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라보 마이라이프
명동 한가운데의 그런 곳일 줄이야.
모험심 강한 옛 동료가, 본인이 직접 다녀왔다며 귀에 솔깃한 정보를 건네어주었다.
피부 미백 시술을 아주 저렴히 받을 수 있는 명동 의원을 소개한 것.
시술 가격이 너무 싸서 이상한 곳인가 걱정도 되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면서 이벤트 기간의 그 시술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싸다니.. 긴가민가했지만 다녀온 경험 자니까 산 증인의 말을 듣고 마침내 가 보았다. 그래도 혼자서는 못 가겠기에 동네 이웃에게 가보자 했더니 '둘인데 무슨 일 있겠어요?' 하며 동행해 주었다.
갔더니 세상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그것도 일본, 중국, 미국, 러시아.. 그리고 두건을 뒤집어쓴 여인들까지 홍대 앞인 지, 남대문시장인 지..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인들과 섞여 우왕좌왕 복접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런 중에 놀라운 것은 온갖 나라의 언어로 응대하는 한국인 직원들의 모습이었다.
수 십 명은 될 것 같은 직원들은 멋진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더러는 한복을 입고 왔다 갔다 하며 이곳을 찾은 외국인들에게 여기가 한국에 있는 병원임을 인식하게 해 주었다. 직원들은 손님 한 명이 들어올 때마다 환영의 인사말을 크게 하는데 외국인에게는 바로 그 나라 말로 응대를 하였다. 인적 사항 확인이 끝나면 곧 코디네이터에게 인계하였다. 처음 온 나 같은 사람들은 코디네이더들과 1:1 면담을 하며 목적에 맞게, 혹은 권하는 프로그램에 맞게 이런저런 시술을 받도록 소개받았다. 도착 즉시 시작된 환영의 인사부터 시술을 마치고 나가는 순간까지 모든 단계는 질서 있게 착착착 직원에서 직원으로 인계되며 진행되었는데, 마치 성형 및 미용을 위한 '공장'의 이미지 그 자체였다.
나같이 '싼 비용'으로 시술을 받으려는 손님도 있겠지만, 보톡스, 쉬링크, 뭐뭐... 이름도 다 옮기지 못하는 온갖 시술과 성형 수술이 이곳을 이용하는 외국인 손님들을 대상으로 잘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젊은 여자들 말고도 나 같이 이벤트를 쫓아온 것이 분명한 나이 든 사람들도 있었지만, 놀라운 것은 남자들이 아주 많다는 점이었다. 남녀 내외국인을 불문하고 이렇게 활발하게 영업이 잘 되고 있으니, 이런저런 시술을 권유할지도 모를 사태에 대하여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굳은 결심은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게 필요할 거라고 몇 가지 권하기는 하였으니 탐탁지 않게 여기는 내 표정을 보고는 바로 처음 만났을 때 같은 환한 얼굴로 즉시 다음 단계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역시 장사가 잘되는 집이라는 반증 같았다.
그곳은 호텔과 같은 건물에 있는 병의원으로, 성형 수술로 붕대를 철철 감은 얼굴을 하고서도 엘리베이터 하나만 타면 바로 숙소로 이동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외국인에게는 최상의 장소임에 틀림없었다. 성형 목적의 중국인 관광객이 많다는 소리를 십 수년 전부터 들었지만, 이곳은 중국인 만의 인기장소가 아니었다. 영어, 일본어, 러시아어, 그 외 잘 모르겠는 언어까지 구사하는 직원들이 있었다. 얼굴을 갈아엎는 수준의 성형 여인이 대통령의 부인인 나라이다 보니 가히 대한민국의 성형 기술의 인기가 나라의 부에도 영향을 미치리라.. 하는 상상까지 해 보았다.
얼마 전 여고 동창들을 만났다. 몇 달 만에 만나는 친구들은 나를 보자마자 '얼굴 좋아졌다'며 인사를 건넸다. 내가 그 피부과 의원에서 얼마나 싼 가격에 시술을 받았는지를 그곳의 놀라운 분위기와 함께 근황을 전했기 때문에 친구들은 나를 보자마자 한 마디씩 해주었던 것. 그런데 그날 시술의 히로인은 다른 친구이었다.
외국에 살고 있는 친구가 일 년 만에 서울에 왔기에 그녀를 볼 겸으로 동창들이 모인 것. 우리 집에서 가까운 식당이 모임 장소라 나는 조금 일찍 나가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날의 주인공 친구가 선글라스를 끼고 들어섰다. 다 저녁때 무슨 선글라스... 했는데..
선글라스를 벗는 얼굴을 보니 푸른 멍 자국에 눈가는 붉은 핏기 까지지... 눈 성형을 한 것이 틀림없는 모습이었다. 그 친구는 처진 눈꺼풀을 댕겨 올려 꿰매는 시술을 했다고 했다. 아니 귀국한 지 며칠 되었다고 그 새?
귀국 즉시 정한 날짜인데, 그 며칠 사이에 해 버렸다는 말씀?
한국에 오기 전에 결심을 하고 병원 예약까지 하고 왔단다.
자기가 왜 그 시술을 했어야만 했는지, 그동안 얼마나 눈거플 때문에 불편했는지, 즉 외과적 조치가 불가피했다는 변명 같은 설명이 있었지만, 결국엔 젊어지는 효과가 있는 수술이었던 것이다.
친구들은 '자리 잡으면 한층 젊어 보이겠네.' 잘했다고 '그런데 혼자 너무 이뻐지면 어쩌냐' 하며 걱정인지 위로인지.. 아니면 시샘일 지도 모를 마음들을 담아건 내며 웃었다.
요 며칠 그 친구의 그 눈이 자꾸만 생각난다.
뭐야, 나도 하고 싶어 하는 거야?
그런데 대답은 노, 노, 노 오!
명절 연휴의 마지막 날, 모처럼 책을 읽고 있는데 그날 만났던 다른 친구 한 명이 전화를 했다.
이런저런 대화 후 끊으려는 때, 그 친구가 결정적인 이야기를 하였다.
'야, 나 내일 눈 시술하러 간다. 걔가 했던 그 병원에서 나도 똑같은 거로 하기로 했어. 다음에 볼 때 나 못 알아보는 일 없도록 미리 말한다.'
헉!!
바야흐로 '견적도 안 나온다'는 수준으로 나이 들어가는 시대다.
나이 든 내 얼굴, 나조차 보기 싫고, 이뻐지고 싶은 마음은 너희들과 똑같은데,...
그런 저런 생각들을 앞지르며 훠이훠이 달려 나가는 친구들.
우리 네 명 중 두 명이 넘어갔다. 세 번째는 누구일까.
난 안 되겠어. 3호는 되지 않을래.
성형의 흔적보다는 나이듬의 흔적으로.. 살아내련다.
단, 이것은 지금 시점의 나의 결심이다, 나중 일은 나도 몰러. 묻지 마,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