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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소리 Nov 06. 2024

축복의 말씨

듣기 좋은 말로 대신하는 감사의 인사

혼자 놀 줄 알아야 같이도 행복하다고 했더랬다. 혼자 논다는 것은 친구가 없다는 의미의 다른 표현이라고 치부했다. 혼자 노는 건 부끄럽고 체면이 깎이는 일이라고 단정했다. 관념의 틀, 갇힌 유리창을 통해서만 바라보고 해석하던 내가 그렇게 창 밖을 오인하고 곡해했다. 먼지 탄 유리는 시각과 시야를 마음대로 왜곡했다. 

나는 온전히 혼자 있기를 거부했고, 자연히 혼자 놀 줄도 몰랐다. 

24세, 처음으로 식당에서 혼밥을 했다. 배가 고픈데 먹을 사람은 없어 수없이 망설이다 학생 식당에 들어선 것이다. 식판에 밥을 받아 의자를 빼고 앉는 과정마다 남들의 관념과 시선 속 나를 상기했다. 내가 그들을 바라보듯 그들도 나를 그렇게 보고 있다고 확신했다. 때문에 씹고 삼키는 단순하고 즐거운 운동을 노동처럼 즐기지 못했다. 


42세, 밖으로 향하던 내면의 시선이 겨우 유턴해서 안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누구의 의견도, 의사도 물을 필요가 없었다. 자문하고 자답하며 남에게 하듯 나를 대접하고 배려했다. 책 한 권을 들고 온종일 커피숍 죽순이가 되어보고, 모기 없는 날은 선글라스를 끼고 공원 벤치에 누워 노숙자도 되어본다. 멋들어지게 차려입고 좋은 레스토랑에 가서 혼밥도 하고, 장 봐와서 날 위해 멋들어지게 한 상 차려 먹기도 한다. 혼자 놀기에 푹 빠져 있으니, 종종 함께 놀던 친구들의 농담 섞인 비난을 받기도 했다. 오늘은 좋은 날씨를 핑계 삼아 그들을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오래간만의 나들이 일정을 앞두고 아침 시간이 분주하게 흘렀다. 건조한 얼굴에 영양크림이라도 바르고 푸석한 머리에 기름칠이라도 하려면 시간을 잘 분배해야 했다. 아이를 등교시키고 온 사이 계기판에 표시되는 차량 배터리 막대표시의 끄트머리가 벌써 조금 하얗게 닳아있었다. 잠시라도 보충할 생각으로 충전기에 주차를 하고 기계를 조작하는데 등 뒤로 분홍색 음영이 어른거렸다. 충전 연결을 마치고 돌아서는 찰나 분홍 음영이 기다렸단 듯이 불렀다. 저기요!

손가락에 비닐봉지 두세 개를 나눠 걸고 있는 연분홍 아웃도어의 여인이었다. 투명한 비닐봉지는 선홍빛의 토막진 돼지고기와 손질한 검은 생선이 그녀의 오늘 식사 메뉴를 TMI처럼 알리고 있었다. 어깨에 둘러맨 하얀 에코백에는 누린내와 비린내를 잡을 대파 2-3대가 검(劍)처럼 비장하게 삐죽했다. 

여인의 부름에 바쁜 걸음은 일시 정지했지만, 다시 이어 걸을지 멈출지를 발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용건이 끝나면 1초라도 지체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발끝은 여전히 걷던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차 충전 어떻게 하는 거예요?

충전비는 얼마지요?

주차장 비용도 내야 하는가요?

이런 차는 한번 충전하는데 얼마 들어요?


그녀의 질문이 쌓이는 만큼 내가 돌려줘야 할 답변이 쌓였다. 시간도 없는데. 


비용은 배터리 용량에 따라 다르고요... 주차장은 1시간 무료고요...


성의껏 대답했지만 성의가 없어 보일 정도로 답은 짧았다. 어디 사람인지, 여기 몇 년 살았는지.. 외국인 억양을 들키면 으레 받게 될 레퍼토리 질문이 훅 치고 들어올까 더 간략하게 답하기도 했다. 은연중 드러나는 발의 동동거림을 캐치한 여인은 나를 더 이상 붙잡지 않았다. 시간을 빼앗아서 미안하다는 인사 뒤에 남긴 그녀의 한 마디가 나를 멈춰 세웠다. 


"축복해요."


대뜸?

갑자기 마음이 울컥했다. 얼굴이 붉어졌다. 귀찮은 모습으로 드러났을지 모르는 나의 태도가 어쩐지 부끄러웠다. 방향을 돌려 여인의 폰으로 차량 충전 조작법을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했고 지켜봤다. 섬세하지 못한 손가락은 버튼을 잘못 눌러 홈화면으로 자꾸 돌아갔지만 다시 처음처럼 시작했다. 차량 계기판이 '충전 중'으로 바뀌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마침내 나는 빚진 축복을 갚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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