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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소리 Jun 20. 2024

빙산에 부딪힙니다.

비현실적 낙관주의

"빙산에 부딪힙니다."

오늘날 이 지구라는 '타이타닉 호'에 타고 있는 우리들은 빙산을 향해서 가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선내 방송은 진작부터 여러 차례 경고를 내보내고 있지만 아무도 엔진을 멈추지 않고 있다.

-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녹색평론사, 더글러스 러미스


기후 관련 다큐멘터리나 서적이 다 불편했다. 그토록 좋아하는 <유퀴즈>에 기후 전문가가 나오면 보기가 싫었다. 혼자 힘으로 해결 가능하지 않은 문제라고 판단하여 무력해지기도 했고, '또 그 얘기?' 하면서 무감각해지기도 했다.


유난히 습한 며칠이 이어지다가 갑작스러운 고온 현상에 오감이 곤두선다. 기상과 동시에 大力大力(음성 인식 AI)에게 습관적으로 날씨를 묻는다. 6월인데 35도 가까이 되는 예보에 뒷목이 서늘하다. 지난 1월에 16도를 기록하던 날을 기억한다. 올림픽 선수도 아닌데 매월 신기록을 찍고 있다.


엊그제 뉴스에 요르단 순례길을 떠난 여행객들이 강하게 내리쬐는 햇볕을 양산으로 가리고 50도의 폭염 속에서 순례길을 도는 것을 보았다. 극심한 더위에 사상자도 여럿 발생했다고 한다. 순례길 여행을 가서 순례자가 될 형국이다.


상하이의 여름은 40도가 넘을 때가 다반사다. 도저히 한낮에는 문 밖을 나설 용기가 없다. 누구든 자발적 봉쇄에 들어간다.


여름은 겁나는 계절이 되었다.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집에 선풍기가 두대 이상 있는 집이 드물었다. 온 가족이 선풍기 앞에서 수박을 먹으며 시원한 바람에 행복해하던 그때가 선명하다. 선풍기 살이 하도 성글어서 아이들이 손가락을 넣을까 집집마다 선풍기 망을 씌워두기도 했다. 나는 선풍기 앞에 앉아 '아~~~~'소리 내고 있기를 좋아했다. 휴지같이 부드러운 걸 살 사이에 넣어 날개에 부딪히는 소리를 듣고 있기도 했다.

'선풍기 멍'이다


우리 집은 방 두 칸 아파트인데 선풍기와 에어컨이 거실에는 물론이고 방마다 한 대씩 있다. 서랍장에는 손풍기가 수도 없이 들어있다.

이쯤 되면 생각해 볼 문제다.

내가 더위를 못 참게 된 건지, 아님 자연이 인간을 못 참게 된 건지.


한류에 서생 하는 명태들은 바다가 뜨거워 러시아로 도망갔는데, 더 더워지면 어디로 갈지 걱정스럽다. 우리라는 인간은 5월부터 에어컨을 틀고 있는데, 더 더워지면 어떡할 건지 걱정이다. 

명태나 우리나 매한가지다.

그들이 오랜 시간 인간에게 보내온 언어는 이제 비명이 되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무자비한 만행을 지금 바로 돌이켜봐야 하는 이유다.


생물과 무생물


공원 한구석에 사람들이 새 모이를 바닥에 흩뿌린다. 하얀 깃털로 사뿐히 내려앉는 모습이 함박눈 같아 두 손으로 살며시 보듬어보고 싶다. 우린 서로 바라보고만 있을 뿐인데 너와 나 사이에 생명의 에너지가 충만하다. 치유의 자연이다.


언제부턴가 아파트 정원에 인조 동물이 나타났다. 앵무새와 다람쥐를 비롯한 모든 생명체가 자연 속에서 평화롭게 어울리기를 바라는 우리의 몽상을 보는 듯했다.

몽상은 우리의 언어이고 외침이고 비명이었.


나의 삶과 행동이 더 이상은 각과 인지가 없는 무생물 같지 않기를.





글, 사진 엄민정

상하이 거주 13년.

한국의 김치와 상하이의 샤오롱바오처럼 익숙한 것들을 다시금 들여다보며 의미를 찾는 일에 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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