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mg
내가 초등학교 때, 집에 TV 가 처음 들어왔다. 일요일이었던가.. 온 가족이 둘러앉아 보던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바로 <장수만세>였다. 그 프로그램의 진행자는 키가 크고 잘 생겨서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덧니가 있어도 잘 생긴 얼굴에 하나도 흠이 되지 않았던 그 분. 긴 스탠드 마이크를 앞에 두고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노인들과 이야기 나누던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나의 친정엄마가 얼마 전 구순 생신을 맞으셨다.
100세 시대라지만, 지난 봄, 사돈댁 할머니가 100세를 두어 달 앞두고 덜컥 돌아가셨고, 100세 잔치를 준비하다가 돌아가신 오빠 친구 부모님 이야기도 있어서 우리 엄마의이 생신날을 섭섭하지 않게 보내야겠다는 것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구순' 생신임을 한껏 드러내는 꽃과 풍선과 현수막으로 여느 때와는 달리 요란을 조금 떨었다.
우리 엄마는 9형제의 막내시다. 다른 형제분들은 다 돌아가셨고 100세를 넘기신 언니 한 분이 계신다. 그러나 요양원에서 사시니,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와도 하나도 놀라지 않을 상황인데 그런 상태도 십 년이 넘었다. 이러니 오시라고 청할 일가친척도 엄마 세대엔 없다. 그래서 말만 구순 잔치, 그냥 가족 모임이다.
이런 자리에 우리 직계 가족 말고 누가 더 오시면 좋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천주교 신자이신 엄마는 코로나 이후 집에서 미사를 보신다. 예방적 차원이기도 하지만 그 사이 많이 늙고 쇠약해지셨기 때문이다. 성당 교우들과 어울려 봉사활동을 하시며 활기찬 노년기를 보내셨지만, 함께 다니던 성당 친구들은 하늘나라로, 요양원으로, 그리고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게 잃어가셨다.
옛날 친구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시내 백화점에서 만나, 회비로 모은 돈으로 똑같이 옷도 사 입고 밥도 잡수시던 그런 모임도 벌써 십 수년 전의 일이다. 그래도 한 두 분과는 종종 만나기도 하시던데 그것 조차 아득한 옛날 일이 되셨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엄마가 친구분들 근황을 궁금해하시며 혼잣말인 듯 내게 말씀하셨다.
'성한이 엄마는 어떻게 되었을까...'
'성산동 마누라는 그저 거기 살고 있는지 몰라. 그 집 팔고 아파트로 가고 싶어했는데 영감이 고집을 부려서...'
'영준 엄마는 죽었을 거야. 요양원 간다더만...'
그런 말씀을 한동안 내가 갈 때마다 말씀하셨다.
전화해 봐요.
전화해 보시지 왜 그러고 계시냐고 은근 귀찮은 마음으로 말 했었는데, 얼마 뒤 다시 뵈었을 때 이런 소식을 전하셨다.
성한 엄마는 죽었대. 두어 달 되었다네.
어머! 아줌마 돌아가셨는데 연락도 못 받은 거야?
나한테 연락하고 싶었는데, 내 전화번호를 몰랐대.
누가?
누구긴 누구야, 성한이지. 지 누나 미국 가고 혼자서 엄마 돌보며 살았잖아.
지 엄마 죽은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지, 성한이가 자꾸 울더라, 전화기 붙들고.
성한이도 육십은 되었지? 여전히 결혼은 안 했고?
그래, 집 밖에 나가면 위험하다고 성한이가 지 엄마를 영 못 나가게 한다고 전에 전화할 때 그러더만 그만 가버렸네.
성산동 아줌마한테는 전화해 봤어요?
아니. 하면 뭘 해. 그 마누라 귀먹어서 통화가 잘 안 돼.
헐...
언제부터? 가끔 만나시지 않았어?
그 마누라가 버스 타고 이 동네 오면 같이 밥먹고 그랬는데.. 코로나때 영 못보고는...
그럼 어떻게 해?
못 보는 거지. 죽지 않았으면 아직 그 집에 살고 있겠지.
헐...
성산동 아줌마 사신다는 그 동네, 요즘 지나다 보니 대형 공사가 한창이던데 아줌마 집은 건재할까?
그래도 기운 나실 때 말씀해 주세요. 제가 모시고 성산동 한번 가 볼께. 영준이네는? 연락돼요?
안 돼. 연락안된 지 한참 되었어. 영준이가 이혼하고 와서 지 엄마랑 살았잖니.
영준아빠 죽고 혼자 힘들어했는데, 영준이랑 지내니까 좋다고 그랬는데.
치매가 걸렸잖아. 상태가 나빠진다구, 어디 요양원에 보낸다고 그랬어, 영준이가.
지 엄마 요양원에 집어넣고는 이사를 갔나, 전화가 안돼. 죽었겠지 뭐. 다 죽었어.
...
내가 어릴 때부터 알던 엄마 친구분들의 형편이 저러하니 다른 분들이야 말해 무엇하랴. 60살 넘으면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구분이 없고, 몇 살 되면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구분 없다더니...
아직 건강하시고 요양원에도 가지 않으신 우리 엄마지만, 엄마 형편도 답답해지긴 마찬가지다. TV를 틀어 놓고 안마의자 혹은 침대에 누워 하루를 보내신다. 경도인지장애의 증상도 있으셔서, 옛날이야기, 옛날 사람들 이야기는 늘어지게 하시면서도 오늘이 며칠인지, 낮에 어떤 자식과 통화를 했었는지 헛갈려하기도 하신다. 지병인 당뇨의 부작용으로 시력도 점점 잃어가시는 중. 칼질을 못함은 물론 가스불도 다루지 못하시고, 딸이 가져왔거나 만들어 놓은 반찬이 어디 있는지, 또 누가 다녀갔는 지도 기억들이 뒤엉켜 당황하시기도 하는 그런 형편이시다.
결혼하지 않은 나의 오빠가 구순 노모와 함께 지낸다.
엄마가 오빠를 거두던 삶에서 오빠가 엄마를 지키는 상황으로 변하면서, 언니들과 나, 이렇게 세 딸들이 부지런히 엄마 집을 드나들며 장수 노모와 함께 하는 생활을 거들고 있다. 가끔씩 욍강댕강, 우리 나이가 몇 살인지 잊을 정도로 형제간 불화도 일으키면서, 청소나 빨래 등을 거들고, 세상 소식, 손주들 소식을 옮겨다 드린다. 형제도 친구도 없는 우리 엄마 장수의 나날을 머리카락 희어지고 등 굽은 늙은 자식들이 채워드리고 있다.
엄마의 구순 생신날 찍은 가족사진을 다시 본다.
풍선과 꽃덩굴로 멋지게 장식된 배너에 '오래오래 우리 곁에 계셔 달라'는 문구가 보인다.
구순을 맞으신 엄마 곁엔 이렇게 비록 다투기도 하지만 그래도 엄마곁을 지키려는 우리들 사남매가 있었는데, 우리의 장수엔 누가 곁에 있는 걸까.
장수.. 가 만세.. 라던 그 방송의 그 제목, 왠지 시비를 걸고 싶다.
장수가 만세라고, 정말 그렇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