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출근길엔 아메리카노가 항상 손에 들려있었고,피곤함이 몰려와 휴식이 필요한 오후에는라떼를마셨으며, 비 오는 날에는조용한 카페에서 빗소리와 함께 따듯한 아메리카노를 즐겨 마셨다. 항상 커피가 옆에 있었던 이유는 아메리카노를 처음 마시던 날 '어른의 향'이라 말하는친구모습에 반했었고,'어른의 향기'라는 문장이 마음에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커피의 향이 진하면 진할수록 온몸 가득 어른의 향과 성숙함이 입혀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찾아온, '불면증'으로 인해,커피를 멀리해야 한다는 처방을 받았다. 출근길 아메리카노를 마시지 못한다는 게 너무나 큰 상실감이 몰려왔다. 커피를 마셔도 잠 잘 자는 사람들도 많던데, 그럼 약도 커피도 마시지 말아 볼까?하는 생각으로 일주일을 잠을 못 잔 적도 있다.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게 속상한 것보다 불면증을 앓게 된 나 자신을 인정하지 못했던 게 더 컸다. 처음에는 상실감으로 힘들었고, 나 자신을 원망하기만 했다. '불면증'의 원인을 온전히 자신에게서만 찾았고, 뒤이어 오는 자책과 원망도 모두 다 나의 탓이었다. 생각이 많아서 잠을 못 자는 거라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그렇게 자책과 원망을 반복하던 중 티브이에 나온 여자 연예인의 한마디에 마음이 아려왔다.
불면증으로 인해 수면제 없이는 잠을 못 잤었죠. 근데, 남편과 결혼하고 난 후에는 불면증이 사라졌어요.
행복하게 웃으며 다정한 남편의 눈을 마주 보며 말하는 여자의 눈에서는 '행복'과 '사랑'이 그리고 '안정감'이 느껴졌다. 여자의 말을 듣고 마음이 아렸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안정의 감정을느껴본 적 없어서 나는 공감이 아닌, 깊은 '공허함'을 느껴버리게 됐다. 그 마음은 점점 커질수록 알약의 개수는 늘어갔고,나는 점점 어둠의 시간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어둠의 시간을 벗어나고 싶었고,다시 어른의 향기를 느끼고 싶었다.
불면증을 이겨내기 위해, 어른의 향을 다시 만끽하기 위해서 '불면증'에 대해그리고 불면증을 앓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보게 됐다. 그러던 어느날 잘 정리된 문장 하나를 만났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불면증, 우울증, 공황장애'는 질병이 아닙니다. 마음이 나에게 보내는 신호예요. 잘 들여다보면 실타래는 풀리게 됩니다. 할 수 있어요. 당신을 응원하겠습니다.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잘 들어봐 주세요.
'마음이 보내는 신호'라는 문장을 시작으로 나의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나와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하나씩 해봤다. 명상을 시작으로 운동 그리고 감정일기 쓰기 등의 여러 가지 방법을 해오던 중 제일 나에게 맞는 방법 하나를 찾게 됐다. 바로 '감정일기'쓰기. 일기를 통해 하루에도 여러 번 피어올라오는 감정들이 나에게 오래 머물다 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밥이 소화되는 시간이 평균적으로 8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처럼. 나에게도 감정이 찾아오면 소화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남들과는 다른 감정의 소화방식을 가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질수록, '평온함'과 '안정감'이 조금씩 내 곁으로 다가왔다. 점차 잠에 들기 위해 애쓰던 시간은 짧아졌고, 깊은 잠에 자는 날도 늘었다. 한 여자 연예인의 진심의 눈빛과 말 한마디를 시작으로 나와 같은 경험이 담긴 문장 하나가 '나'라는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방법을 터득하게 만든 것이다. 처음 1권의 감정일기를 가득 채운 날. 처음으로 돌아가 한 장씩 다시 읽어보았을 때의놀라움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부정의 단어들이 가득했다. 어둠 속에서 헤엄치던 날들에서 어느 날부터인가고래가 수면 위로 올라와 숨을 쉬듯 감정의 숨을 자유롭게 느끼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감정의 일기 효과는 대단했다. 불면증으로 늘어났던 알약들도 점점 줄어들다 못해 약 없이도 잠을 잘 자게만들어 줬고, 무엇보다 나의 감정을 음미하며, 잘 소화해 내는 사람이 된 것이다. 누군가에게도 나의 경험이 그리고 잘 정돈된 문장들이 닿아 감정을 잘 소화시키는 나날을 보내길 바라본다.
그렇게 오늘도 난 어른의 향을 입기 위해, 아메리카노의 향을 느껴본다. 잘 소화된 감정을 옆에 마주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