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오래 두고 보기 그러나 확실하게
나에게 그의 비밀연애를 알 방법은 없었다.
그러니 마음을 키운 것도, 저절로 그에게로 마음이 기울고 시선이 향했던 것도 나에게 책임을 묻고 싶지는 않다. 내가 그에게 가졌던 마음의 크기와 진심 어린 순수의 감정을 자책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내 안에 그를 향해 흘러가던 정말 어여쁘고 어여쁜 순도의 마음을 나는 여전히 감각한다.
그의 연애소식을 듣고도, 그 상대가 누군지 알고도 거기서 유리단면처럼 딱 끊어지지 않는 이 마음이,
이렇게나 여전히, 계속 사랑 앞에 어린아이 같은 순수와 진심을 지닌 나를,
때론 너무 아프고 더없이 나를 힘겹게 할지라도 그런 이유로 나는 여기서 이렇게 멈추고 싶지 않다.
그를 향한 마음을 끝내야 하는 것도, 정리해야 하는 것도 그게 나를 더 힘들지 않게 하는 일이라는 것도
모두 알지만 그가 연애를 한다고 해서,
내가 그에게 향했던, 그에게 주었던 나의 가장 투명하고 깨끗한 일부를
그는 다른 누군가를 보며 자신의 가장 환한 마음을 주고 있다고 해서,
그 사실이 두고 볼 수 없이 아프다고 해서,
내 마음마저 깎아내리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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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를 보고 기뻐서 웃게 되고 그래서 그 무엇보다 밝아지고 그 누구보다 해사해지던 모든 순간을 기억한다.
그러는 동안 그는 다른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향해 부끄러워하고 애틋해하고 걱정하며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내어주고 있었다. 내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내가 그와 함께 있어서 기쁘고 마냥 좋아하던 그 순간에조차, 그가 언제 올까 기다리며 종종거리는 마음에 달달함이 스며들어 나도 모르게 슬며시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모든 순간에 그와 그녀는 둘만의 비밀 속에서 그 긴장을 서로에 대한 설렘으로 치환하며 서로를 아슬하게 감각하고 있었다.
그게 나를 참 바보같이 한심하게 느껴지게 한다. 속상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여전히 그를 향한 마음이 접어지지 않아 하루에도 몇 번씩 바쁜 일상의 틈새로 스며드는 이 짓궂고 얄궂은 감정의 농간에 내내 휘둘린다. 그의 연애사실을 알면서도 그 모습이 그려져 아파하면서도 내내 그에게 향하는 내 안의 마음이, 그런 스스로가 밉다. 그런 내 마음에 나를 할퀴고 상처 주지 않기 위해 나는 다시 한 번 노력하고, 무너지는 나를 애써 바로 세우며 매 순간 그를 향해 잠시 쏟아부었던 마음에서 벗어나려 또 노력한다. 그런 내가 나는 아주 많이 아프다. 그런 나를 아주 많이, 꽉 끌어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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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좋아했던 마음도, 아파하고 있는 지금 이 마음도 곧 머지않아 끝날 걸 안다.
정말 시간이 지나 그를 다시 보게 되었을 때 혹은 그를 떠올렸을 때 내가 왜 저 사람을 좋아했을까 생각이 드는 때가 오리란 것도 안다.
어차피 그런 날이 올 걸 알면서도 쉬이 끝내 지지 않는 내가, 이 마음이 사무치게 싫고 밉다가도 그의 연애사실에 무 자르듯 끊어지지 않는 내 마음을 보며 내가 정말 진심으로 그 사람을 내 안에 품었구나 깨닫게 되고 그래서 어쩐지 나에게 안도하며 그렇게 가볍고 얕은 마음이었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나에게 사랑이란 얼마나 귀하고 무겁고 진실된 것인지 가늠한다.
그 사람에 대해 잘 모르면서, 직접 겪어보지 않았으면서 좋아했기에 시작도 못해보고 끝내야 하는 이 상황에서 아쉬움과 미련이 나를 더 붙잡는다는 걸 알고 있다. 오히려 나중에 어떤 과정으로든 그를 알게 되었을 때, 정말 그의 인간됨을 마주했을 때 인연으로서의 아쉬움을 어쩌면 접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진실을 계속 떠올린다. 그런데 그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기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 경험조차 못해봤기에, 그에게 다가갈 이유와 방법과 과정이 모두 행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되어버린 이 상황이 지금으로선 그래서 더 아쉽고, 그와 이성으로서는 어땠을지 모른다는 그 말이 나에겐 예측할 수 없는 그래서 가능성을 자꾸만 점치게 되는 아득함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그는 연애를 하며 행복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꾸 떠올린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 앞에 섰을 때, 출근을 하는 자동차 안에서, 눈코 뜰 새 없이 시작되는 업무의 연속에서,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점심시간 끝자락에 양치를 하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선 순간에, 업무적 연락이 오가는 전화를 끊고 다시 컴퓨터로 시선을 돌리는 그 찰나에 나는 그가 생각난다.
