by 전수빈

내 아버지는 뭔가에 꽂히면 한동안 그것만 집요하게 파고드는 성질을 갖고 있는데, 그 종류도 다양할 뿐더러 단기적인 폭발력도 굉장한 수준이다. 대상을 먹을 것으로 한정했을 때 기억나는 것만 해도 대략 냉동 볶음밥, 냉동 만두, 감자탕, 바나나, 두유 등이다. 이는 단순히 선호하는 것을 넘어서서 집착에 가까운 모습인데, 어느 날 냉장고를 열어 보면 냉동실의 거의 모든 공간을 냉동 만두가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마주하게 되는 식이다. 아버지의 이런 면모엔 분명 어딘가 기이한 데가 있다.


우연히 거실에서 홈쇼핑 채널을 시청 중인 아버지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을 때, 나는 불길한 기운을 느낀다. 아버지는 표정 변화가 그리 선명하지 않은 사람이지만, 어째선지 나는 그의 눈에서 ‘저걸 갖겠다’는 의지를 또렷하게 읽을 수 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 냉장고를 열어 보면, 아니나 다를까 홈쇼핑 채널에서 아버지를 사로잡았던 그 제품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아버지가 음식이 아닌 다른 것에 꽂혔을 때 발생한다. 예를 들면 거실에 놓을 탁자가 필요하거나 화장실이 낡아 수리해야 할 때가 그렇다. 아버지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만들거나 고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 보편적인 가정에서라면 가구를 주문하거나 사람을 불러 했을 일을 직접 하겠다고 나서는 때가 많다. 그렇게 아버지가 본격적으로 행동에 나설 기미가 보일 때마다 우리 가족은 체념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아버지 또 시작했다.”

거실에서 ‘쿵, 쿵’ 하는 소리가 들려오면 아버지의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나무판자를 갈라서 나온 톱밥이 거실을 떠다니고, 니스와 페인트, 납땜 냄새가 온 집안에 퍼져도 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벽과 바닥을 울리는 망치와 드릴 소음 때문에 인터폰이 울려도, 경비실이나 이웃에게 죄송하다 말하며 고개 숙이는 건 대부분 아버지를 제외한 가족들의 몫이 되곤 한다. 결국 참다못한 어머니와 동생이 한마디 할 때까지, 아버지의 작업은 멈추는 법이 없다. 그 징글징글한 일이 반복될 때면 진즉 이 집을 박차고 나가 독립하지 못한 내 처지를 그저 원망할 뿐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 역시 그런 아버지를 닮아 뭔가에 꽂히면 질릴 때까지 그것에 몰두하는 면모가 있다. 들깨 칼국수, 콩 스테이크, 감자튀김, 쌀 약과, 얼린 망고, 시리얼 등 먹거리에 차례로 중독된 것이 그 예다. 한창 진행 중이던 작업이 잘 풀리지 않거나 반대로 너무 잘 풀릴 때면 종종 식사도 거르고 일을 계속하기도 한다. 나는 문득 ‘이거 한번 해보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들 때면 잠깐의 고민 후 곧바로 실행에 옮기는 편이다. 무언가에 몰두하는 성향이 음식이나 일을 넘어서 경험을 향할 때면, 내 삶에 깨나 도전적인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늘 어머니가 시킨 것만 배워 왔던 내가 자발적으로 뭔가를 배우고 싶다고 말한 건 통기타가 처음이었다. 밴드 음악을 좋아했던 만큼 남몰래 락스타를 꿈꿔 온 청소년이 기타를 손에 쥐게 되는 건 매우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코드를 잡을 때마다 손가락 끝마디가 쓰리고, 그 고통이 고스란히 굳은살로 박히기까지의 시간. 나는 딱 그 시간만큼만 기타를 사랑했던 것 같다.

만인의 통기타 입문곡 ‘로망스’를 그럴듯하게 연주할 때쯤에 한 번, 보사노바 리듬을 능숙하게 따라할 즈음에 한 번, 장필순의 ‘나의 외로움이 너를 부를 때’를 완곡할 무렵에 또 한 번 나는 통기타를 내려놓았다. 기타를 가르쳐 주는 선생님이 있든, 유튜브를 보며 독학을 하든 도무지 흥미가 지속되지 않았다. 매번 다시 시작할 때마다 ‘이번에야말로 끝을 보고 말겠다’고 다짐했지만, 결국 그때뿐이었다.


스물일곱 살에는 돌연 킥복싱을 하고 싶어졌다. 헬스장이나 태권도장처럼 근육질 인간들이 한데 모여 땀 흘리는 공간은 어딘가 꺼림칙하지만, 복싱이나 킥복싱에는 전부터 <록키>와 같은 영화로부터 비롯되었을 로망을 갖고 있었다. 처음 체육관에 발을 들이는 순간 훅 끼쳐 오는 땀내와 후덥지근한 공기에 잠시 발길을 돌리고 싶어졌지만, 눈 질끈 감고 등록을 마치고 나서부터는 체육관에 가는 게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여느 영화 속 장면이나 근거 없는 소문처럼 노령의 전 챔피언 출신 관장님이 기초 체력부터 길러야 한다고 호령하며 한 달 내내 줄넘기만 시키는 일도 없었다. 샌드백을 실컷 두들겨 땀을 빼고, 더 이상 정강이가 아프지 않을 때까지 미들 킥을 날리고, 스파링 직후 곤죽이 된 채 바닥에 드러누워 숨을 고르고 나면 변화된 신체에서 엄청난 자신감이 솟아났다.

