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라는 제목이었는데, 아마도 만화 원작일 것이다. 아직 드라마를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제목이 불현듯 뇌리에 박힌 이유는 저 '도망'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상당히 '도망'가고 싶었다.
일단 나의 다채로운 실패담을 전시하기 전에, 왜 이렇게 실패한 이야기를 나열하려고 마음먹었냐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해야겠다.
지난 2018년, 운 좋게도 정부지원사업에 덜컥 뽑혀서 나는 그 말로만 듣던 '청년창업'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의료계 소식을 주로 전하는 기자였던 나는 한 소아 질환을 주제로 한 잡지를 만들겠다는, 다소 사향산업인 아이템을 들고 그것도 마감 하루 전에 공고를 보고 마감 당일에 서류를 집어넣었는데, 덜컥 통과해 버렸다.
'응? 이렇게 쉽게 가도 되는 건가?'
어깨에 힘이 조금 들어갔더랬다. 당시 일하던 매체에서 '이직'을 고민하던 차에 정부에서 돈을 준다는데 사업이나 한번 해볼까... 하는 지금 생각하면 상당히 건방진 생각으로 적당히 만들어서 밀어 넣은 서류가 통과했다니.
프레젠테이션은 자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대중 앞에 나가서 발표하는 것은 즐거웠으니까. 사람들이 내 말에 집중하고 질문 공세를 퍼부을 때 나는 상당한 쾌감을 느꼈다. 그러니, 서류전형만 통과하면 나머지는 일사천리라는 게 내 생각이었고, 정말 그렇게 생각대로 됐다.
그러니, 그런 자아도취가 가능했던 것이다.
"아... 지금까지 고생 많았어, 수고했어. 나는 내가 자랑스러워."
웃기고 있네. 지금 생각하면 오만하고 나른하기 그지없는 말이다. 이제부터 고생 시작이야라고 했었어야 했다. '수고했어'가 아니라 '앞으로 수고해'라고.
정부지원금으로 받은 돈은 5000만 원이었다. 정부지원사업 수행 기간 안에 다 써야 하는, 갚지 않아도 되는 돈. 잡지를 '창간'하는 것을 목표로 잡은 사업이었지만 나는 거기에서 끝낼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내 수중에는 돈이 없고, 이 전형으로 창업한 청년들에게는 기술보증기금에서 돈을 빌려준다는 말에 아무것도 없으면서 대뜸 기술보증기금을 찾아갔다.
"어떤 사업이죠?"
"잡지사인데요."
담당자가 살짝 당황했다. 말 그대로 거기는 '기술'보증기금이었으니까. 말이라는 게 아 다르고 어 달라서 잡지사라도 내가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다를 수 있는데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대뜸 잡지사고, 출판사인데 내가 이런 아이템으로 창업을 할 거다라고 소상히 설명했다.
나를 '청년창업가'로 이끌어주었던 그 자료들은 기술보증기금에서는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다.
담당자가 물었다.
"어떤 기술을 가지고 있죠? 상 받은 거 있습니까?"
잡지사에 기술이 있을 게 뭐가 있는가. 정기간행물 만드는 것도 기술이라고 볼 수 있나?
당당하게 '없습니다'라고 대답하는 날 보며 담당자가 당황했다.
"이런 말씀드리기는 참 그런데, 책 만드는 회사가 저희를 찾아온 건 처음입니다."
아... 아?
그렇구나. 아, 그렇다면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집으로 돌아와서 고민했다. 어차피 사업은 '잡지'를 창간하는 것이었지만 그 잡지에는 '전자잡지'도 있었다는 걸 떠올렸다. 그렇다면, 발상을 좀 바꿔보자. 종이잡지를 만들면서 전자잡지를 같이 만드는 게 아니라, 전자잡지 회사인데 종이잡지도 같이 만든다면?
어... 왠지 될 것 같다.
