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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무개 Aug 21. 2024

REWIND―VIEW 2회

Vincent van Gogh, <The Starry Night> 

   전경에는 검푸른 녹색의 사이프러스 나무가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고희미하고도 신비한 빛들이 소용돌이치는 밤하늘이 후경에 펼쳐져 있다별빛이 흐드러진 하늘의 오른편에 눈부시게 노란빛을 뿜는 초승달이 떠 있고언덕 아래에는 작은 마을이 고요하고 소박하게 꾸려져 있다이 그림은 고흐가 아를에서의 혹독하고도 처참한 시기를 겪은 뒤 생폴드모졸 요양원에 들어가 지낼 때 그린 그림이다.


   고흐는 이 그림을 그릴 당시 야간에 작업할 수 없었는데요양원 측이 일층에 마련해준 작업실은 낮 동안만 이용 가능했기 때문이다그의 일생을 다룬 평전 『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에서는 그즈음 고흐의 작업 환경을 상세히 그려두었다그는 밤마다 침실 창문으로 보이는 밤하늘을 눈에 담거나 간략한 스케치로 남긴 뒤낮에 캔버스로 옮겼다침실 창문은 환자의 안전을 위해 나무를 가로질러 놓아 밤하늘은 좀 더 조각난 풍경이었다고흐는 감시자의 동행을 조건으로 약간의 외출이 허용됐으며그 시간 동안 산책하며 그림 작업을 하거나 주변을 관찰했다. <The Starry Night>의 오른쪽 하단의 마을 풍경 또한 이때의 관찰로 그려낸 풍경이다.


   하지만 그림 속 마을 풍경은 실제의 풍경과는 상당히 다르다언덕이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위치와 방향이 달랐고 마을 크기 또한 실제보다 훨씬 축소되어 있다기억을 복원해내고 부족한 부분을 상상력으로 메운 그림 속 밤하늘은 그맘때 고흐의 정신 상태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평가 된다하지만 <The Starry Night>의 전신이라 할 <Starry Night>(우리나라에서는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이라 번역되는 작품)을 보면 고흐가 당시 밤하늘과 밤의 풍경에 매료된 사실을 알 수 있다밤하늘을 수놓은 별과 아를의 강에 비친 별빛을 담은 그림은 고흐가 아를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그림이라 알려져 있다그는 밤하늘의 빛깔에 골몰하고 있었고요양원에서도 그 주제를 이어나간 것이다.


   고흐가 요양원에서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당시의 예술관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인상주의에 항상 열정을 지니고 있을 거다그러나 나는 점점 더 파리에 오기 전에 품었던 생각으로 돌아가는 느낌이 든다.” 이는 그가 정통 인상주의에 속하지 않는 이유를 말해 준다눈에 보이는 빛의 인상을 그대로 그리는 인상주의와 달리고흐는 자신이 느끼는 대상의 본질에 집중했다그가 파리에서 생활하기 전에 테오에게 이렇게 편지했다. “모든 사람이 모델을 알아보게 될 그림을 그리고 싶지는 않다세부사항은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인물을 그 본질적인 특징에 따라 단순화할 것이다……(중략)…… 이와 비슷하게 너도밤나무 숲에서 팔짱을 끼고 있는 부부의 그림은 아버지어머니가 모델로 자세를 취해주기를 바라기는 하지만아버지 어머니의 초상화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며 함께 늙어온 모습이다.” 고흐에게 밤하늘이란 그를 꿈꾸게 하는 무한의 영역이며어둠으로 가득한 듯하나 미세하고 섬세한 빛의 향연이며죽음조차 두렵게 하지 않는 이상세계였다그는 자신이 보는 밤하늘의 본질을 그리기 위해 주저 없이 왜곡하고현실과 기억과 상상력을 뒤섞고과감한 붓질로 표현해냈다그의 그림은 훗날 많은 이들에게 단순한 병적인 기질의 현상인가꿋꿋하게 밀고 나가는 예술가적 소신인가 하는 의문을 남겼다예술가의 작품과 삶을 얼마나 밀접하게 봐야 하는가혹은 예술가의 작품은 오롯이 그의 작품세계와 의식의 소산인가 하는 질문은 오랜 화두이지만정작 그러한 질문조차 화가의 과감한 붓질이 없었다면 생성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나는 그들의 굳게 다문 입술과 붓질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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