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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의 말들

죽어가는 모차르트

인간의 대지

by 엄민정 새벽소리
나를 괴롭게 하는 것, 그것은 저 올록볼록한 진흙 덩어리도 아니고 저 추함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저 인간들 한 명 한 명 안에 있는, 죽어가는 모차르트이다.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가판에 누운 명태의 눈을 보며 눈빛을 생각한다.

생태의 눈은 생그럽다. 생명의 기운이 남아있는 눈.

반면, 동태의 눈은 어떤가. 얼어붙은 하얀 눈.

생태는 생명력이고, 동태는 박제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유치원 시절부터 봐왔던 이웃의 귀여운 꼬마가 어느새 수험생이 되었다.

늦은 밤 무거운 가방을 짊어진 아이가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그 아이의 어릴 적 투명하게 빛나던 눈빛을 기억하기에, 나는 기대한다. 그 눈빛 여전하기를.


아이는 표정이 없다. 무표정 안의 눈빛은 매트하다.

빛나려 애써도 결코 빛나지 않는 눈.

핏기 없는 아이의 손등이 뻑뻑한 눈을 연신 비벼댄다.

아이는 이 시간까지 대체 무엇을 배우고 온 걸까.

그건 총명한 눈빛을 맞바꿀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을까.

헛, 소리가 한탄처럼 흘러나온다. 세상은 여전히 박제에 열심이구나.


천재도, 바보도 되지 못한 채, 그저 박제가 되어버린 스펙을 아시오.


꿈은 닭이다.

나는 닭을 쫓던 개의 심정과 눈빛을 안다.

허공으로 흩어지는 갈 곳 없는 시선.

닭을 향해 내밀었던 멋쩍은 발톱.

똑같은 세상을 보고, 똑같은 기준 속에서 살아가는 동안,

내 안의 빛이 서서히 사그라든다.

그러니,

빛이 완전히 꺼지기 전에 꺼져가는 빛을 알아채는 일.

죽은 것을 살릴 수 있다고 한 치의 희망이라도 품어보는 일.

흑암을 지나 다시금 빛으로 나아가는 천재 모차르트의 길을,

이제는 부디 잃지 않기를.

내 안의 올록볼록한 자갈돌을 심장처럼 귀하게 여길 수 있기를.




*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 이상의 <날개> 도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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