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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근영 Dec 19. 2024

뒤져라 그러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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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의 개수는 몇 개 없어도 사람 수를 헤아려 종류 별로 모두 나옵니다. 아빠, 엄마, 네 아이.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나오는 빨래입니다.

사람 종류별로 빨래가 나오니 몰아서 한 서랍장에 넣을 수 없습니다. 하나의 서랍장에 모두 넣으면 좋겠습니다만 그러면 꺼내 입으면서 엉망진창이 될 겁니다. 니 옷 내 옷 구분이 안 되니 마구 꺼내볼 테지요. 복동이는 옷이 안 보이면 동생 복이의 서랍장을 마구 뒤집니다.

어제는 오랜만에 첫째 아이의 서랍장에 옷을 넣게 되었습니다. 복이는 서랍장 세 개를 쓰고 있습니다. 다른 아이들이야 어리니 그렇다 쳐도 녀석이 그럴 줄은 몰랐습니다. 서랍장 세 개 모두 깜깜한 밤 속 폭풍의 언덕, 휘몰아치는 파도가 난무하는 어두운 바다입니다. 그곳에서는 어느 옷이든 찾을 수 없습니다. 바지도 매일 없다고 하고 속옷도 매일 없다고 하더니 없는 게 맞습니다. 깊은 바닷속에 잠겨 있었습니다. 이러니 못 찾을 밖에요.

옷이 정말 많습니다. 입는 옷 종류는 몇 개 안 되는데 왜 이렇게 옷이 많을까요? 왜 이렇게 종류별로 많이 사줬을까 싶을 정도로 많습니다. 안 입는 옷이 태반입니다. 아이는 입었던 옷만 주야장천 입습니다. 전체의 반의반을 입을까 말까 합니다. 계절이 지날 때 옷을 사기 전에 꼭 옷장을 확인해야겠습니다. 서랍장 두 개를 빠르게 정리했습니다.

아빠와 늦게 집에 온 복이가 놀랍니다. 엄마의 정리 실력에 한번 놀라고 자신이 매일 없다고 하던 속옷이 많은 것에 놀랍니다. 이런 것을 생활의 발견이라고 하나 봅니다.

뒤져라 그러면 나올 것이다.

남편도 항상 옷이 없다는 말을 달고 삽니다. 어제 장롱도 한번 훑었지요. 바지가 없기는요. 셔츠가 없기는요.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옷걸이에 걸어 정리한 세월이 오래다 보니 옷걸이에서 추락한 옷들이 많습니다. 바지와 셔츠 엄마옷, 아빠 옷, 계절 옷이 모두 뒤섞여 있습니다. 저야 매의 눈을 가지고 있으니 척하면 척하니 찾습니다만 남편은 그런 눈이 없어 매일 옷이 없다고 하는 겁니다. 하나하나 주부의 손으로 정리해 걸었습니다.

없으면 뒤져라. 그러면 나올 것이다.

앞으로 뒤지는 일이 없도록 착착 정리하겠습니다.

퇴근 후 빨래 정리를 하며 살림에 관한 나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너무 가족들에게 의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주부의 손길이 미쳐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힘들다는 핑계로 손 놓고 있었지요. 빨래는 정말 손을 놓으면 새로 사들이는 게 많아집니다. 당장 아이들이 양말이 없다고 아침마다 징징대 양말을 살까 몇 번을 고민했지요. 양말을 산 지 얼마 안 되어도 순식간에 양말통이 텅텅 비어 버리고 말더라고요. 어디엔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없으면 사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고요. 큰 아이 속옷도 없다는 소리를 몇 번 들었는데 정리해야지 생각보다 사줘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요. 이제는 바꿔야겠습니다.

계절 옷을 꺼내면서도 옷 사야지가 아니라 옷 ‘정리해야지 ‘로 바꿔보겠습니다.

뒤져라 그러면 나올 것이다. 오늘의 교훈입니다. 날이 찹니다. 아이들 패딩도 팔이 짧지 않은지 꺼내 입혀봐야겠습니다.

즐거운 정리 생활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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