아니, 그를 좋아했던 내 마음이 떠오른다.
그를 좋아하며 그를 볼 수 있어 기대하던 마음과 신나서 총총거리며 걸음을 재촉하던 내 안의 발랄함을 기억한다. 그러다 수확도 없이 그를 보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괜히 시무룩해지고 울적해지던 나와 우연히 그를 마주하게 되었을 때 그것만으로도 하루치 행복을 다 수혈한 듯한 벅참에 모든 것이 가뿐해지던 그 감각을 느낀다.
그리고는 서로를 향한 마음으로, 서로에게 더해지는 기쁨으로 충만한, 내가 바라고 그리는 그 사랑을 하고 있을, 그 행운과 축복의 한가운데에 서 있을 그를 떠올린다. 그런 그의 모습이 떠오르면 그걸 알면서도 여전히 그가 좋아 틈틈이 그로 휘청이는 내가 한심하고 바보 같고 싫지만 그런 걸로도 쉽사리 벗어나지 않고 극복되지 않는 좋아함의 물성을 나는 여실히 느끼고 인정한다.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어쩔 수 없이 시간이 오래, 더디 걸리는 사람이라고.
좋아하는 마음이 그렇게나 깊고 진득하듯
끝내는 마음도 아주 오랜 시간으로 옅어지고 희석되는 사람이라고.
그를 통과해 내게 더 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이 마음 이 시선 이 감정
그에게 향하던 나의 그 모든 것이 완전히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남겨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고 나에게 알려준다.
그래도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너는 그런 사람일 뿐이라고.
그러니 그런 너를 천천히 데리고 가보자고, 내가 나를 품고 안아주자고.
그렇게 행복해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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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로 인해 글을 쓰는 일은 더는 없을 것이다.
그가 아무리 생각나고, 그래서 휘청이고 붕괴될지라도 그로 말미암아 글을 쓰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쉬움 속에 충분히 머물렀다면
내 안에 여전히 여과되지 않은 미완의 작은 조각들이 남아있을지라도,
그렇게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틈새로 흘러 들어오는 그와 그를 향해 흘려보내던 나의 시선과 방향과 마음이 느껴질지라도,
나는 그 마음마저도, 그런 나조차도 그런대로 온전히 품고 잘 통과해 결국엔 놓아줄 것이다.
이제는 시간이 지나면 이 마음도 언제 그랬냐는 듯 괜찮아질 걸 아니까,
그때까지 무수히 붕괴하고 매몰되고 부서지자고
기꺼이 그러자고,
꽤 힘들지라도 다시 굳건히 일으켜 세워 무릎을 털어주고 충분히 아파하라고 말해주며 모든 나에게 '그래도 된다'고, ‘괜찮다’고 말해주려 한다.
결국엔 마지막에 남을 유일한 대상인 '나'를 가장 아껴주며, 가장 지지하며, 가장 야무지게 세워주고 싶으니까. 그렇게 나는 보이지 않는 터널의 끝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
+
그를 좋아하지 않길 실패한 내가 그를 마음에서 지워내는 게 그리 쉬울 리가 없음을, 나는 내 안에 내밀하게 피어오르는 그를 향한 마음을 어렴풋하게 깨닫고 어찌할 수 없이 받아들인 어느 날 쓴 이 작은 글을 보고 깨닫는다.
- 2024.8.26
더 이상 노래를 듣지 않아도 괜찮은 날이 있었고 그래서 그를 보게 되는 날에도 괜스레 마음이 들뜨는 나도 없었다. 그런데 그의 존재가 내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이 이어졌고 자꾸만 내 시선 안에 걸리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게 되며 어쩔 수 없이 그에게로 시선이 흘러가는 나를 알아차렸다.
내 예감대로 잔잔하게, 오래, 그윽하게 그가 좋아지고 있었다.
이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
지금, 이 순간 깊어지길 기꺼이 멈춰야 한다. 그에게 빠져들어서는 안 된다.
그 사실을 계속 되뇌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