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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내 세상

by 지안

작은 자격증을 하나 땄다.


스펙으로 필요하다거나, 크게 도움이 될 엄청난 건 아니다.

그냥 나에게는 작은 동기가 필요했고, 강제로 나를 집중시킬 무언가가 필요했다.


한참 전에 등록해놓은 자격증 시험날이 다가오자 점점 무서워졌다.

무턱대고 등록해버린 과거의 내가 미웠다.

'그냥 가지말까.'

고민하다가 접수창을 다시 들어가 봤다.

됴르륵... 환불불가였다....취소하기엔 이미 너무 늦어버린거다.


며칠은 아무 생각없이 공부에 집중하고,

며칠은 갑자기 너무 하기 싫다고 소리치며 아무것도 하지 않기도 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시험 전날.


한 사이트에 올라온 예상문제를 풀어보았다.

'이런, 아무것도 모르겠다. 망했다. 나 지금 아무것도 모르는데 내일 시험보러 어떻게 가지.... '

갑자기 또 내 안의 불안이가 미친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극도의 불안은 또 눈물로 튀어나왔다.

왜 난 항상 모든 감정의 끝이 눈물인걸까.

잠시 울다가, '그래 그냥 가보자. 떨어지면 돈 날렸다고 생각하고 그냥 가보자.

어차피 내일 할일도 없는데, 그냥 가보자.'

여러 번 나를 다독이고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도 그냥 뭐 될 때로 되라지 하는 마음으로 나섰다.

첫 날은 짧은 수업을 진행하고 짧은 실기 시험을 몇가지 보았다.

이리저리 흩어져있던 내용들이 짧은 수업들을 통해 조금은 정리되기 시작했다.

불안에 떨던 마음은 다 사라지고, 어느새 수업에 집중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냥 마음을 바꿔보자 생각했다.

시험본다고 생각하지 말자, 떨어지더라도 그냥 배우고 간다는 마음으로 하자.


수업 시간에도 나 혼자 별 생각을 다했다.

'아무도 필기하지 않고 눈으로만 보는데, 나만 서걱서걱 필기하면 좀 그런가?'

괜히 눈치가 보였다. 그 순간에도 다시 마음 먹었다.

'아니, 이 사람들이 나랑 무슨 상관이야.

이 세상에 나 혼자 있다고 생각하자.'

순식간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부끄러울 수 있었던 실기 시험도 아무렇지 않게 끝낼 수 있었다.


첫 날을 무사히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

부족한 공부에도 마음이 뭔가 편안했다.

갑자기 내가 아주 커다란 우주에 모래 한 알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도 쐬고 싶어서 시험장 바로 앞의 역을 뒤로 하고, 일부러 조금 떨어진 지하철 역까지 걸어갔다.

가는 길에 지나가는 수많은 차들, 걸어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저 사람들도 다 자신의 세계 속에 살고 있겠지.

나도 내가 주인공인 나만의 세계에서 살고 있잖아.

다른 사람들도 그런거야.

그들의 드라마에서 나는 지나가는 엑스트라일 뿐이야.

나는 나의 드라마에서만 주인공인거야.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둘째 날도 무사히 마치고, 어찌저찌 합격도 해서 작은 자격증도 받아냈다.

작은 성취감을 갖고 데리러 온 아빠의 차를 타고 본가로 향했다.


내가 주인공인 나만의 세계.

아빠도 내가 모르는 아빠만의 세계가 있겠지? 생각하며 집으로 향했다.

나는 내 주변 사람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는게 정말 힘들었다.

내가 힘든 것보다 힘든 사람들을 보는 게 더 힘들어서 내가 희생해서라도 그 사람들을 위해서 뭐라도 해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근데, 나만의 세계에 내가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들고 나니까, 내가 너무 과한 오지랖을 부린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다들 알아서 잘 살텐데, 내가 너무 오바했구나 싶었다.


엄마, 아빠의 힘듦을 내가 꼭 해결해주려고 아등바등 하지 않아도, 엄마 아빠도 잘 살꺼야.

내 동생도 잘 살아낼꺼야. 내가 꼭 그 짐을 다 덜어주지 않아도 돼.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은 정말 나가기 싫은 날이었는데, 동생이 같이 어딜 가달라고 졸랐다.

원래 같으면 꾹 참고 나갔을 거다.

근데 왠지 내 마음대로 하고 싶었다.

잠시 마음이 불편했지만, 동생이 혼자 다녀오길 기다렸다.

잠시 삐져있었지만, 언니가 김밥 쌌는데 같이 먹을래? 물어보니 먹을래! 하면서 바로 풀리던 동생.

정말 사소한 일이었는데, 묘한 해방감이 들었다.


자취방에 돌아와서도 마음이 뭔가 후련했다.

오랫동안 짊어지고 있던 돌덩이 같은 가방을 벗어던진 기분이었다.

뭔가를 하려는 의지가 생기지 않아서 나를 그럴 수 밖에 없는 환경에 놓아보았더니

그것 이상의 것을 얻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래 내 인생에서는 내가 주인공이지, 다른 사람들의 인생도 그럴거야.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는데, 굳이 내가 그들의 짐을 뺏어 들 필요는 없다.

또, 너무 다른 사람이 신경쓰인다면 나는 그들의 세상에선 엑스트라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면 된다.

나에게 집중하면 된다. 내 인생은 어차피 나만 아는 거니까.


내 세계에서는 내가 주인공이다.

모두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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