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책의 말들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싶나요?

삶은 도서관

by 엄민정 새벽소리
우리는 종종 '완성된 순간'만을 가치 있게 여기며, 그곳에 도달해야만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사실은, 이뤄가는 과정 속의 모든 '움직임'이 바로 인생이고,
그것 자체가 이미 빛나고 있다는 것이다.

인자 <삶은 도서관>


브런치 프로필 직업란 앞에서 멈칫했다. 나는 주부인가 에세이스트인가. 이 둘은 결코 대립하지 않기에, 둘 다 선택할 수 있지만, 무엇을 먼저 선택하는지에 따라 이름 밑의 직업명은 한 가지로 고정된다. 그래서 내 직업은 여전히 '주부'였다. 에세이스트를 먼저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엔 난 좀 떳떳하지 못했다. 직업이란 취미가 될 수 없으니, 글을 쓰는 건 취미에 가까웠고, 나는 취미로 밥을 짓지는 않기에.


잠시 중국어 이야기를 해야 한다. 아니, 중국어로 '오이' 이야기를 해야 한다. 표의어인 한자는 사물의 이름에도 '역사'와 '유래'가 담긴다. 수박은 중국 서역 지방에서 들여왔다 하여 서과西瓜가 되었고, 참외는 달콤한 박이라 하여 첨과甜瓜가 되었다. 그런데 오이의 중국어 이름 앞에서 나는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황과黄瓜, 누런 박.

그 옛날 오이는 늙은 뒤에야 식탁에 오르곤 했다. 껍질은 질기고 씨는 거칠었을 것. 참다 못한 누군가가 호기심에 청오이를 베어 물었고 그 청량함에 반했겠지. 그러나 이름까지 바꾸기엔 습관이 너무 깊었다.

마침내 누렇게 변해갈 현재의 초록.

미래의 이름을 가불하는 일은 꾸준히 힘쓰겠다는 묵언의 약속이었다.


마치 도달해야만 그 이름의 자격을 갖는다 믿었던 나는 '쓰는 사람'으로 나의 정체를 정한다. 그건 꿈이었지만, 이미 매일 누리고 있던 것. 꿈은 결국 이뤄내는 것이 아니라 매일 이뤄가는 과정 자체는 아닌지. "나 '에세이스트'야!"라고 규정하는 순간 행동은 자연스러워진다. 그건 이제 나다운 행동이 된다. 더는 미래가 아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우리는 정말 죄를 지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