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정신없고 다사다난했던 한달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
대학병원 인턴이 된 나는 새내기 의사로서 '내과'를 첫 턴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들을 주로 보고 있다.
며칠간은 참 지치고 힘든 날들의 연속이었다.
처음 며칠 여유로웠던 업무 범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고, 조율의 과정에서 쉽지 않은 상황들도 있었다. 그래도 이런 모든 행정적 상황들은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해결해 나가야 하는지 어느정도 답이 정해져 있었던 것 같다. 그 때문에 어려운 상황들도 시간이 걸리고 답답하긴 했지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무리 없이 해결을 해나갔다.
중환자실 환자를 위주로 보는 내과 인턴의 업무 중 하나는 환자가 혈관조영실이나 수술실에서 시술을 받거나 CT, MRI를 찍으러 갈 때 동행하는 일이다. 벤틸레이터를 달고 있는 환자는 이송중에 호흡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앰부 배깅을 하고, 혈압과 산소포화도를 확인하며 환자가 안정된 활력징후를 유지하는지 모니터링을 하고, 승압제나 산소공급을 확인하고 조절한다.
여느때와 다름 없이 혈압이 흔들리고 가쁜 호흡을 쉬는 환자에게 열심히 앰부배깅을 하며 혈관조영실로 이동했다. 혈관조영실에 도착해서 시술실 입실을 잠시 대기하는데 환자가 숨을 가쁘게 쉬고, 발작 증상을 보이면서 혈압이 미친듯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에피네프린, 놀핀과 바소프레신을 최대 용량으로 올렸음에도 더이상 모니터 화면에 측정되지 않을 정도로 혈압은 떨어졌고, 담당 레지던트 쌤께 전화를 드렸다. 혈관조영실의 모든 선생님들은 나를 바라보며 "시술 가능한건가요?" 물어보시고, 그 공간에 의사는 나 하나뿐이라는 사실이 정말 무서웠다. 담당 레지던트 쌤은 교수님께 확인 후 결국 시술을 포기하고 다시 중환자실로 올라오라고 하셨다. 시술실에서 중환자실로 돌아가는길, 측정되지 않는 혈압과 환자의 상태에 나는 환자의 경동맥에서 맥박을 계속 확인하며 이송기사님과 함께 베드를 끌고 중환자실까지 말 그대로 전력질주했다. 중환자실과 혈관조영실은 겨우 한 층 차이이고 2-3분이면 이동 가능한 거리인데 그 순간 그 길이 정말 천리길처럼 느껴졌다. 따라오시던 보호자 분들은 울면서 함께 뛰어오셨고, "잘 부탁드려요. 살려만 주세요"라고 외치셨다. 이동 중에 갑자기 환자가 맥박이 안느껴지면 어떻게 하지, 숨을 안쉬시면 어떻게 하지 수많은 걱정과 생각들을 하며 전력질주하고 무사히 돌아온 중환자실.
숨을 헐떡이며 레지던트쌤들께 환자 상태에 대해 노티하고 당직실로 돌아오는 길, 긴장이 확 풀리면서 온 몸에 힘이 빠졌다. 그 날 그 시간 이후 나는 또 다시 이런저런 일들을 하며 정신없이 하루를 마무리하고 다음 날 출근했다. 출근하자마자 EMR에서 입원환자 목록을 보는데, 환자의 이름이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인해보니 새벽에 심정지로 돌아가셨다는 차팅을 확인할 수 있었다. '퇴원사유 : 사망'이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전날 환자와 시술실로 이동하고 도착해서 마음 졸였던 상황, 환자가 움직이고 숨쉬던 모습, 그 뒤를 따라오며 울부짖는 보호자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력함이 나를 덮쳤다.
내 능력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지만, 나의 손을 떠난 환자의 죽음을 의사가 되어 처음 목격한 순간이었다. 환자를 너무나도 가까이서 봤기 때문일까 환자의 얼굴과 표정과 몸짓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God complex' : 의사가 환자에게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다고 과도하게 믿는 현상
아직 풋내기 의사인 주제에 나도 모르게 '의사'라는 이름 아래 오만해졌나보다. 그 환자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는 사실이, 오만한 책임감이 나도 모르게 찾아왔던 것 같다. 나라는 사람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도움을 주면서 가치를 느끼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욱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려는 노력이 독으로 다가온 것 같다.
사실 의사라는 직업을 갖고 특히 바이탈을 보는 의사는 이런 일들을 자주 접하게 될 것이다.
의사는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것들을 하지만, 결국 어찌할 수 없는, 손 댈 수 없는 상태인 경우도 있을테니 말이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도 있다, 내 손을 떠난 일이다라고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겸손한 의사가 되어야 겠다.
나는 어떤 의사가 될 수 있을까. 내가 되고자 하는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태도와 능력이 필요한 것일까. 환자의 죽음을 처음으로 목격한 새내기 의사의 고민이 깊어지는 시간, 당직 후 머리가 멍한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