제안서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메인을 '잡지'가 아니라 '전자잡지'로 잡아서 소아질환 환자와 가족을 위한 플랫폼으로 내 잡지를 포장했다. 그러고 보니, 내 회사는 정기간행물 발행 회사가 아니라 IT 회사였네. 사업자 등록증에 소프트웨어 개발업도 추가하고 학창 시절 전공을 살려 간단한 앱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앱을 저작권 등록했다. 아울러, 잡지를 만들 때 활용할 비주얼로 쓸 수 있는 캐릭터도 하나 그려서 그것 역시 저작권 등록을 했다. 회사명도 상표등록을 하고, 잡지 이름도 상표등록을 하려고 했지만 세 글자가 겹치는 매체가 있어서 아쉽게도 잡지이름은 상표등록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기술보증기금을 찾아갔다.
대우는 달랐다. 발상을 조금 바꿨을 뿐인데, 우리 회사는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는 회사가 되어 있었고 기술보증기금에서 1억 원을 융자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1억 5천만 원으로 회사를 시작했다.
사무실을 꾸리고 재경팀 직원 1명을 들였다. 편집장 출신이었기에 책은 전부 내가 만들었고 디자인은 예전에 함께 일하던 디자이너에게 외주를 주었다. 그렇게 '창간준비호'가 나왔다.
어깨에 힘이 빡 들어갔다. 국내 최초로 모 질환을 다루는 잡지를 내가 만들었다.
'국내 최초'
그 말이 주는 뿌듯함과 희열. 어깨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관련 업계와 대학병원 교수님들의 긍정적인 반응이 줄을 섰다. 와... 나 진짜 잘 만들고 있구나. 책을 혼자 만드니 힘들다는 이유로 기자도 1명 들였다. 사무실이 정말 사무실답게 굴러가는 것 같았다. 내가 늘 있던 회사의 모습과 비슷했으니까.
그런데 착각이었다.
광고가 하나도 붙지 않았다.
남의 매체에서 일할 때는 그렇게 광고 좀 넣어달라고 나를 쫓아다니던 대행사들이 내 매체를 가지고 갔을 땐 반응이 영 시원찮았다. 대부분 '아직 시장성이 검증되지 않아서'라는 답변을 들고 왔다.
'국내 최초'의 함정이었다.
누구도 하지 않은 건 이유가 있는 거다,라는 말을 주위에서 해도 나는 그렇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거란 말로 밀어붙였는데 그게 '광고 없음'의 이유가 되었다.
괜찮아. 그래도 콘텐츠만 좋으면 성공할 수 있어.
맞는 말이다. 콘텐츠만 좋으면 성공한다. 하지만 당시 나는 그 '성공'까지 버틸 수 있는 총알, 즉 자본이 별로 없었다. 1억 5천이라는 돈은 생각보다 큰돈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게, 그 돈이 다 사라져 갈 때까지 나는 '사장' 마인드가 아니라 '편집장'마인드로 일을 했으니까.
고작 1년 버티는 게 최선이었다.
비용을 여러 분야로 분산해서 마케팅에도 힘을 쓰고, 최소한의 비용을 들여 최대한의 효과를 뽑을 방법이 충분히 있었는데 나는 마치 월급 받는 직원처럼 '콘텐츠'에만 힘을 실었다. 돈이 없어도 최소 몇 천부는 찍어서 전국 서점에 깔아놔야 했고, 그렇게 하면서 '능력자' 소리 듣는 것에 심취해 있었다.
통장 잔고는 이미 바닥인데도.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가끔 남편에게 물으면 남편은 대답한다.
"사장놀이 실컷 했지 뭐."
맞다. 사장놀이. 사업을 해야 하는데 사장놀이를 했네, 내가.
그렇게 어깨에 들어갔던 힘이 빠지고 지금은 1인 기업으로 어쨌든 버티는 중이다.
그래서 나의 실패는 중요하다. 실패를 복기하면 그것은 실패로 남는 것이 아니라 오답노트가 되니까.
도망가는 것은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정말 문제가 생겨서 그것을 감당할 수 없을 때는 다 내버려 두고 도망가면 적어도 내가 망가지는 것은 막을 수는 있다. 매력적인 말이다. 부끄러운 건 얼마 뒤면 다 사라진다. 쪽팔리지만 잘못됐다는 걸 인정하고 "으악! 장렬히 실패했다!" 외치면서 퇴장하면 그것 또한 용기 있고 멋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