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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 욕심

거리감이 아름다움을 만든다

by 엄민정 새벽소리

나는 여전히 인싸를 원할까?


살다 보면 원하든 원치 않든 집단 안에 나를 두게 될 때가 있다. 집단에 들어가는 과정은 매번 비슷했다. 처음엔 기웃거리며 주변을 뱅뱅 돌았고, 궁금함에 한 발을 들이면, 안쪽의 누군가에 의해 다른 한 발도 마저 들이게 되는 식이었다. 두 발을 그렇게 들이고 나면, 내 삶과 집단 사이의 경계는 차차 흐려졌다. 나는 집단에 쉽게 영향을 받는 사람이 되었고, 집단은 내 삶을 좌지우지하곤 했으니까. 집단 안에는 꾸준한 물결의 파동이 있었다. 누군가가 들어오면 누군가는 나갔고, 내부는 쉴 새 없이 갱신되었다. 인싸 중에는 핵인싸가 있기 마련인데, 이들끼리의 손뼉이 잘 맞을 때 집단은 빗길 위의 자동차처럼 매끄럽게 잘 달렸다. 문제는 그렇지 못할 때 발생했다. 균열이 시작되면 집단은 불안해진다. 그런 일은 대개 사적인 욕망이 대립할 때 일어났지만, 그들 중 누구도 그것이 사적이라 말하지 않았다. 공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암투가 퍼져있었다. 사랑하려고, 더 많이 사랑하려고 만들어진 집단은 사랑하지 않으려 애쓰는 발버둥으로 서로에게 멍을 남겼다. 많은 내부자들은 못 볼 것을 많이 봤다며 체머리를 흔들고 자진해서 외부자가 되어갔다.


이런 걸 보려고 여기에 온 것일까. 회의감으로 자문하게 되면 나는 좀 슬퍼진다. 밖에서 보기에 아무리 보기 좋은 집단이라도 그 안에는 말 못 할 사정을 품고 있었다. 집단을 나오면서 생각했다. 한발 비껴 서서 나의 중심을 세우자고. 혼자는 절대 안 된다던 집단 슬로건과 레퍼토리에 더는 나를 묶지 말자고.


비행운이라 말하는 콘트레일. 비행기가 지나간 흔적에 따라 꼬리처럼 그려지는 흰 줄. 청명한 하늘 위에 그려지던 흰구름은 보기에 참 좋았다. 캔버스 위에 망설임 없이 그어버린 대가大家의 용감하며 의미심장한 한 줄 같았다.

그러나 내가 승객이라면? 그것도 비행기의 날개가 훤히 내다보이는 좌석에 앉았다면?

날개의 1/3 지점에서는 수증기와 배기가스가 마구 쏟아지고 있었다. 이래도 괜찮을까, 싶을 만큼의 배출이 땅에서처럼 하늘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꼬리를 달고 날아간다며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신기해하던 콘트레일의 실체는 다름아닌 '방귀'였다. 멀리 있으면 냄새가 없다. 실체를 알 수 없으면 좋아 보인다. 멀리서, 혹은 비껴 서서 무언가를 바라볼 때 나는 희망을 보고 경이를 느낀다. 아름다움은 대개 거리감이 만들어낸 환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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