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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부티 Aug 26. 2024

내 감정의 방향키를 잘 쥐고 있기

물살에 휩쓸려 허우적대지 않기 위해, 또다시 후회로 울지 않기 위해


그에 대한 마음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확실해지고 있다.

마음이 진짜이길 바라면서도 한 편에서는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 힘들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에

이 감정이 옅어지길 바라기도 했다. 한 순간의 감정일 뿐인 건 멋없고 시시해서 내 방식은 아니지만 사랑에 대해서만큼은, 누군가를 향한 감정에서만큼은 늘 진심인 사람이라 그 마음이 진짜가 되어버리면 나는 또 걷잡을 수 없이 아득 해질 테니 그전에 정리해야 했다. 

정리가 된다면, 그게 가능하다면.


일주일 동안 그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았다. 

그가 저절로 생각이 나는 순간들이 이어졌고 내가 이 사람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이 사람을 떠올릴 때 느껴지는 감정이 어떤 성격의 것인지 계속 살펴봤다.

그 향방을 알아보고 싶은 마음, 알아보려 계속 내 마음을 두리번거리는 시선, 그럴 때 느껴지는 내 마음의 면면들을 하나씩 들어 올려 가늠해 보았다.

나는 필히 그가 좋아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건 그에 대한 나의 이성적 감정이며 이미 내 안에 그 사람을 향한 내밀한 감정이 시작되고 있다는 걸 의미했다. 

그렇다, 나는 그가 좋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멈춰야 했다. 

이 감정을 혼자 다시 키워나가면 안 된다는 것을 나는 분명히 알고 있었고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게 사랑이겠지만 그를 제대로 알아보기 전까지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나와 잘 맞을지, 그의 어떤 부분이 좋은지, 내가 그의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 내 안에서 그에게 전진할 만큼의 어느 정도의 확신이 생기기 전까지는 이 호의 감정을 더 키워서는 안 되었다.

그건 정말 그를 알게 된 후에 시작해도, 키워도 늦지 않은 마음이니까 나는 여기에서 멈춰야 했다.

무엇보다 더 이상 홀로 아파하고 싶지 않은 내가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나는 왜 그가 좋은 걸까.

그에 대해 하나도 모르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그의 무엇이 나를 그렇게 끌리게 하는 걸까.

사랑이란 건 정말 찰나의 스침으로도 시작되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의 것이라 잔잔하게 서로에게 스며드는 경우도 있지만 어느 날 갑자기 빠져들게 되는 순간도 있으며 이유도 없이 그냥 좋아지게 되는, 그냥 설명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감정이지 않을까. 내가 이 사람이 좋은 이유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순서를 매겨 말할 수 있다면 그게 진짜일 수 있을까.

그냥 이유 없이 이 사람이 좋은데 그 위에 이 사람을 겪어내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쌓이는 관계의 밀도와 경험의 층이 누적되며 이 사람의 장점을 발견하고 어여쁨을 느끼며 그렇게 더 좋아지는 거 아닐까. 

내가 이 사람이 좋은 이유는 그냥 이유 없이 시작된 마음 위에 함께함의 시간이 더해지면서 어느 날엔가 하나씩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 않을까. 

그러니 내가 그에게 끌리는 것도, 자꾸 시선이 그를 향해 움직이는 것도 다 그냥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냥, 벌어진 일인 거다.


그를 계속 생각할수록, 아니 생각이 나서 떠올릴수록, 그 마음을 들여다볼수록

그가 점점 더 좋아질 것 같아 더 이상 그를 생각하지도, 떠올리지도, 헤아려보지도 않으려 한다.

나는 계속 내 삶의 중심을 나로 잘 세우고 잡아 나가며 내 일상을 살 것이고 

그러다 문득 여전히 내 마음 한 구석에서 불을 밝히고 있는 그가 있다면

그건 정말 내가 그를 품고 있다는, 좋아하고 있다는 증거겠지. 

그와 나 사이에서, 나와 그에게 향하는 마음 사이에서 나는 계속 나를 잘 잡고 지지하고 있을 것이다. 

어떤 방향으로 이 감정이 흐르든, 관계가 어떻게 전개되든 무참해지지 않을 나와 내 마음을 위해.

설사 나중에 시시해지더라도 잠깐이라도 품었던 이 내밀하고 진해지는 마음을 가볍게 여기고 싶지 않기에.

그래도 소중한 기억으로, 빛나던 어여뻤던 감정으로 그의 마음과 상관없이 언제고 떠올리고 추억할 수 있게.




일주일 동안 그의 목소리를 질릴 때까지 들어봤고 

실은 노래가 너무 좋아서 시작된 플레이리스트가 그의 목소리가 더해지며 더 좋아져 버렸고  

그래서 하루에 서너 시간을 매일 같이 들으며 나는 계속 기분이 좋았다.

이왕 좋은 김에 진짜 노래 때문에 그가 좋은 걸 수도 있으니 진짜 이 감정의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플레이리스트를 주구장창 무한재생했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노래 자체와 노래 부르는 행위와 그래서 노래로 힘입는 그 시간이 좋은데 

그의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라서 더 좋은 거구나. 

동시에 그가 이 노래를 불러서 좋은 게 아니라 나는 그냥 그가 좋은 거구나. 

그의 목소리로 듣는 노래가 나를 더 가슴 뛰게 하는 것도 맞고 다른 사람의 목소리보다 그의 목소리가 나올 때 내가 더 감정이 올라오는 것도 다 맞는데 그가 이 노래를 불러서 좋은 게 아니라 

나는 이 사람이 그냥 이 사람이라서 좋은 거구나. 하고 말이다.


그간 다양한 사랑을 통과하며 정말 흠뻑 열렬하게 누군가를 좋아해 봤다가, 눈길이 가는 사람에게 당신이 궁금하다는 시작할 용기도 내보았다가, 예상치 못한 순간 전개되던 탐색전의 물살에 몸을 맡겨보기도 하며 나는 점점 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그 과정에서 무엇을 지키며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조금씩 깨우친 것 같다.

그래서 이번 감정만큼은 조심히, 급류에 휩쓸리지 않으며 차근하게, 차분하게 나아가고 싶다. 

정말 돌다리를 하나씩 두들기는 마음으로 내 마음도, 상대의 마음도 세심히 살피며 

그 과정에서 주체적으로 내 마음의 방향을 결정하고 마음이 커지고 깊어지는 속도와 크기를 잘 다스리며, 

무엇보다 내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에 귀 기울이며

나에게도 그에게도 모두 부담이 되지 않고 삐걱대지 않게

자연스러운 나로 현명하게 존재하기 위해 그렇게 걸어가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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