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안 친한 것 같은데 참 친한 관계

글로 맺은 우정

by 엄민정 새벽소리

"당신과는 안 친한 것 같은데 참 친해요."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는 속으로 수없이 반복 재생되었다. 서로 다른 강이 어느 순간 합류해 하나의 물길을 이루는 듯한 느낌. 겉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이미 같은 흐름을 타고 있는 관계. 나는 요즘 이런 관계에 자주 골똘해진다. 무엇이 간격을 좁혔는지, 어떤 노력이 그 다리를 놓았는지. 우정은 오랜 시간 쌓여 단단해진 사이를 말하지만, 어떤 관계는 말보다 더 깊은 이해가 먼저 다리를 놓기도 한다.


친하다.

'친함'의 관계가 재배치된 것은 글을 쓰기 시작한 시점과 맞물린다. 글은 마음의 가장 깊은 곳을 드러내는 창이었다. 속일 수 없는 감정이 활자로 녹아들면 그 활자를 읽은 누군가는 응원으로 답하곤 했다. 그때마다 다시 힘을 얻었던 건 내쪽이었다. 백일의 글쓰기에 백일 동안 댓글을 달아준 이가 있다. 서로의 일상은 그렇게 공유되고 공감되었다. 글은 그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단숨에 좁히는 통로의 역할에 충실했다.


글로 맺은 관계는 서로를 아끼는 마음으로 번져 나갔다. 그 각별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오래 사귄 벗도 그 속을 모를 때가 태반인데, 내 마음은 어쩌자고 이리도 활짝 열려버린 건지. 나는 그의 글에 반한 적이 있음을 고백한다. 그 안에는 포장하지 않은 감정이 있었고, 그의 눈을 거쳐 예쁘게 옷 입은 일상의 풍경이 있었다. 무엇이든 그라는 필터를 거치면 모든 것이 평온한 빛을 입은 듯했다. 나는 그런 글에 본능적으로 끌렸다. 그리고 그 속에 펼쳐진 무한한 쉼과 위로를 경험했다. 이젠 안다. 말보다 오래 남고, 만남보다 더 자주 이어지는 관계라서 글로 키운 우정의 깊이는 깊을 수밖에 없다고. 알아온 시간을 초과하는 깊이. 나는 그런 초고속 열차 같은 글의 성질이 반갑고 고맙다.


그런 그가 친정엄마 보다 한 술 더 뜬 행낭을 들고 상해에 왔다. 나는 이 우정의 깊이를 다시 한번 실감했다. 그건 그의 가방이 커서가 아니라, 그 안에 나의 갈증을 적셔줄 물 한 방울 같은 책이 세 권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 한 권은 어떻게든 구해서 읽어야겠다 했던 송지영 작가님의 책이었고, 또 한 권은 평소 글체를 사모하던 포도송이 X 인자 작가님의 것, 그리고 다른 한 권은 사춘기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꼭 읽어야 하는, 내게 맞춤한 무당벌레 작가님의 책. 그의 선물은 오마카세처럼 정성스러웠다. 그 날밤, 두께와 크기와 냄새까지 제각각인 세 권의 책을 이리보고 저리보며 꼭 껴안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꿈을 꿨다. 작가의 책상을 떠나 바람을 타고 여행을 시작한 글들의 꿈을.


글은 그렇다. 작가를 떠나 훨훨 날아가,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독자와의 간격을 순식간에 잇는다. 그렇게 시공간을 거슬러 곳곳의 심장에 내려 않아 세상을 어루만진다. 다시, 그와 내가 처음 만난 것도 바로 글의 그런 힘 덕분이었다.


KakaoTalk_20251120_111303584.jpg 라이테 작가님의 정성스러운 책 선물

#라이테

#무당벌레

#송지영

#포도송이 X 인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