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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의 기둥은 죄가 없습니다

모기를 잡다가 떠오른 단상

by 엄민정 새벽소리


어젯밤, 잠자는 머리 위로 모기가 폭주족처럼 웅웅 지나갔습니다. 불을 켜면 모기가 잠이랑 어깨동무를 하고 달아날까 쉽게 불을 켜지도 못했습니다. 할 수 없이 또 몇 모금 기부해 버린 밤이었습니다. 모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의 어깨 위에 내려앉아 이 글을 함께 읽고 있는지도 몰라요. 목덜미에 앉아 드라큘라에 빙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때려잡아!”


친정엄마는 모기를 발견하는 즉시 조준과 함께 선포하곤 했습니다. 나는 전기 모기채가 익숙한데 엄마는 여전히 손바닥이 익숙한가 봅니다. 엄마 손은 모기채보다 날래서 선포와 동시에 공기 중으로 피를 환원시키고 모기를 지옥으로 귀향시킵니다. 피 묻은 손바닥을 보며 아날로그의 건재함과 세월의 기술이 깃든 장인의 손을 떠올립니다.


너무나 일상적인 엄마의 살육 선포에 나는 느닷없이 갸우뚱해집니다. 대체 누구를 때려야 누구를 잡을 수 있다는 말인지요. 모기가 올라앉은 대상을 때리지 않고 모기만 때릴 수는 없습니다. 나는 의도치 않게 친구의 따귀를 때린 적이 있습니다. 잠시 쉬어가겠다는 나그네의 태도로 얼굴에 내려앉아 배 속을 붉게 채우는 의뭉스러운 것을 바라보고만 있는 인내심 따위가 내게 없습니다. 친구의 붉으락푸르락하는 얼굴은 화를 내기도, 내지 않기도 어려워 보였습니다.


때렸으면 이제는 잡아야 하는 순서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때리는 것과 잡히는 것이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는 겁니다. 목표를 조준하고도 적시타를 치지 못했다면 이것은 대부분 어긋난 타이밍 때문일 겁니다. 좀 잡아본 사람은 압니다. 모기는 쬐끄만 주제에 꽤나 민첩해서 내 안의 순발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며 나를 단련시키지요. 낚시꾼이 입질과 챔질의 타이밍을 경험으로 체득한다면, 모기꾼은 입질 없이 챔질로만 성적을 내야 하니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뾰족한 방법이랄 게 없어 순발력만 탓할 뿐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나를 때리지 않고는 모기를 잡을 수 없습니다. 나를 때리지 않는다면 벽이 내 손을 때리겠지요. 잡을 수 있을까,를 의심하고 다시 확신하기 위해 계속 때려야 합니다.


때리는 일은 아프고 무섭습니다. 그런데 ‘잡는’ 일은 또 얼마나 강렬한지요. 파리채를 잡아, 모기채를 잡아, 모기의 멕동가지를 잡겠다는 비장한 걸음을 늦추 잡습니다. 전기 모기채에 날개를 사로잡힌 모기가 파닥입니다. 나는 숨도 쉬지 못하고 전기 고문의 참극을 지켜봅니다. 버둥거릴 때마다 나타나는 파란 스파크. 그리고 타닥하는 소리. 이 소리가 좋아서 길맥집 파라솔 의자에 앉아 그 파란 전기충격기를 앞에 두고 맥주도 많이 마셨어요. 골칫거리가 있거나 수수께끼의 정중앙에 있을 때, 그 타닥 소리는 마치 알아야 할 것을 알게 해주는 마법의 소리가 되었지요. 손에 들린 전기 모기채. 나는 일부러 내 손가락을 대고 타탁소리를 재현합니다.

‘잡다’

이 동사는 내가 꽤 바쁘게 쓰는 동사 중 하나입니다. 왜냐, 난 이 동사를 뭔가 바로잡고 싶을 때 자주 쓰기 때문이에요. 맞습니다. 나는 바로잡는 것을 좋아합니다. (바로잡을수록 바로잡을 것이 많아지는 역설을 체감하는 중입니다만.)

세상에는 눈에 흡족한 것들이 있는 반면, 째리는 시선에 걸려드는 것도 적지 않습니다. 연못 바위틈에서 피어오른 한 포기의 노란 수선화 옆에 둥둥 뜬 누런 페트병 같은 것이지요. 나는 고운 눈으로 주변을 보려고 노력하지만 험담과 가십거리에 귀가 쫑긋해지며 분비되는 엔도르핀은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긍정의 목소리를 방출하는 다정한 입을 가지려 애쓰지만, 온갖 날카로운 것들을 모아 집중포화 하는 입도 내겐 통제 불가입니다. 시선과 말씨, 그리고 손길에 오롯한 내가 담깁니다.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며 생각합니다. 언덕 위에서 좋은 이들이 내게 흘려보낸 고운 것들을 중턱에 서있는 내가 왜곡 없이 다시 흘려보내야 하는 본분에 대해서요. 고민이 깊습니다. 남을 바로잡기 위해 나를 때려야 하는 일을 피할 수 없어요. 그 도리의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때리’는 연습을 선행해야 합니다. ‘잡는’ 일은 대개 거창한 결심과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허나, 그것은 생각보다 간단할 수 있습니다. 나를 때리고 나면 필연적으로 뒤따라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잘 때릴 수 있을지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죄 없는 옆의 기둥은 그만 때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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