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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리 Apr 15. 2024

이거 다이어트 식단이잖아!

건강과 다이어트 둘 다 해낼 수 있다.

암과의 자연치유를 선택하고 가장 첫 번째로 공부한 부분이 '앞으로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나'였다.

상식적으로 밀가루는 금지일 거고 고기는 먹어도 될까? 수많은 질문들이 생겼다. 아니 사실은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곱창 삼겹살까지 못 먹게 될까 봐 현실을 인지하고 싶지 않았다. 공부할수록 분명하게 보이는 건


암환자들은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나 보다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은 무엇인가'가 더 중요했다.


이글에서 하나하나 자세하게 설명하진 않겠지만 크게는 동물성 단백질과 유제품 밀가루를 먹지 말아야 했다. 그럼 뭘 먹어?라는 질문이 생기겠지. 맞다. 남은 건 야채와 식물성 단백질뿐이었다. 더 간단하게 말하면 나는 다시 신생아 때로 돌아가야 했다.


아침에는 일명 몽땅 주스(파프리카, 오이, 당근, 양배추, 비트, 시금치, 케일)라고 불리는 여러 가지 야채를 삶고 갈아서 한 컵 마시고 영양분이 많이 들어간 고구마를 먹었다. 아침마다 야채를 씻고 다듬고 삶고 갈아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하므로 일찍 일어나야 했는데 오전에 기운이 없는 나를 대신해서 고맙게도 아침은 남편이 담당해 줬다. 고맙습니다.

오전에 몽땅 주스를 먹은 지 별로 안됐는데 늘 구내염을 달고 살던 엄마의 구내염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어떤 방법을 써도 낳지 않던 구내염이 더 이상 생기지 않는 모습에 매우 놀라웠고 이 몸땅주스가 엄마몸속 부족한 영양분들을 채워주고 확실한 효과를 본 방법이라 암 환자가 아닌 우리 가족모두의  아침식단은 몽땅 주스와 고구마로 확실히 고정되었다.


몽땅 주스 크게 한 컵 고구마 견과류

점심은 배를 채우고 싶었다. 배를 채우고 맛도 느끼고 싶은데 야채를 어떻게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여기서 함정은 난 요리하는 걸 좋아하지도 않고 잘할 줄도 모른다는 거다. 야채를 생으로 먹을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내가 선택한 양배추, 버섯 여러 종류들, 두부, 브로콜리는 살짝 찌고 나머지 생마늘, 방울토마토, 당근은 생으로 담았다. 다시 신생아로 돌아간 식단이다. 정말 이렇게만 먹으면 너무 심심해서 먹을 맛이 안 난다. 다행히 생들기름과 고소한 들깨가루를 뿌리고 생김에 싸 먹을 수 있었다. 웬만한 야채들은 생들기름과 들깻가루만 있으면 고소하니 먹기가 좋다. 몸속에 독이 쌓이는 것이 치명타인 암 환자에게는 독을 제거하면서도 영양분이 잘 쌓이는 음식이 답이다. 그냥 쉽게 말하면 자연 그대로의 깨끗한 식단. 살면서 이렇게 많은 야채를 먹어본 적이 없음에 반성한다.  40분 정도 꼭꼭 씹어서 천천히 먹고 나면 현미밥 한 숟가락 정도를 먹었다. 바보 같은 이야기일 수 있지만 나는 암에 걸려서 가장 슬픈 것이 맛있는 음식을 못 먹는 거였다.


암에 걸렸어도 식탐은 살아있음에 한숨이 나왔다.

남들은 암 걸리면 입맛도 사라진다는데 나는 암이 걸렸어도 식탐이 그대로라니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이 식탐이 좋은 게 아닐 텐데 가짜 식탐일 수도 있고 자극적인 것에 길들여져서 생긴 식탐이기도 하고 몸을 건강하게 바꿔나가다 보면 이 식탐도 점점 사그라들지 않을까라는 올바른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이날은 연근도 추가했다.

저녁은 점심과 똑같았다. 남편은 종종 오늘은 뭐 먹을래?라는 질문을 하고 난 '매일 먹는 거'라는 답을 한다.

늘 똑같은 음식에 그 계절에 나오는 나물들을 더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야식이 당기기도 하고 오늘은 진짜 못 참겠다는 날도 있었다. 그럴 때면 풀무원에서 나온 두부면을 이용했다. 두부면에 고기가 들지 않은 토마토소스를 더해서 먹어보기도 하고 단것이 당길 때는 그냥 달달한 고구마를 먹었다.


나의 가장 참기 힘든 음식은 치킨이었다. 닭   암환자인지 정신 못 차렸다는 얘기를 들을까 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정말 정말 참기 힘든 날 튀기지 않은 굽네치킨 오리지널을 몇 번 시켜 먹었다. 먹고 나면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혹시 오늘 먹어서 암이 더 퍼지거나 커지면 어떡하지라는 마음에 너무 괴로웠다. 하지만 지금 너무 우울해서 이런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한 번은 일탈하고 싶었어 나 자신을 너무 뭐라 하지 말아줘 라는 마음이 약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 글을 공개하는 이유는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다. 어느 기록에 보면 암환자들이 완벽하게 식단을 해내고 완벽하게 운동한 기록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물론 그렇게 해야 한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초반에 그러지 못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적응을 하고 시행착오를 겪어가면서 식단을 매우 잘 지켜내고 있다. 정말 잘하다가 한두 번 식단을 못 지킨 날은 너무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든건 누적의 힘이다. 좋은 식단을 계속 쌓아가면 된다.


나는 오히려 그 자책이 내가 먹은 음식보다 더 안 좋은 상태를 가져온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렇다고 식단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절대 아니다.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다. 오히려 몸보다 마음의 영향력이 더 큰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 또 사람이 어떤 큰 일을 겪는다 해서 한 번에 달라지는 건 아니다.

단지 초반에 있는 시행착오들을 길게 가져가지 말자는 것이다. 짧은 순간에 내가 편안하게 느끼면서도 나에게 이로운 것은 무엇일지. 내가 꼭 지켜야 하는 식단과 나의 리듬을 잘 알아야 한다. 나는 내가 먹는 음식을 다 기록하기 시작했다. 기록이 나의 마음을 더 잘 잡아주었다. 기록을 함으로 지속성에 더 도움이 되었다.


이러한 식단으로 그동안 성공하지 못했던 다이어트가 저절로 되어가고 있었다. 너무 건강한 다이어트 식단이다. 나중에 암이 다 낳고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면 3끼를 먹으면서도 단기간에 건강하게 살 빼는 방법을 알고 있다. 어느 날 밥을 먹고 산책을 하던 중 한 농부 아저씨가 브로콜리 밭에서 수확을 하고 계셨다. 평소에 유기농 브로콜리를 사 먹던 나는 개인적으로도 판매를 하시는지 여쭤보았고 그렇게는 안 하지만 그냥 오늘 먹을 만큼 가져가라고 하셨다. 그렇게 나는 꽃다발 대신 브로콜리를 들고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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