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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재 이진주 Apr 22. 2024

나를 깨어 있게 하라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

소외되고 있다는 느낌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깊은 한숨을 쉰다.

어쩌면 정규리그를 마치고 순위에서 밀려나 다음시즌을 준비해야 하는 구단주의 허탈한 마음이기도 하다.

커피 한잔을 앞에 두고 내 삶 속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시간에 놓여있다.

한 개인으로 겪어야 했던 가난에서 동정과 연대감을 기대할 수도 없었었다.

그야말로 무익한 수난을 겪었던 내 속내의 고백을 더듬거리고 있다.

“배부름보다 배고픔에 머물러라! 그 고통이 나를 깨어 있게 하리라.”-스티브잡스

똑똑함 보다 늘 나 자신이 모자라다고 생각하라! 그 비움이 나를 더욱 채울 것이다.

나를 흔들어 깨우고 정신 차리게 하는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배부른 자의 삶을 답습하고 있다. 거드름 피우고 우쭐해서 자신이 남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에 젖어보기도 했다. 다 헛된 망상 일 뿐인데

나는 오늘도 자아 앞에서 겸손을 배우고 있다. 허망한 것을 좇았던 잠시의 일탈일 뿐이다. 나를 깨워 일으킨다.

이렇게 사람이란 자기 자신을 모른다.

유명한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했다.

언젠가 우리나라 유명한 대중가수 나훈아가 부른 “테스형”이란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다.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하는 가사가 마음에 와닿았다.

세상에는 제 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만큼 경제력이 좋아졌고 근근이 살아가는 근천을 떨지 않아도 되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은 법을 어겨도 “나만 아니면 돼!”라는 이기주의 인식이 깔려 있다.

잘못하고도 잘못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의 무례함이 통용되고 있는 사회 분위기를 보면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맹자는 “어렵고 힘든 현실이 오히려 나를 살리는 길로 인도할 것이고 편안하고 즐거운 현실이 나를 죽음의 길로 인도할 것이다.”했다.

세상에서 성공했다는 사람들은 남모를 힘듦과 어려운 역경을 견뎌낸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마음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마음먹은 뜻을 굽히지 않았고, 수고로운 뼈와 근육을 놀리지 않았으며, 배부름을 위하지 않았으며, 신세를 궁핍하게 하여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키워왔던 것이다. 그들은 결코 편안함을 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삶을 살면서 세파에 찌들고 모진풍파에 상처가 나서 생기는 후천적인 성격은 본성이 그런 곳이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남을 측은하게 생각하는 마음과 해서는 안될 것을 하고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과 남을 배려하고 공경할 줄 아는 마음은 본디 누구에게나 있는 본심이라고 했다.

나의 학창 시절은 이러한 가치를 배우고 단련해 가는 시기였다.

일찍이 도회지에 나와서 자취생활을 하면서 학업을 이어갔기에 남다른 후천적 면역력은 키워져 있었다.

배고픔을 일찍 알았고 가난이라는 신세에서 궁핍함도 일찍 알았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시를 좋아했고 글쓰기를 재미있게 생각했다. 타고난 글씨 쓰는 재능이 있어서 학교 선생님들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

나의 재능을 알아보고 발전시켜 준 중학교 담임선생님 이름이 조용희선생님이시다. 특별한 이름이었기에 기억하고 있다.

학교생활 대부분을 선생님들의 교안작성이라든가 사무업무를 대신해 맡아하기도 했다.

선생님들의 남다른 관심이 아이들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칠판 글씨나 체육선생님의 행정업무를 내 일처럼 하기도 했다. 특히 나를 사랑해 주신 물리교사인 Y선생님은 나에게 특별한 분이셨다. 금색 만년필을 두 자루씩이나 사서 모나미 잉크까지 선물해 주셨다. 대신 나에게 주어지는 숙제는 늘어나기만 했다.

그래서 보상을 하시려고 그랬는지 가끔 주말이면 영화관에도 데려가고 빵집에도 데려갔다.

어떤 날은 선생님 집으로 초대해서 한 번도 먹어 볼 수 조차 없는 음식들을 먹어보기도 했다.

글씨 잘 쓴다는 것과 부끄럽지만 예쁘게 생겼다는 이유로 과분한 사랑을 받으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복싱을 잘했던 형금이라는 친구는 항상 나의 보디가드가 되어 주었고 모든 선생님들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고 행복한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지금도 가끔 부끄러운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를 정말 사랑해 주시던 Y선생님께서 우리 집에 방문하시고자 하셨다. 이때만 해도 우리 집은 바닷가 어촌마을 작은 동네에서도 조그만 단칸방에서 여섯 식구가 살고 있었다. 나는 이런 환경을 선생님께 보여드린다는 것이 부끄럽고 싫었다.

선생님이 오시기로 한 날 나와 친하게 지내던 후배에게 얘기하고 부모님 안 계실 때 우리 집이라고 속이고 선생님을 맞은 일이다. 다행히도 별 일없이 Y선생님은 가셨으나 나는 일생동안 가장 부끄럽고 죄송한 일로 생각한다.

가난이 무엇인지, 배고픔이 무엇인지, 그 고통이 어떤 것인지 너무 어린 나이에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역경을 이겨내고 일어섰다는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이런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사회에서 나와서 처음 느낀 생각이다. 능력이 있다고 다 성공하지 못하고 돈을 많이 벌었다고 성공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자기의 기준에서 소중한 가치를 얘기하지만 나에게도 적용되는 것은 아닌 것도 알았다.

나는 우리 부모님이 가난했다는 것과 비빌 언덕이 없다는 것은 내가 스스로 서기까지 아무런 불평조차 하지 않았다.

그것이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삶에서 적잖은 노력을 해야만 했다. 끊임없이 학습하는 습관을 기르고 존중하고 배려하는 소중한 가치를 축적해 나갔다.

부끄러움을 알고 스스로 겸손하려는 양식을 곁에 두고 살아왔다.

교만하지 않고 자만하지 않고 섬김과 신뢰안에서 지난날들에 대한 보상으로 알고 지금여기에 있다.

나의 기억속에서 빛바랜 그림처럼 소외되는 삶이 아닌 자유로움에 전념하며 부끄러움을 알며 살아가려고 한다.

때때로 나의 삶을 바라보려 합니다.

내가 느끼는 삶의 행복이나 어려움을 남의 일처럼 받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에 나의 삶의 순간을 맑은 정신으로 지켜보려고 합니다.

늘 깨어 있으라는 주님의 말씀은 자기 삶을 순간순간 주시하라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나는 다만 깨어있고 싶습니다.

나는 지금 어디쯤에 와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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