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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하나 Jun 04. 2024

함께라는 건 그렇게 쉽지 않은데

<춤_브로콜리 너마저>, <Antifreeze_검정치마>

춤_브로콜리 너마저


"우린 긴 춤을 추고 있어.

자꾸 내가 발을 밟아.

고운 너의 그 두발이 멍이 들잖아.

넌 어떡해. 어떻게 해야 해.


이 춤을 멈추고 싶지 않아.

그럴수록 맘이 바빠.

급한 나의 발걸음은

자꾸 박자를 놓치는 걸

자꾸만 떨리는 너의 두 손"





우리는 딱 맞는 열쇠와 자물쇠여야 할까



최근 친구들을 다양하게 만나고 사귈 기회가 있었다. 나이대는 다들 20대 초중반으로 비슷했지만, 연애의 횟수와 경험에서는 벌써 차이가 있었다. 물론 모두 각자의 이유가 있었다. 연애를 못 해본 경우와 흥미가 없어 안 하는 경우, 언제나 진심이지만 연애 기간은 짧았던 경우, 아니다 싶으면 빠르게 다른 사람을 찾아가는 경우, 이미 몇 년의 연애를 하고 있는 경우. 그중엔 내가 봐도 조금은 도덕적이지 않다고까지 느낀 친구도 있었고, 어쩌면 나와는 다르지만 저게 맞는 게 아닐까 했던 친구도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성향의 친구들이지만 공통적으로 한 번씩 나눴던 대화 주제가 있다. '상대방과의 적합도'였다. 흔히 '이런 점이 정말 잘 맞았어요.', '이런 점은 정말 견디기 힘들어요.'와 같은 말들에서 '나는 어떤 유형의 MBTI를 만나야 한다, 피해야 한다.' '나는 T/F랑은 진짜 대화를 못하겠어.' 와 같은 이야기를 하거나, 밸런스 게임과 같은 이지선다를 선택하는 문제들도 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상대방과 얼마나 맞아야 할까. 다른 사람들의 기준은 어떻게 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구나 딱 맞는 열쇠와 자물쇠처럼 완벽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한다. 물론 정말 한 번도 다투지 않고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0%의 확률은 없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그런 확률의 짝은 거의 없다는 것을. 하나라도 다르지 않은 사람은 없다. 태어난 날과 자란 환경이 조금이라도 달랐던 서로가 모든 게 완벽할 순 없다. 연애 전과 썸, 그리고 연애와 결혼 후에도 상대에게서 나와 다른 점을 끊임없이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의외에 매력을 느끼기도, 갈등이 생겨나기도 한다. 사소한 '다름' 하나 속에서도 우리는 상대방에 대한 '섭섭함''바램'으로 이 사람이 정말 나와 맞는 사람일까 하는 '의심'을 꽃피우기도 한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바꾸려 하는 건 어쩌면 폭력일 수 있다.


첫 연애 이후 고정된 생각이 하나 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바꾸려 하는 건 어쩌면 폭력일 수 있다." 첫 연애 시절, 다들 그렇듯이 상대방과는 운명적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마음에 너무나 사랑했고, NF스럽게 자식 이름까지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보통의 연인들처럼 100일을 기점으로 조금씩 삐그덕 거리기 시작했다. 우리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갈등을 맞이했을 때의 차이였다. 나는 갈등이 생기면, 그 자리에서 차분하게 얘기하며 풀고 싶어 했다. 잠시라도 어색하고 불편한 분위기가 싫었고, 가지를 쳐나가는 생각과 걱정들의 늪에 힘들어했다. 그와 반대로 상대방은 시간이 필요했다. 같이 있는 순간에도 스스로 화를 가라앉히고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 했다. 돌이켜보면 그건 나에 대한 상대의 배려였다. 하지만 당시 어렸던 나는 나의 갈등 해결 방식이 좋은 방식이라 생각했고, 상대방에게 강요하기 시작했다. '왜 또 말을 하지 않느냐'라며 책망했고,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나는 점점 상대방을 기다려주는 시간이 짧아졌고, 그로 인해 갈등은 더 빈번하게 발생했다. 그리고 우린 이별을 맞이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저 우리는 갈등을 해결하는 성향이 달랐을 뿐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방식에 힘들어했고, 그래도 이해하려 노력했지만 1년이라는 시간 속에 우리는 바뀔 수 없었다. 동시에 상대방이 노력하지 않는다 생각했고,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서 스트레스도 쌓여갔다. 이렇듯 상대방과의 다른 성향에는 타협할 수 없는 성향이 존재한다. 크게 '가치관'과 '종교', '성격'에서부터 최근 대두되고 있는 '여사친, 남사친'문제와 '연락 방식'까지, 그리고 누군가에겐 사소해 보이고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 누군가에겐 크게 느껴지고 타협할 수 없는 문제일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관계의 경험이 쌓여 갈수록 우리는 어떤 점들이 내가 타협할 수 없는지 알게 된다. 물론 타협하지 못했던 문제가 어느 한순간 바뀌기도 한다.




'상대방에 대한 기대치'가 점점 높아지거나, 높았거나



우리는 어쩌면 그를 알아가는 와중에 그에 대한 기대치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게 아닐까도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알게 모르게 상대에게 하나씩 요구하고 바라는 게 늘어나고 있을 수도 있다. 그건 주변의 영향일 수도 있고, 무의식적일 수도 있다. 


처음에는 너무나 잘 맞고 완벽하다 생각해 푹 빠졌던 사람에게 점점 외적인 모습이나 사소한 행동에서 걸리는 것들이 생겨나기도 한다. 외모나 성격, 사소한 행동, 소유한 물건까지 다양하고 사소한 부분에서 아쉬운 점들이 문득 보이거나, 남들과 비교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는 흔히 '콩깍지가 벗겨졌다'라고 말하지만, 어쩌면 상대방에 대한 기대치와 요구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이 들 때면 스스로에게 죄책감이 들고, 자기합리화를 하기도 하는 등, 속앓이를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럴 때면 한 번쯤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 아쉬움과 섭섭함이 드는 건 지금 '상대방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단순히 상대방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게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사람과 이성을 보는 기대치가 다르다. 정말 완벽한 사람을 만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사람마다 그 기준점은 모두 다르다. 기대치가 높은 사람이라면 그 기대치에 충족하는 사람을 찾기 위해 신중하게 기다리거나 다양한 사람들을 찾아다닐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가 경고하는 건 이미 상대가 내 기준점에 충족한 사람인데, 알게 모르게 기대치가 점점 높아져 사소한 아쉬움과 섭섭함에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Antifreeze_검정 치마



그래도 '너와 나의 세대가 마지막이면 어떡해'



이렇듯 누군가와 시작하고 만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다양한 장애물과 갈등을 마주하게 된다. 필자는 연애가 상대방과 맞춰가고 맞춰보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쩌면 헤어지는 마지막 그 순간에도 상대방의 새로운 면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새로운 면들을 마주하게 되면서 우리는 또 다른 매력으로 인한 설렘을 느끼기도, 그와 반대로 섭섭함과 실망감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린 그 안에서 나의 성향을 하나씩 알아가며 '나'라는 사람에 대해 더 알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검정치마의 1집 수록곡 <Antifreeze>의 한 구절처럼 지금 시작해 보려 하는 그 사람이, 그리고 만나고 있는 그 사람이 어쩌면 이번 세대에서 가장 나와 잘 맞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춤>의 가사처럼 한번 손을 잡고 한 스텝 한 스텝 발을 맞춰보는 건 어떨까. 상대방의 발을 밟을 수도, 밟힐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 순간도 춤의 아름다운 동작 하나로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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