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의 쇼핑 철학
무한비교 vs. 대충대충
남편은 쇼핑을 좋아한다.
필요한 물건이 생기면 몇 날 며칠을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고 구매 후기글을 찾아본다. 그리고 구매하고 싶은 아이템을 찾으면 가격비교를 위해 각종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심사숙고해서 주문 버튼을 누르면 완료.
이렇게 물건 하나를 사는데 빠르면 일주일에서 1년도 걸린다. 1년이 걸리는 이유는 아이템이 세일을 많이 하는 시기가 정해져 있는 경우(가전제품)이거나 나의 동의를 구해야만 살 수 있는 경우(가구)이다. 이렇게 고민해서 어렵게 산 물건인지라, 배송이 되면 꼼꼼히 하자 유무를 확인한다. 혹시 상품에 문제가 있으면 반품, 교환도 마다하지 않는 편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남편이 정말 대단히 꼼꼼하고 합리적으로 쇼핑을 해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 같으면 대충 찾아보고 가장 빨리 배송해 주는 곳에서 그냥 주문해서 끝일텐데. 반품이나 교환도 깜박해서 못하거나 귀찮아서 안 하는 편이다. 대충 편리한 쇼핑을 하자는 나와 합리적인 쇼핑을 하는 남편은 쇼핑 스타일이 완전 정반대.
그래서 우린 쇼핑을 같이 하는 건 지양한다. 같이 하면 둘 다 화가 나기 때문!
결혼 전부터 쇼핑을 같이 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둘이서 상견례에서 입을 옷을 사러 백화점에 갔었다. 몇 군데 둘러보고 맘에 드는 옷을 발견하자 난 얼른 결제하고 가자고 했다. 하지만 남편은 그럼 마지막으로 한번 다시 매장을 돌아보면서 내가 픽한 물건보다 더 예쁜 옷은 없는지 살펴보자고 했다. '방금 살펴봤는데?' 다시 돌아보자는 남편의 말이 납득이 되지 않았지만 뭐, 예쁜 옷을 골라주려는 좋은 마음이려니 싶어 다시 돌아보기로 했다.
다시 매장을 돌아보며 남편은 괜찮아 보이는 다른 옷들을 입어보라고 권했다. 내가 고른 옷이 정말 제일 잘 어울리는 옷인지 비교해 보자며. 그렇게 몇 번이나 옷을 입고 벗고 했더니 나중엔 기억도 나지 않고 힘만 들었다. 이제 그만! 그냥 적당한 거 사서 가도 괜찮다고 가자고 했다. 그런데도 마지막으로 아까 처음에 맘에 들었던 옷을 입어보자는 남편. 정말 화낼 힘도 없어서 눈물이 핑 돌았다. 결국 백화점 쇼핑은 눈물바람으로 끝이 났고, 처음 골랐던 그 옷으로 그냥 사서 돌아왔다.
그 후로는 남편이 쇼핑하러 갈 때는 웬만하면 따라가지 않는다. 같이 쇼핑몰에 가도 나는 애들이랑 따로 돌아다닌다. 그렇게 해야 남편이 마음껏 구경하고 비교해서 만족스러운 물건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물건이나 애들 물건이 필요할 때는 조용히 인터넷으로 구매한다.
고가의 물건을 구입할 때는 대략적인 후보군을 정해서 남편에게 최종 결정을 맡긴다. 그러면 신이 나서 최저가를 검색하고 비슷한 물건을 찾아보고, 매장에도 가서 흥정도 하면서 본인의 협상 능력을 맘껏 뽐낸다.
정말 시간과 노력이 많이 걸리는 피곤한 작업이지만 남편은 그것을 해내고, 나는 덕분에 좋은 물건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내가 원하는 기일까지 물건 구매가 완료되지 않는다는 것이 가끔 큰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대만족)
친정식구들도 나처럼 대충대충 쇼핑을 하기 때문에 가끔 같이 물건을 살 일이 있을 땐 남편을 불편해했다. ' 0서방 그냥 좀 사자.'라고 속으로 되뇌면서. 그런데 10년쯤 지나자 이젠 친정식구들이 먼저 남편에게 쇼핑 조언을 구한다. "형부가 사주면 워낙 좋은 가격에 살 수 있으니까." , "난 기계를 잘 모르니 0서방이 좀 골라줘."
덕분에 친정에서 남편의 위치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우리는 갖지 못한 능력을 가졌기에 그 가치가 더 높게 평가되는 것 같다. 너무 달라서 힘들고 싫었던 것들이 살아보니 달라서 좋은 것들이 더 많다.
나와 정반대인 사람에게 끌리는 이유가 어쩌면 내 유전자가 본능적으로 내가 가지지 못한 능력을 가진 유전자를 알아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