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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할 수 있다는 겸손함

by 지안

길고도 정신없던 일주일이 지났다.


새로운 직장에서 낯선 환경, 사람들과 일하게 되었다.

나같은 낯가림쟁이에게 정말 쉽지 않은 일주일이었다. 30년이나 살면서 사회성이 많이 길러졌다고 생각했는데, 나란 인간은 하루종일 입에 거미줄을 치고 앉아있었다. 첫날은 업무에 대한 긴장이 더해져 정신없이 하루가 흘러간 탓인지 힘든줄도 몰랐다. 둘째날부터는 외로움이 밀려오더라. 할 줄 아는 것도 없지, 일을 맡게 되면 긴장이 잔뜩되어서 땀이 줄줄 나기가 일수였고, 주변 동료들의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나만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하루종일 앉아있었다.


둘째날부터는 하루가 일 년 같았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다.

셋째날이 되자 3일간의 피로와 함께 서러움이 몰려왔다.

낯선 업무와 환경 뿐 아니라 아침형 인간인 나에게는 최악의 근무 시간이었기에 피곤함도 잔뜩 쌓였다. 오후 3-4시만 되면 바닥을 치는 에너지로 나는 꾸역꾸역 밤까지 일을 이어갔다. 하하호호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동료들 사이에 입에 거미줄 치고 앉아있는 일이란 정말 곤욕스러웠다. 처음하는 일이지만 속도가 느리다고 교육 담당분께 지적 받으며 주눅들고, 다시 자리로 돌아가면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되는 일을 하루에 10시간 넘게 하고 있자니 머리는 멍해지고 속에서 답답함이 치밀었다.


셋째 날도 퇴근 후 교육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힘을 냈어야 했다.

그런데 퇴근이 다가오자 눈물이 자꾸만 쏟아지려고 했다. 챗지피티에게 눈물 참는 법을 물으며,,,ㅎㅎ 겨우 눈물을 참고 교육을 마무리 했다. 직장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흐르는 눈물은 지하철 안에서도, 버스를 타서도 끊이지 않았다. 계속해서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겨우 집에 도착하니 새벽 1시. 집에 도착하자마자 조용히 흐르던 눈물과 함께 울화가 치밀었다. 말 그대로 엉엉 소리내어 울며 하루종일 쌓인 피로와 먼지들을 뜨거운 샤워로 씻어냈다. 그럼에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헤어진 남자친구가 이토록 생각난 적은 처음이었다.

바쁘게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잊혀지는게 사랑이라고 다들 그러던데, 바쁘게 외롭다보니 사무치게 생각이 났다. 하루종일 있던 속상한 일들을 필터없이 터놓고 얘기하면 온전히 내 편이 되어 같이 욕해줬을텐데... 싶은 생각이 들었고, 그러고 나면 나아질 것 같았다. 전화하고 싶다는 마음을 수없이 꾹꾹 눌러가며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내 자신을 다독였다. 그냥 위로가 필요한 하루였던 것 같다. 전화 대신 이제는 전남자친구가 되어버린 그가 마지막 날 써준 편지를 읽었다. 나에게 필요한 건 위로였고, 그게 위로가 될 것 같았다. 편지는 총 3페이지였는데, 첫 페이지에 몇줄을 읽자마자 눈물이 자꾸만 나서 편지를 덮어버렸다. 너무 많이 읽어서 거의 외워버린 탓에, 첫 페이지를 읽자마자 마지막 부분에 '너무 힘들면 안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언제든 연락해'라고 써 준 내용이 생각나서 거기까지 읽으면 진짜로 연락을 하게 될 것 같았다.


어렵게 얻은 직장이라 감사한 마음으로 다니자고 마음 먹은건 다 어디로 간건지, 자꾸만 잘 해내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외로움에 대한 답답함만이 가득했다. 편지를 덮고 유튜브 알고리즘에 뜬 시끄러운 예능 영상을 켜두고 눈물이 멈출때까지 소리내어 엉엉 울고, 세수도 여러번 하고 기도도 했다. 지금 이 순간을 잘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나 혼자서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겨우 울다 지쳐 잠이 들었고, 다음 날 아침 또 다시 출근 준비를 했다.

부은 눈을 가리려 얼음으로 벅벅 문질렀지만 도저히 가려지지가 않았다. 어차피 뭐 아무도 신경안쓰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냥 집 밖을 나섰다. 많이 힘들었던 감정이 폭풍처럼 지나가고 나니 출근길 지하철에서 문득 대체 왜 이렇게까지 힘든거지 의문이 들었다. 가만히 멍하게 생각을 해보니 내 마음이 내 스스로를 또 힘들게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든 항상 잘 할 수 있다는, 잘 해야만 한다는 생각, 그래서 처음부터 잘 해내지 못하면 안되는 스스로가 답답한거다. 뜻대로 안되는 자신이 답답하니까 자꾸 내 스스로에게 화를 내게 되는거다. 얼마나 어리석고 오만한 마음인가. '실수할 수 있다는 마음이 겸손'이라고 하던데, 난 항상 처음부터 모든 것을 한 번에 잘하고 싶었다. 얼마나 겸손하지 못한 태도인지, 그리고 그 마음이 얼마나 나를 힘들게 하는지 뼈저리게 깨닫게 하는 나날들이었다.


정신없는 연속근무가 이어지고, 첫 휴일에 나는 성당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고해성사를 보고, 감사함을 잊고 스스로를 미워하고 겸손하지 못한 태도로 보낸 나날들에 대해 반성했다. 앞으로 내 인생에서 수많은 새로운 일들이 닥칠 때마다 '처음이야. 못할 수 있어. 하다보면 잘 할 수 있어. 실수할 수 있는거야 처음이니까' 이 생각을 반복해서 해야겠다. 더욱 겸손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 평화로움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야겠다.


처음부터 모든 걸 잘해야 한다는, 나를 갉아먹는 오만함은 이제 버리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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