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안괜찮다.
괜찮다고 생각하고 지냈는데.
시덥잖은 얘기를 하면서 별 생각없이 웃기도 하고, 이것저것 공부하기도 하고. 하루종일 정신없이 일을 하고 집에 와서 시체처럼 잠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다보니 괜찮아진줄 알았다.
지난 2주는 몸이 참 많이 힘들었다.
톱니바퀴의 톱니가 된 듯 기계처럼 일을 하고, 기분전환 겸 먹태 조금과 치즈, 그리고 두유를 먹고 잤다. 야식은 최대한 먹지 않으려고 노력중이지만 스트레스와 우울감이 밀려오면 죄책감을 덜기 위해 종류라도 나름 선별해서 건강한 야식(?)을 먹었다. 그러고 나면 좀 나아진 것 같았다. 멍하니 눈에 들어오는 재밌는 영상이나 재미가 없는 영상이더라도 틀어두고 먹다보면 배고픔이 사라지면서 예민해진 내 신경들도 다 안정되는 것 같았다. 설거지거리는 대충 쌓아두고 머리만 슥슥 말리고 침대에 누워 한참 폰을 들여다 본다. 연락오는 사람, 할 사람은 없지만 재미없는 유튜브를 보다 눈꺼풀이 무거워지면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운동가기가 싫어졌다. (한동안 매일 아침 출근 전 운동을 갔는데, 그 의지도 사라진지 오래다) 하루종일 배가 고프고, 허기가 지고, 몸이 무거웠다. 아침에 일어나면 온몸이 쑤시고, 저녁에 퇴근할 땐 천근만근 몸이 무거웠다. 배는 빵빵해지고 내 감정은 잔뜩 예민한데 생리는 안한다. 생리전 증후군인 상태로 몇 주째 계속 되고 있는 최악의 컨디션이다.
바쁘게 일하고 오프날은 이래저래 약속을 잡아 친구들과 시간을 채우느라 생각이란걸 하지도 않았다. 근데 이상하게 오늘은 먹태치즈두유 야식으로도 마음 한켠이 허전하다. 나는 솔로를 틀어두고 멍하게 야식을 먹는데, 여자가 남자 출연진에게 꽃을 주는 장면이 나왔다.
눈물이 났다.
꽃을 참 좋아하던 그 사람이 주는 꽃을 처치곤란이라는 이유로 나는 좋아하지 않았다.
사실 꽃을 받던 그 순간은 행복했었는데, 나는 그 꽃을 어떻게 숨겨서 집에 가야할지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꽃을 좋아하지 않기로 했다.
꽃을 좋아하던 그 사람이 아무 이유 없이 뜬금없이 사주는 꽃에도 마음껏 기뻐하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
아무 날도 아닌 어느 날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해서 꽃을 한송이 샀다.
내가 준 그 한송이를 하루종일 들고 기분 좋아하던 얼굴이 생각이 났다.
내가 몹쓸 사람이 된 것 같다.
사랑할줄도, 받을줄도, 줄줄도 모르는 사람은 나한테도, 그 사람한테도 상처를 준다.
그 날이 갑자기 생각나면서 눈물이 울컥.
아무 생각 없이 입 속에 욱여넣던 먹태가, 치즈가, 두유가 목을 턱 막는다.
나는 안괜찮나보다.
나는 안괜찮다.
하나도 안괜찮다.
내 작은 자취방이 오늘따라 너무 크다.
유난히 조용하다.
겨우 싱글 사이즈인 침대가 너무 차갑고 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