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두텁고 단단한 철옹성을 뚫고 그에게로 날아가는 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전에 한 번 가까운 동생과 이야기를 나눌 때 그에 대해 인간적인 궁금함이 있다, 사람이 괜찮은 것 같아서 한 번 알아보고 싶다는 말을 했었는데 그때 이 동생은 나에게 이 사람은 나보다 나이도 많고 경험도 더 많으니까 언니랑 연애는 안어울릴 것 같아, 라고 말했다. 나이와 경험이 비례하는 것도 아니고 설사 이 사람이 가진 경험이 훨씬 많다고 해도 그게 나에게 반드시 부정적일 거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나는 동생의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듣지는 않았었다.
이번에는 동생에게 솔직하게 이성적인 호감이 드는데 어떤 사람인지부터 알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동생은 그때는 인간적인 호기심이었고 지금은 이성적인 감정이라면 그러면 알아봐야지라고 말했고, 이 사람과 친한, 동생의 남자친구에게 나는 그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물었다. 이왕이면 자리를 한 번 만들어 달라고 부탁할 겸.
그런데 나와도 가까운 동생의 남자친구인 이 오빠의 첫 마디는
"네가 굳이 힘든 길을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였다.
권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굳이 어려운 길을 갈 필요가 있느냐. 추천하지 않는다. 고 했다.
그렇다. 그에게는 내가 파악한 정보보다 더 길고 무궁한 짝사랑의 역사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일방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없는, 꼬이고 꼬인, 무려 10년의, 서로가 서로를 감고 감긴 유구한 대서사의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10년. 한 사람만을 향했던 10년.
10대에서 30대까지 이어진 역사.
그 이야기를 듣는데 아찔했다.
그 배경을 뛰어 넘어 그에게 다가갈 만큼 내 안의 그에 대한 감정이 확실하지 않아서, 그 감정이 이성적인 방향으로 더 커질지 아니면 여기서 그칠지 보고 싶어서, 단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고 싶을 뿐인데 그것을 위해 엄청난 위험부담을 감내해야 하는 것은 이 좁은 집단에서 너무 무모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너무 어렵다. 헷갈린다.
오빠로부터 대략적인 이야기를 전해듣고 여기서 멈춰야겠다는 생각이 나조차도 들었다.
그리고 전만큼 커지지 않는 내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때때로 그가 떠오르고 그를 찾는 내 시선이 종종 있다.
이제는 가까이에서 그를 봐도 그의 외모나 이미지로 그에 대한 마음이 동요하지 않는다.
그래서 큰일이다. 그냥 나는 이 사람 자체가 좋아지고 있다.
이게 다 그 노래 때문이다. 동생 말처럼 후광효과다.
멀리서 봐서 괜찮은 거다.
그런데 이제 그를 똑바로, 온전히 마주봐도 좋은데 어떡하지.
어쨌든 큰일이다.
나도 이 마음을 잘 모르겠고 앞으로 뭔가 아주 미지근하게 그래서 오래도록 그를 잔잔히 좋아하고 있게 될 것 같은 예감이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는 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차라리 그 마음이 아무것도 아닌 듯 옅어질까.
애써 밀어내고 지우려해서 더 선명해지는 걸까.
한 번 있는 힘껏 그가 좋다고 생각해볼까.
그러면 내 마음이 어떤 쪽으로든 확실해질까.
그는 어쩌자고 10년을 넘게 한 사람한테 마음을 쏟은 건지, 아니면 아니어야지 왜 감기고 난리인지,
그렇게 무턱대고 한 사람만을 지고지순하게 바라보면 어쩌자는 건지.
도대체 그는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그 시간을 보내온 건지.
그런게 죄다 궁금하고 묻고 싶어지는 밤이다.
내가 모르는 10년, 그 둘만이 아는 관계의 10년.
그 틈에 끼어드는 건 단순한 일이면서 동시에 무모한 일이다. 그래서 어렵다.
일단 잠을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