체육관에 다닌 지 두 달쯤 됐을 무렵부터는 내 곁을 지나치는 모든 이들이 잠재적인 대결 상대로 보였을 정도다.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때면 같이 탄 남성을 힐끗거리며 ‘이 사람이 갑자기 나를 공격한다면...’ 하고 정신 나간 생각을 하며 상상 속의 대전을 벌였다.

킥복싱에 슬슬 흥미가 떨어지기 시작한 건 체육관에 다닌 지 4개월 차가 됐을 무렵이었다. 가을에 접어들며 마침 회사 일이 바빠질 시기였기에, 수업 받을 시간을 내기 어려울 것 같다는 핑계로 그만두었다. 적당한 타이밍에 둘러댈 핑계가 생겼기에 빈약한 의지력에 대한 죄책감은 크게 느끼지 않아도 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 뒤엔 케이팝 댄스에 빠져들었다. 케이팝 댄스를 배우는 것 또한 킥복싱처럼 그 시작이 어려웠다. 나보다 훨씬 어린 여성 수강생들이 대다수인 공간에서 30대 초반의 남성 수강생인 나는 무척이나 이질적인 존재였다. 그 속에 끼어 있다는 것 자체도 그렇지만, 뚝딱거리는 내 모습이 적나라하게 비치는 연습실 거울을 마주하는 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끔찍한 일이었다. 도무지 그 꼴을 실시간으로 목격할 수가 없어서 춤을 출 때면 늘 안경을 벗었다. 거울 속 내 몸짓이 흐릿한 꼴뚜기의 형상쯤으로 보일 때에야 비로소 수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안무를 모두 외워 출 수 있는 곡이 하나씩 늘어 갈 때마다 뿌듯했다. 마음만 먹으면 회식이나 행사 때 보여줄 수 있는 비장의 무기를 장착한 기분이었다. 덕분에 최신 가요에 어두운 내가 청하, 선미, 김세정, 펜타곤, 에스파, 있지 등의 신곡을 익혔으니 콘텐츠 창작자로서도 득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여름이 다가오자 점차 학원에 가는 게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오후 7시에 시작되는 수업에 늦지 않기 위해서는 퇴근 직후 회사 건물을 빠져나와 저녁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이동해야 했는데, 수업을 받은 지 몇 달이 지나고 나니 이를 감수할 만큼의 열정을 유지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이번에도 마의 4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학원을 그만두었다.

이후에도 영어회화, 요가, 연기 등 그때그때 흥미를 끌거나 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것들이 미련으로 남아 맴돌 때면 그 순간의 열정을 퍼붓고 몰두하곤 했다. 언젠가 그 분야만큼은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그러나 이 또한 오래 가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아버지와 나를 비교한 것 자체가 아버지에게 큰 실례인 것 같다. 비록 가족들에게 조금 불편함을 줬을지언정, 아버지는 적어도 나처럼 한번 꽂혀서 몰두하기 시작한 일을 아무런 소득 없이 그만둔 적은 없으니까. 아버지가 오래전 만든 탁자는 지금도 튼튼하게 거실 한가운데를 지키고 있고, 꼬박 한 달이 지나 리모델링을 마친 화장실은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으로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비록 이 화장실이 과연 우리 집에 어울리는 공간으로 디자인 되었는가 하는 의문이 남긴 했지만. 반면에 그동안 내가 배워 온 것들은 내 방 한구석에 처박혀 있는 통기타를 제외하고는 그 무엇도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킥복싱도, 케이팝 댄스도, 요가도 모두 깨끗하게 기억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마치 단 한 순간도 존재한 적이 없는 것처럼.

하지만 적어도 그것들을 ‘해봤다’는 의의만큼은 남았다. ‘어차피 금방 질려서 그만둘 거...’라는 생각에 시작도 해 보지 않았다면, ‘한번 해 볼까?’ 혹은 ‘한번 해 볼 걸’ 하고 속삭이는 망설임과 미련이 남은 생을 끈질기게 쫓아다닐 것이다.


만일 다음번에 또 꽂히는 게 생긴다면, 그때는 아버지가 만든 탁자처럼 객관적인 지표를 남길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도 이만큼은 해 봤다’고 스스로에게 자랑할 수 있는 무언가를.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단단하고 분명한 그 무언가가, 마의 4개월을 넘어섰을 때 비로소 내게 다가와 줄 것만 같다.


+ 지금은 드럼을 배우고 있고, 마의 4개월을 막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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