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살이
14년 전, 중국에 오게 되었다 뭐 그전에도 오가긴 했으나 그건 여행이었지 내가 살아갈 삶의 터로 온 게 아니었기에 별 다른 느낌 없이 타지구나 오지(?) 구나 하면서 왔다 갔다 했었고 그땐 카톡도 없었다. 스카이프로 엄마랑 전화했었으니까
솔직히 14년 전에도 그 후에도 한국 아니고 중국 아니고 오간 나라가 없다 가까운 일본도 가보지 못했다.
내가 어디 가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기려고 글 쓰는 게 아니지만, 내 큰아들은 지금 현재 12살(2011년생)이고 나는 중국에 와서 몇 개월 뒤 임신을 했다. 계획된 임신이었고 준비했고 기다렸던 아이였다.
준비된 과정은 우리 둘 다 산전검사를 했고 남편의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걸 확인했으며 14년 피워댔던 담배를 끊고 6개월이 지난 뒤에 숙제를 했고 나도 임신을위해 <임신과 출산>이라는 육아의 바이블인 노란 책을 집으로 배송시켜놓고 정독했었다.
그렇게 아이를 가지고서도 나는 훨훨 날아다니는 삶을 살 줄 알았지. 큰 착각에 살았었네 나 정말 어렸었구나.. 새삼 느낀다.
임신이 된 후에도 훨훨 날아 한국 중국만 오가긴 했구나.. 첫째라 애지중지했고 또 2년 3개월 만에 둘째가 탄생하고.. 그렇게 육아 절어서 살았다. 그러고 또 픽업이 직업이 되어 애들을 보내고 데리고 오고 먹이고 그렇게 바빴지만 셋째가 생겼다. 별로 안 바빴나..
14년 전부터 중국 집 주변만 다녔고 한국인 하나 없는 곳에서도 꿋꿋하게 잘 살았다. 둘째가 태어나고 화장품 가게를 시작했다. 화장품 가게를 시작하고 좋은 지인들을 알게 되어서 기쁘다. 역시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고 일을 해야 활력이 생긴다.
나는 칭다오에 살지만 한인이 없는 곳에 산다. 내 주변에 한인이 많이 없지만 그래도 다른 지역보다는 압도적으로 많은 곳이다. 인천 맞은편인 칭다오 중국 어디 가는 것보다 한국 가는 게 가깝기도 하지만 외국은 외국이고 아이들의 고향이지만 나에겐 타지인 곳. 처음에는 희망과 꿈을 안고 온 곳 불과 몇 개월 만에 와장창 무너지며 울고 불며 한국 간다고 첫째를 시댁에 던져놓고 그 비싸다는 비행기 당일 티켓을 공항에서 시원하게 카드 긁고 한국을 가버렸던 나지만 지금은 내 집이요. 내가 편하게 생활할 수 있는 살림이 빼곡히 있는 곳이 되었다. 이젠 한국 가는 게 귀찮을 정도.
솔직히 내 주변 한중커플 중에 제일 한국 안 가는 게 나다. 이번 겨울에 갔다 왔는데 6년 만에 한국행이었다. 셋째가 태어났고 또 코시국이어서 못 간 것도 있지만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우리 식구는 5명이라는 것.. 그리고 작년엔 엄마가 추석 때 왔다 가셔서 꼭 굳이 안 가도 됐었는데 애들 데리고 한번 찍고 오고 싶은 마음에 다녀왔다.
중국 사람이랑 결혼한 나. 그렇게 뭐 많이 특별하다고는 생각 않는다. 그리고 항상 생각한다 모든 남자들은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연예인 엄앵란 씨가 했던 말이었었나? 물론 문화차이가 있지만 한국 나물이나 한국 밥이랑 살았으면 나는 벌써 돌싱이었을 것 같다.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름에 나는 많이 마상 당하는 편이니까. 또 이건 빼놓을 수가 없는 부분인 게 먹는 거에 진심이 또 아니라서 그냥저냥 잘 살고 있는 거 같다.
이젠 엄마 키를 훌쩍 넘어버린 아들
4학년 2학기 중인 큰 딸
올 9월에 초등학생이 되는 막내딸.
14년 동안 이루고 해 놓은(?)것들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